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최종합의문에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연료로부터 전환’한다는 표현이 담겼습니다. 기후총회 역사상 ‘화석연료’란 단어가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COP28은 폐막일을 하루 넘긴 13일(이하 현지시각) 마라톤협상 끝에 ‘탈화석연료 에너지 전환’ 문구를 담은 합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전 세계 198개 당사국을 포함해 국제기구·산업계·시민단체 등 9만여명이 참석한 이번 COP28은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을 둘러싼 단어를 합의문에 명시할지 여부를 두고 산유국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며 진통을 겪었습니다.
술탄 아흐메드 알자베르 COP28 의장은 이번 합의를 ‘UAE 컨센선스(UAE Consensus)’라 선언했습니다. 알자베르 의장은 폐막식 연설에서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먼 길을 함께했다”며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 성취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정작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이 빠졌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COP28 개막식 첫날부터 ‘손실과 피해’ 기금이 출범했으나 이후 화석연료의 종식으로 모든 이목이 쏠리며 다른 논의가 잦아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합의문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니엄이 합의문의 주요 성과와 한계를 꼼꼼히 따져 정리했습니다.
[편집자주]
2025년 이전 배출 정점 도달·2050 탄소중립 달성 COP28서 재확인 🔔
이번 COP28은 파리협정 체결 후 ‘제1차 전지구적 이행점검(GST)’의 결과를 최초로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COP28에서는 감축·적응·이행수단 등 각 부문별 고위급회의를 통해 이행상황을 점검했고, 당사국들은 향후 기후대응 방향을 제시하는 합의문을 채택했습니다
총 196항에 달하는 GST 결정문은 사실상 COP28의 주요 합의를 포괄하는 ‘대표 합의문’입니다.
먼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선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2030년까지 43%, 2035년까지 60% 감축한단 문구가 합의문에 담겼습니다. 이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의 제6차 종합보고서(AR6)에서 나온 수치입니다.
또 합의문에는 2025년 이전까지 배출 정점에 도달하고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 필요하단 기존 감축경로를 재확인하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이를 위해 합의문 제28항에는 당사국들에게 8가지 노력에 기여할 것을 촉구하는 문구가 담겼습니다.
‘방안의 코끼리’였던 단어 화석연료, 기후총회 역사상 문구에 첫 명시 🐘
그중에서도 가장 큰 성과는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이 포함됐단 것입니다.
문서에는 “에너지 시스템에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transitioning away from fossil fuels in energy systems)”이란 문구가 담겼습니다.
또 10년 안에 화석연료로부터 전환을 시작한단 문구도 포함됐습니다.
당초 초안과 1차 수정안까지만 해도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 out)”이란 문구가 담겼습니다. 그러나 석유개발기구(OPEC) 등 산유국들의 거센 반발로 해당 문구가 2차 수정안에서 삭제됐습니다.
그 대신 화석연료의 “감소(reducing)”란 새로운 문구가 등장하며 유럽연합(EU)과 태평양 도서국 등 기후취약국을 중심으로 반발이 이어졌습니다. 기존 논의보다 훨씬 후퇴했단 지적이 잇따르며 OPEC의 요구를 받아쓰기했단 지적이 잇따랐습니다.
이후 COP28은 폐막일을 넘겨 연장전에 돌입했고, 3차 수정안이 나온 직후 모든 당사국이 만장일치로 합의하며 종료됐습니다.
현장에 있던 기후싱크탱크 파워시프트아프리카의 무하메트 아도우 이사는 “드디어 방에 있는 코끼리의 이름을 짓게 됐다”며 환영을 표했습니다.
‘방안의 코끼리’란 모두가 잘못됐단 사실을 알면서도 너무 거대하고 무거워 덮어두고 언급하기를 꺼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127개국 지지에도 불구하고 불발된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 🤔
요한 록스트롬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소장은 이번 COP28 합의에 대해 “화석연료 중심의 세계 경제가 마침내 진정한 ‘종말의 시작’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모든 금융·기업·사회에 분명히 전달한다”고 평가했습니다.
허나, 역사적인 성과란 평가에도 아쉬움은 남습니다. 그만큼 이번 COP28에서는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이 합의문에 명시될 것이란 기대가 컸기 때문입니다.
태평양제도기후행동네트워크(PICAN)에 따르면, 초기 106개국이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에 동의했고 총회 중 127개국까지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총회가 실질적으로는 화석연료 업계의 승리라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노력을 요청한다(Calls on)”이란 표현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당사국의 참여를 요청하는 6가지 표현 중에서도 가장 약한 표현이란 지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화석연료 전환의 범위도 에너지 시스템에 한정됐단 점에서 플라스틱 등 화석연료를 원료로 하는 업계는 제외됩니다.
COP28 합의문 속 ‘석탄·화석연료 보조금’ 재확인에 그쳐 👀
한편, 석탄은 초안의 단계적 퇴출에서 “단계적 감축(Phase-down)”으로 문구가 변경됐습니다.
화석연료 보조금은 ‘비효율적 화석연료 보조금의 단계적 퇴출’이란 문구는 27차 당사국총회(COP27)와 동일합니다. 단, ‘에너지 빈곤이나 정의로운 전환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란 단서가 추가됐습니다.
제29항의 에너지안보를 담보하면서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는 “과도기 연료(transitional fuels)” 역할을 인정한단 문구도 논란의 소지가 있습니다. 일부 국가 및 비영리기구는 이러한 과도기 연료가 천연가스를 지칭한다고 비판합니다.
