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기후테크 투자가 정점에 도달한지 약 3년이 지난 지금 투자자와 스타트업 모두 거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이같은 내용이 담긴 ‘2024년 기후테크 현황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습니다. PwC는 연례적으로 기후테크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회차를 맞았습니다.
8일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불확실한 경제상황으로 인해 올해 기후테크 산업 내 투자가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줄었다고 PwC는 평가했습니다.
790억 달러 → 560억 달러…투자·거래건수 ↓ 📉
피치북·블룸버그NEF(BNEF)·사이트라인클라이밋 등 다른 시장조사기관들 역시 일찍이 2024년 기후테크 산업 투자가 위축됐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PwC 역시 공통된 분석을 내놓은 겁니다.
기관에 따르면, 최근 1년간(2023년 4분기~2024년 3분기) 기후테크 산업 내 자금조달 규모는 560억 달러(약 80조 원)에 그쳤습니다.
전년(2022년 4분기~2023년 3분기)에 모인 790억 달러(약 112조 원)와 비교해 29% 감소한 겁니다.
이는 거시경제 환경이 전반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같은기간 벤처캐피털(VC)과 사모펀드(PE) 내 전체적인 자금조달 규모 역시 7,990억 달러(약 1,137조 원)에서 6,730억 달러(약 958조 원)로 감소했습니다.
그 결과, 기후테크 자금조달 내 벤처캐피털과 사모펀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같은기간 9.9%에서 8.3%로 위축됐습니다.
투자 거래건수 역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업공개(IPO)와 매각 등 엑싯(exit) 횟수가 전반적으로 둔화했습니다. 그 대신 시드·시리즈A 같은 초기나 시리즈 B 이후 중기 단계의 거래건수가 늘어난 것이 확인됐습니다.
투자자 부문에서도 변화가 감지됐습니다.
이전에는 기후테크 부문 내 투자 횟수(5건 이하)가 적은 이들 역시도 거래에 참여했습니다. 2024년 들어서는 새로 기후테크 부문에 참여하는 투자자 비중이 줄었습니다.
독일 기후테크 전문 투자사 엑스탄티아캐피탈의 야이르 림 파트너는 “(기후테크) 시장에서 과장광고가 사라졌다”며 “평범한 제안이 더는 이전처럼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림 파트너는 “현재 시장 전체에 (투자) 자금이 부족하다”면서도 “친환경 이상으로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가치를 제안하는 뛰어난 기업들은 여전히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웨덴 벤처캐피털 페일블루닷의 공동창립자인 함푸스 제이콥슨은 “기후테크 시장이 2023년보다 성숙해졌다”며 “(투자자들이) 수익성에 실질적인 초점을 두고 투자를 집행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큰 손 잡아라…기후테크 투자서 떠오른 대기업” 🌐
동시에 대기업의 기후테크 투자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기업은 자사의 탈탄소화 등을 목적으로 기후테크 스타트업을 인수하거나 기술 라이선스를 구매하고 있습니다.
PwC는 최근 몇 년간 대기업이 기후테크 스타트업 전체 거래건수의 약 25%를 차지한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중에서도 에너지 대기업의 투자가 눈에 띈다고 사이트라인클라이밋은 분석한 바 있습니다.
대기업의 경우 초기 단계 스타트업보다는 중반 또는 후기 단계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하는 모양새입니다.
2024년 1분기(1~3월) 기업 거래의 약 61%가 중간·후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2018년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어난 겁니다.
PwC는 “덜 개발된 기술에 투자하기 보다는 현재 입증된 기후테크 투자하는 경향이 더 커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올해 3분기까지 대기업은 주로 에너지·모빌리티 스타트업 투자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집중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대기업의 투자금 중 약 45%가 에너지 부문으로 흘러갔습니다. 같은기간 금융기관의 자금 약 38%가 에너지 쪽으로 흘러간 것보다 더 많은 겁니다.
