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난항 끝에 당초 예정보다 이틀 늦은 24일(이하 현지시각) 폐막했습니다.
‘신규 기후재원 목표(NCQG)’를 두고 각국이 첨예하게 대립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2025년 이후의 저개발국·개발도상국의 기후대응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선진국들은 인플레이션과 예산 제약 등 재정·정치적 부담을 호소하며 연간 2,500억 달러(약 350조 원)를 고수했습니다. 의장국인 아제르바이잔 역시 선진국 부담금을 연 2,500억 달러로 제시했습니다.
반면, 홍수·가뭄 등 기상이변에 어려움을 겪는 개도국들은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5,000억 달러(약 700조 원)로 맞섰습니다. 이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산하 재정상설위원회가 제시한 기후재원과 일치합니다.
협상은 진통을 거듭했고 폐막 전날(23일) 인도 등 일부 국가가 회의장에서 퇴장해 기후총회 자체가 무산될 위기까지 겪었습니다. 개도국 협의체인 77개 개도국 모임(G77)과 중국 측 역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다행히 이날 새벽 선진국들이 2035년까지 연간 3,000억 달러(약 420조 원) 규모의 기후대응 자금을 수락하며 협상 타결 불발 위기는 가까스로 피했습니다.
선진국 주도로 ‘최소’ 연간 3000억 달러 기후재원 마련 💸
COP29 결과, 모든 국가는 2035년까지 신규 기후재원 조성 목표를 연간 1조 3,000억 달러(약 1,825조 원)까지 확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의했습니다. 공공 이외에 민간재원 역시 조성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문구가 담겼습니다.
이중 최소 연간 3,000억 달러는 선진국 정부가 주도해 마련하기로 한 겁니다. 마라톤 협상 끝에 ‘최소’라는 단어가 앞에 붙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사이먼 스티엘 UNFCCC 사무총장은 신규 기후재원을 ‘인류를 위한 보험 정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스티엘 사무총장은 “어려운 여정이었지만 국제사회가 합의에 도달했다”며 “청정에너지를 계속 성장시키고 수십억 명의 생명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보험과 마찬가지로 기후대응 역시 보험료가 제때 전액 지불하는 경우에만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인도 대표단 “매우 실망해”…신규 기후재원 목표 저격 📢
개도국과 태평양 도서국을 중심으로는 선진국들이 기여하기로 한 액수가 턱없이 적다는 반발이 나옵니다. 다자간개발은행이나 민간 부문에 의존할 시 더 많은 빚을 지게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인도 대표단은 폐막식 공개적으로 선진국들을 향해 날을 세웠습니다.
찬드리 라이나 인도 대표는 회의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고 서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연간 3,000억 달러란) 목표가 너무 턱없이 적다”며 “선진국들이 책임을 다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에서 실망했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또 “의장국인 아제르바이잔과 UNFCCC 사무국의 행동에 극도로 상처를 받았다”고 비난했습니다. 각국이 의견을 표명할 기회도 주지 않은 것을 문제 삼은 겁니다.
마지막으로 총회 결과에 대해 “매우, 매우 실망했다(extremely extremely disappointed)”고 역설했습니다. 인도 측의 발언 직후 폐막식에서는 개도국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역시 인도의 주장을 지지했습니다. 한 협상단은 “연간 3,000억 달러만 가지고 나이지리아로 돌아갈 수 없다”며 “이는 모욕에 가깝다”고 주장했습니다. 중국·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소속된 ‘강성개도국 협상그룹(LMDC)’ 역시 인도를 지지했습니다.
마셜제도의 티나 스테지 기후특사 역시 성명을 통해 “기후취약국들이 긴급히 필요로 하는 자금의 일부를 확보했다”면서도 “충분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선진국, 연간 3000억 달러 ‘야심찬 목표’ 🔔
이와 달리 선진국들은 충분하다는 입장입니다.
