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29서 기후총회 둘러싼 불신·반감 고조…‘안티 기후총회’ 등장

반기문 전 유엔총장 등 22명 기후총회 전면 개혁 필요성 주장

아제르바이잔에서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기후총회가 구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현재 기후총회가 당초 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만큼 구조적 개편이 시급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국제사회 전현직 고위직 전문가들이 유엔에 기후총회를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공개서한을 보냈다고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각) 영국 공영방송 BBC가 전했습니다. 해당 서한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에게 전달됐습니다.

공개서한에 서명한 이는 총 22명입니다.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전(前) UNFCCC 사무총장, 요한 록스트롬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소장, 메리 로빈슨 아일랜드 제7대 대통령 등이 서명했습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확인됐습니다.

이들은 기후총회의 현재 구조가 충분한 변화의 속도와 규모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기후총회에도 불구하고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을뿐더러, 지구 평균기온이 금세기말에 산업화 이전 대비 2.9℃에 이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이유로 이들은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며 개혁안을 제시했습니다.

 

반기문 전 유엔총장 등 22인, 기후총회 개혁 필요 🌐

개혁안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기후총회 의장국 선정 절차 개선입니다.

이들은 서한에서 “화석연료 에너지의 단계적 폐지나 전환을 지지하지 않는 국가는 제외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엄격한 자격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 기후총회는 별도 자격 요건 없이 지역별 순서에 따라 해당 지역 내 모든 국가의 동의만 받으면 의장국이 될 수 있습니다. 올해 COP29에서는 의장국인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이 기조연설에서 “석유·가스는 신의 선물이다”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습니다.

기후총회에서 각국의 대표성이 공평하게 강화돼야 한다는 내용도 언급됐습니다.

기후총회에는 해마다 화석연료 로비스트가 참석합니다. COP29에는 1,773명의 로비스트가 참석했습니다. 기후에 가장 취약한 10개국의 대표단을 모두 합친(1,033명) 것보다 많은 겁니다.

이들은 “과학기관, 원주민 공동체, 기후취약국의 공식 대표보다 화석연료 로비스트가 훨씬 더 많았다”며 “기후총회 대표성의 체계적 불균형을 반영한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더 강력한 투명성과 공개 규칙을 기반으로 기업들이 기후약속과 사업모델 그리고 로비 활동 사이의 일치를 증명토록 하는 명확한 지침의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밖에도 ▲기후재원 조달 흐름 검증을 위한 표준화된 정의·보고·추적 메커니즘 구축 ▲기후총회 산하 자체 상설 과학자문기구 설립 ▲기후목표와 공약에 대한 국가 책임 메커니즘 강화 등이 언급됐습니다.

 

“기후총회 개최국서 인권 탄압 논란만 벌써 3년차” 🤔

기후총회를 둘러싼 불신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습니다. 역사적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책임 등을 둘러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오랜 갈등이 대표적입니다.

무엇보다 ▲이집트(COP27) ▲아랍에미리트(COP28) ▲아제르바이잔(COP29) 등 최근 3년간(2022~2024년) 기후총회가 산유국에서 열렸다는 점이 불신과 반감을 더 키웠습니다.

기후총회 의장국이 행사를 이용해 기후활동가나 정치 반대파를 억압한다는 비난이 제기된 것 역시 올해가 벌써 3년째입니다.

특히, 아제르바이잔은 인권 탄압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기후총회를 이용해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계속 나옵니다.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개최국 선정 당시부터 제기됐습니다.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이같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번 총회에서 파푸아뉴기니·프랑스의 고위급인사가 ‘보이콧’을 선언했던 것이 영향이 컸습니다. 아제르바이잔과 갈등을 겪고 있는 이웃나라 아르메니아는 아예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습니다.

올해 COP29에 참석한 에디 라마 알바니아 총리는 “힘없는 국가의 지도자들이 발언하는 사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서로 사진을 찍고 있다”며 “이들의 연설 장면은 그저 뒷배경으로 스쳐 지나가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방글라데시 과도정부 수반으로 취임한 무함마드 유누스 최고고문(총리격) 또한 현재 기후총회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뜻을 시사한 바 있습니다.

 

▲ 지난 11월 12일(현지시각) 멕시코 남부 오아하카주에서는 ‘반(反) 기후총회’가 폐막했다. ©Stay Grounded

기후총회 불신 속 ‘안티 기후총회’ 등장 🤝

이 가운데 아예 기후총회에 반대하는 ‘반(反) 기후총회(AntiCOP)’ 모임도 생겼습니다. 그동안 기후총회 논의에서 소외된 원주민이나 취약계층 등이 모여 기후정의 관점에서 기후대응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올해로 벌써 2회차를 맞은 모임은 COP29 개막식(11일)보다 일주일 빠른 4일 멕시코 남부 오아하카주에서 열렸습니다.

40여개국에서 250명 이상이 참석했습니다. 이 모임은 크게 ▲거대 청정에너지 프로젝트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 ▲수자원 위기 ▲원주민 강제 이주 등을 주제로 논의를 이어갔습니다.

폐막식에 맞춰 성명도 발표됐습니다. 이들은 “모든 기후총회(COP)는 나쁜 놈들이다”라며 “COP29는 위선적인 그린워싱으로 아제르바이잔의 과거 대량학살과 생태학살, 그리고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잔혹행위를 은폐하려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2025년 브라질에서 열릴 30차 당사국총회(COP30)에서 공평성과 정치적 다양성을 기반으로 계속 싸워나가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기후전문매체 그리스트는 반기후총회의 등장이 예견돼 있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미국 아메리칸대 산하 환경·커뮤니티·형평성센터의 다나 피셔 책임자는 “(기후총회에) 시민단체나 시민사회 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기후총회를 옹호할 수 있는 집단을 점진적으로 배제한 것이 파급효과로 나타났다고 그의 지적했습니다.

피셔 책임자는 2022년 이집트에서 열린 COP27 당시 시민단체나 학계가 현장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일화를 언급했습니다. 그는 이같은 현상이 권위주의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반 기후총회에 참석한 이들 역시 그간 기후총회에 소외감을 느꼈다는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포용적이고 투명했던 기후총회가 어느덧 자본과 권력 그리고 화석연료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 다는 불신이 팽배한 것 같다는 이야기도 언급됐습니다.

멕시코 원주민 오토미족 일원이자 기후활동가인 시예 바스티다도 이같은 이유로 올해 반 기후총회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10번째 기후총회에 참석했으나 매번 똑같은 내용의 개회사를 듣고 있다”며 “달라지지 않는 세상을 볼 때마다 좌절한다”고 토로했습니다.

물론 그 역시 기후총회의 중요성은 인정했습니다. 연례 기후총회를 계기로 힘을 얻어간다는 것이 바스티다 활동가의 말입니다. 그럼에도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그는 피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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