또 업종별로는 대개 기후테크 부문 투자가 동종업계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고려해 PwC는 “투자금이 필요한 신생 스타트업은 벤처캐피털이나 사모펀드 내 투자자와 함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를 찾는 것이 유익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도요타자동차가 설립한 도요타벤처스가 대표적입니다. 올해 들어서는 대체소재나 탄소포집 등 기후테크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추세입니다.
“IRA 덕분” 미국 제외 주요 기후테크 투자 위축 💰
올해 모든 기후테크 시장이 위축된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경우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전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됐습니다.
미국 내 기후테크 스타트업들은 최근 1년간 총 240억 달러(약 34조 원) 규모의 자금을 유치했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약 248억 달러)와 비교해 소폭 줄어든 겁니다. 물론 거래건수의 경우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반면,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기후테크 투자는 2023년 19%에서 2024년(1~3분기) 7%로 자금조달 규모가 대폭 줄었습니다. 유럽·중국 등 다른 지역들 역시 투자가 위축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미국 내 기후테크 시장이 유일하게 안정적일 수 있던 배경으로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꼽혔습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기후정책인 IRA는 전기자동차·풍력·태양광·히트펌프 등 청정기술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3일 기준 IRA에 따른 보조금 지급액 규모가 1,000억 달러(약 142조 원)를 넘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속가능성 전문 벤처캐피털 2150의 공동설립자인 크리스찬 에르난데스는 “IRA는 미국에서도 ‘마법’과도 같았다”며 “IRA 덕에 투입된 자금의 양 역시 엄청나다”고 설명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IRA가 없었을 경우 미국 기후테크 시장 역시 위축됐을 수 있단 말입니다. IRA 법안이 2025년에 살아남을지도 미지수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현재 IRA 전면 폐지 또는 청정기술 세액공제 일부 폐지를 계속 언급하고 있습니다.
7.5% → 14.6%, 기후테크 AI 융합 사례 늘어…성과는? 🦾
한편, 올해 기후테크 부문에서 떠오른 단어는 인공지능(AI)입니다.
2023년 기후테크 산업 내 AI 관련 스타트업의 자금조달 규모는 전체 7.5%를 차지했습니다. 약 50억 달러(약 7조 원)에 해당합니다. 올해 3분기까지는 그 규모가 60억 달러(약 8조 원)로 늘었습니다. 비중 역시 14.6%로 크게 늘었습니다.
기후테크와 AI를 서로 융합하려는 시도가 이전보다 활발해졌다는 뜻입니다.
이중 자율주행 기술개발 스타트업이 전체 기후테크 AI 부문 투자의 약 62%를 차지했습니다. 영국 자율주행 기술 스타트업 웨이브가 10억 5,000만 달러(약 1조 4,95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이어 스마트에너지 기술개발이 20%를 차지했습니다. AI를 활용한 기후스마트농업 역시도 주요 사례로 언급됐습니다.
신생 기후테크 스타트업에서 기후회복력을 지원하고자 AI 기반 시스템을 개발 중인 사례 역시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PwC는 설명했습니다.
인공위성이나 지상센서를 이용해 산불을 조기 발견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데이터센터 내 온실가스 배출량이나 물소비량을 AI로 해결하기 위한 기술들 역시 개발되고 있습니다.
기후모델링·기후예측 개선을 위해 사용되는 사례 역시 증가했습니다. 세일즈포스벤처스 임팩트펀드의 회장인 엔키 토토는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어렵거나 데이터가 부족했던 기후테크 분야의 경우 AI가 자원 관리를 더 효율적으로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기후테크와 AI 기술 간의 융합이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 PwC의 설명입니다. 기관은 “(기후테크 산업 내) AI 기술 급증이 성과를 낼지는 시간이 알려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BNEF는 오히려 AI 때문에 기후테크 산업으로의 투자 규모가 위축됐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AI의 경우 기후테크보다 수익화에 걸리는 시간이 적고, 시설 구축에 필요한 시간 역시 짧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