UNFCCC 분류체계로 기후재원 공여 의무가 있는 ‘부속서 II’ 국가의 수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액수 자체가 부담이라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EU 등은 현재 분류체계를 바꿔 중국·인도·사우디 같은 신흥경제국 역시 기후재원에 공여할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이는 해당 국가들의 반대로 추진이 불발됐습니다.
붑커 훅스트라 EU 기후담당 집행위원은 “(COP29가) 기후재원의 새로운 시대의 시작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최소 연간 3,000억 달러에 대해 그는 “야심차고 필요할뿐더러, 현실적인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 역시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COP29에서 나온 목표는 기후재원을 위한 새로운 장”이라며 “기후취약계층을 홀로 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측은 개도국들이 제안한 목표 액수가 높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존 포데스타 미국 기후특사는 폐막식 전날(23일) 이같은 입장을 공개적으로 전했습니다.
폐막 직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연간 3,000억 달러란) 야심찬 기후재원 목표를 설정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일본·스위스·뉴질랜드의 경우 폐막식 전날까지 연간 3,000억 달러란 목표 자체를 강하게 저항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이 더 높은 기후재원 목표를 요구하고자 주요 정상들에게 연락을 돌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기여금 마련 방법 등 구체성 부족…기후기금 역시 후퇴” 💸
신규 기후재원 목표가 당초 목표로 했던 것보다 부실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개도국들이 요구했던 목표에 한참 미치지 못할뿐더러, 선진국들이 기여금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합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과거 기후재원 목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선진국들은 앞서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15차 당사국총회(COP15)에서 개도국에게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약 140조 원) 상당의 기후재원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이 약속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고, 목표연도는 2025년까지 연장됐습니다. 2022년에야 해당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또 신규 기후재원의 최소 20%를 기존 유엔 산하 기후기금을 통해 전달하기로 한 문구 역시 제외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녹색기후기금(GCF)과 손실과 피해 기금(FRLD) 등 6개 기금이 해당됩니다.
그 대신 해당 기금들에 투입하는 재원 규모를 2030년까지 2022년 대비 최소 3배로 늘리기 위해 노력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다만, 차기 미국 행정부는 분담금 약속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파리협정은 물론 UNFCCC 탈퇴를 거론한 상황입니다. 아르헨티나 등 친트럼프 성향의 국가들 역시 미국을 따라 파리협정에서 나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2026년 이후 기후재원 UNFCCC 산하 위원회가 관리 🏦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부분은 신규 기후재원 추적을 향후 UNFCCC 산하 재정상설위가 맡게 된다는 겁니다. 그간 기후재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사실상 관리를 도맡아 왔습니다.
기후재원의 원활한 이행현황 검토를 위해서는 독립기구가 맡아야 한다는 요구사항이 컸습니다.
조항에는 재정상설위가 2028년부터 2년 주기로 기후재원을 추적해 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수집이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되며, 해당 보고서는 연례 기후총회에서 심의됩니다.
또 선진국 이외 국가들은 ‘남남협력(South–South cooperation)’ 등 자발적으로 기후재원을 출연하도록 권장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2035년까지 총 1조 3,000억 달러 규모의 기후재원 목표에 대한 진척 상황을 평가하기 위한 로드맵(Baku to Belém Roadmap)도 설정됐습니다. 2030년에 추가로 목표를 상향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한편, COP29에서는 작년과 달리 참가국이 모두 동의해 발표하는 포괄적 합의문이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주제별로 UNFCCC 홈페이지에 합의문이 각각 올라왔습니다.
[2024년 COP29 폐막 모아보기]
① 파리협정 제6조, 10년 기다림 끝 합의
② 선진국, 기후재원 연간 3000억 달러 합의…개도국 ‘턱없이 부족’
③ 한국, ‘ESS·전력망 확대 서약’ 참여…COP29 에너지 논의 현황은?
④ AI·데이터센터 증설 따른 배출량 증가에 빅테크 업계 COP29서 몸 사려
⑤ COP29에 ‘리더십’ 실종 비판…2025년 브라질 기후총회에 기대 모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