진통 끝에 24일(이하 현지시각)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폐막했습니다. 당초 폐막일보다 이틀 더 늦어진 겁니다.
이번 COP29는 여러 악재 속에서 진행됐습니다. 개막식 직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돼 기후외교가 혼란에 빠졌을뿐더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전쟁 확산 등 지정학적 갈등 역시 고조됐기 때문입니다.
기후총회가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것을 두고도 말이 많습니다.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COP29 기조연설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신의 선물’이라고 칭하며 화석연료 사용을 옹호해 논란을 촉발했습니다. 인권탄압 문제 역시 COP29 내내 주요 논란거리였습니다.
이 때문에 COP29에서 이전보다 논의가 덜 활발했던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에너지전환’입니다.
COP29서 사라진 ‘화석연료’ 이유는 사우디? 🇸🇦
작년 28차 당사국총회(COP28)의 최종합의문에는 ‘에너지 부문에서 화석연료로부터 전환’한다는 표현이 담겼습니다. 또 파리협정 1.5℃ 억제 목표 달성을 위해 원자력·청정수소·탄소포집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문서에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이 담긴 것은 처음입니다.
그러나 이후 해당 문구를 없애기 위해 산유국을 중심으로 움직임이 이어졌습니다. 그 중심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있었습니다.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 대표단은 COP29에서 작년 합의를 뒤집으려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우디 대표단은 논평을 거부했습니다.
협상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사우디 대표단이 ‘화석연료’를 포함한 특정 분야를 표적으로 삼는 어떤 조항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캐서린 맥케나 전(前) 캐나다 환경기후변화부 장관은 소셜미디어(SNS)에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위한 어떤 제안에도 사우디가 반대하고 있는 일이 싫다”고 토로했습니다.
더가디언은 사우디 대표단이 협상 막바지에 COP29 공식 문서 속 문구를 변경하려 시도했다는 점을 전했습니다. 파리협정에 맞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국가적응계획(NAP)을 개발하고 이행하는 과정에서 ‘정의로운 전환’ 경로를 고려하고 장려해야 한다는 문구를 삭제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후총회 속 문구는 편집 불가능한 PDF 문서로 모든 국가에게 동시에 배포됩니다. 한 국가에게 문서 편집 권한이 부여될 시 기후총회가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COP28 의장국이던 아랍에미리트(UAE)가 각국에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준수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격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COP29 합의문에는 ‘화석연료’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에너지전환이 중요하다는 점이 재확인됐습니다. 이마저도 원론적인 언급에 그쳤습니다.
ESS·전력망 확대 서약에 한국·미국 참여 ⚡
물론 에너지전환 문제는 COP29에서 여러 차례 논의됐습니다. 합의문에 대다수가 언급되지 못했을 뿐입니다.
‘글로벌 에너지 저장 및 전력망 서약’이 대표적입니다. 의장국인 아제르바이잔이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 등과 협력해 만들었습니다.
이 서약은 전 세계 에너지저장장치(ESS) 용량을 2030년까지 2022년 대비 6배 늘린 1,500GW(기가와트)까지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2040년까지 8,000만㎞ 길이의 전력망을 추가 또는 개조하겠다는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COP28에서 나온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3배 확대’ 목표를 뒷받침하기 위한 겁니다. 재생에너지 전력은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연결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인 만큼 재생에너지의 보급을 확대하려면 전력망 확충이 필수 과제로 꼽힙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설치된 ESS 용량은 268GW입니다. IEA 역시 파리협정 1.5℃ 억제 목표 달성을 위해선 ESS 용량이 빠르게 확충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22일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국회 예산결산회의 등을 거치며 한국 정부가 서약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COP29에 참석한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의정부갑)의 적극적인 요구로 찬성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박 의원은 “이번 서약은 작년 COP28에서 발표된 재생에너지 3배 확대 목표 달성을 위한 필수적인 후속 조치”라며 “앞으로 정부가 ESS 확대를 위한 조치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요구할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미국 역시도 ESS·전력망 확대 서약을 지지했습니다.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COP29 현장을 찾아 해당 서약에 지지를 표했다고 직접 밝혔습니다.
영국·우루과이·벨기에·스웨덴·미국은 일단 서약에 확실하게 참여했습니다. 이외 현재 서약에 참여한 국가 수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UNFCCC 차원의 공식 발표 역시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소 확대’ 두고 회의적 시각…SMR 등 원자력 확대 ↑ 🤔
이밖에도 아제르바이잔은 ‘수소 선언’도 내놓았습니다.
현재 연간 100만 톤 규모의 그린수소 생산량을 크게 확대하는 반면, 화석연료 기반 수소는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유럽연합(EU)과 한국 모두 가입했습니다.
다만, 영국 싱크탱크 엠버는 해당 목표가 달성될지 의문이란 점을 짚었습니다. 규제 불확실성과 낮은 수요로 인해 수소업계 파산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엠버는 “수소에 대한 과장된 열광이 끝났다”며 “IEA가 제시한 2030년까지 558GW 규모의 전해조란 수치가 비현실적임을 알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2023년 기준 가동 중인 전해조는 5GW에 불과합니다. 516GW 규모의 전해조가 건설될 계획이기는 하나, 실제 투자가 이뤄진 규모는 20GW에 그쳤습니다.
COP29에서’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 선언에 6개국이 추가로 동참했습니다. 2050년까지 원자력 에너지 발전용량을 3배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①엘살바도르 ②카자흐스탄 ③케냐 ④코소보 ⑤나이지리아 ⑥튀르키예 순입니다. 이로써 선언에 서명한 국가 수는 한국을 포함해 31개국이 됐습니다.
COP29를 계기로 영국과 미국 정부는 소형모듈원전(SMR) 배치 가속화를 골자로 한 협정에도 서명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SMR을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 파트너십도 체결했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해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금이 조달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세계원자력협회는 2025년 브라질에서 열릴 30차 당사국총회(COP30)를 계기로 더 많은 국가의 참여를 독려한다는 계획입니다.
한편, IAEA와 미국 정부가 COP29에서 주최한 SMR 배치 가속화 행사에 한국 철강업체 포스코가 참여한 것이 확인됐습니다. 행사에는 김희 포스코 탄소중립전략실장이 참석했습니다.
김 실장은 철강업계 탈탄소화를 위해서는 수소환원제철이 불가피하단 점을 여러 차례 피력했습니다.
이전에 그는 수소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핑크수소’의 조기 개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핑크수소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으로 수전해하여 생산한 수소를 말합니다.
[2024년 COP29 폐막 모아보기]
① 파리협정 제6조, 10년 기다림 끝 합의
② 선진국, 기후재원 연간 3000억 달러 합의…개도국 ‘턱없이 부족’
③ 한국, ‘ESS·전력망 확대 서약’ 참여…COP29 에너지 논의 현황은?
④ AI·데이터센터 증설 따른 배출량 증가에 빅테크 업계 COP29서 몸 사려
⑤ COP29에 ‘리더십’ 실종 비판…2025년 브라질 기후총회에 기대 모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