한편,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화석연료의 완전한 단계적 퇴출을 요구하는 100여개국의 요구가 실패하며 미국석유협회 등 석유업계가 이번 합의를 지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 방증으로 COP28 합의 직후 엑손모빌·셰브론 등 주요 화석연료 기업의 주가에 큰 변동이 없었단 점을 FT는 짚었습니다.
2030 재생에너지 발전량 3배 명시…“원자력·CCUS도 탈탄소기술 인정” ⚡
재생에너지의 경우 “2030년까지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 3배 증대 및 연평균 에너지 효율 개선율 2배 증대”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는 1.5℃ 제한 목표 달성에 필요한 재생에너지의 규모 및 효율성을 명시한 것입니다. COP28에서 나온 ‘글로벌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효율’ 서약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에너지 전문 싱크탱크 엠버는 해당 항목이 에너지 계획에서 재생에너지를 최우선순위로 고려하라는 메시지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와 함께 원자력·CCUS(탄소포집·활용·저장)·저탄소 수소 생산 등 탈탄소·저탄소 기술을 가속화한단 내용도 합의문에 담겼습니다.
단, 협상 과정에서 ‘감축이 어려운 영역의 경우’라는 전제가 새로 달려 합의문에도 포함됐습니다.
26차 당사국총회(COP26)까지만 해도 원자력이 기후대응에서 홀대 받았던 상황에서 큰 전환이 이뤄진 것이란 평가가 나옵니다. 이에 소형모듈원전(SMR)과 핵융합 등 차세대 핵에너지 기술개발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CCUS 및 탄소제거 기술이 기후총회 합의문에 등장한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마찬가지로 ‘특히 감축이 어려운 분야’라는 제한이 붙었습니다. 여기에는 CCUS에 대한 우려가 작용했단 분석입니다. CCUS 기술이 화석연료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남용될 소지를 경계했단 해석입니다.
이와 관련해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 또한 지난 8일 화석연료 생산 감축 없이 탄소배출량 대부분을 포집·격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며 “(CCUS는) 주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화석연료 논쟁 속 뒤로 밀린 기후재정 “적응·손실과 피해 기금 턱없어” 😢
손실과 피해 기금은 총회 첫날 타결되며 놀라움을 안겼습니다.
COP28 의장단에 따르면, 이번 총회에서 발표된 기후재정 약속은 총 839억 달러(약 108조원)에 달합니다. 이중 손실과 피해 부문은 7억 9,200만 달러(약 1조원)입니다.
기금 시작과 함께 COP28 의장국인 UAE, 독일, 미국, 일본 등이 기금을 약속했습니다.
다만, 녹색기후기금(GCF) 같은 여타 기후금융과 달리 손실과 피해 기금에는 선진국이 재원을 지원해야 하는 의무가 없단 점에서 향후 재원 조달이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한편, 이번 합의문에는 지난 2년간의 작업 결과물인 ‘글로벌적응목표(GGA) 프레임워크’도 담겼습니다. 이는 파리협정에 따라 적응 분야의 공통 목표인 GGA를 수립하기 위한 방법론을 세우는 것입니다.
합의문에 개발도상국의 적응재원 격차가 2030년까지 연간 2,215억~3,870억 달러(약 287조~502조원)로 추정된단 문구가 포함된 것도 고무적인 성과입니다.
단, 해당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지가 빠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간 개도국 및 기후취약국은 선진국이 기후위기에 더 큰 책임이 있고, 대응에 있어서도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원칙과 선진국의 선진국의 자금 제공을 요청한다는 내용이 명시될 것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 대신 합의문에서는 개도국에 대한 ‘지속적이고 강화된 국제 지원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문구가 담겼습니다.
최빈개도국(LDCs) 그룹의 마들렌 디우프 사르 의장은 “오늘의 결과(GGA)는 설득력 있는 표현으로 가득 차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실행 가능한 약속이 없다”고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GST, 2025년 NDC 개정안에 반영 필요…“연례 GST 회담 개최할 것” 💬
합의문에 따르면, 당사국들은 2025년 30차 당사국총회(COP30) 개최 최소 9~12개월 이전까지 이번 GST 결과를 반영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제출해야 합니다.
이번 합의문에서는 NDC 개정안 제출 시 경제 전반과 모든 온실가스 및 부문을 포함해 1.5℃ 목표에 부합하도록 작성할 것을 독려했습니다.
현재 이산화탄소(CO₂) 중심으로 작성된 NDC에 메탄(CH4)·아산화질소(N2O)·F가스 등 비(非) CO₂ 온실가스 배출량을 반영할 것을 장려한 것입니다.
아울러 2024년 연말 NDC 이행 관련 격년 투명성 보고서 준비 작업도 조속하게 착수할 것에 합의했습니다.
나아가 이번 COP28 이후로도 GST 결과를 반영해 기후행동을 가속화하기 위해 내년 29차 당사국총회(COP29)부터 연간 ‘GST 대화체(Global stocktake dialogue)’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GST 결과가 당사국의 NDC 준비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 지를 공유하고 사무국이 관련 보고서를 발간하는 방식입니다.
야마기시 나오유키 세계자연기금(WWF) 에너지기후 담당자는 이 작업이 “당사국에게 (이행점검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작은 확인 절차”라고 설명했습니다.
[COP28 최종합의문 모아보기]
① 역사적 합의 이룬 COP28 “화석연료 종식 시작 vs 빅오일 선방, 평가 엇갈려”
② COP28 합의문 진통 끝 극적 합의…선진국·개도국·산유국 등 주요 반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