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분기(7~9월) 전 세계 기후테크 스타트업이 조달한 자금 규모가 103억 달러(약 14조 원)로 집계됐습니다. 전년 동기에 조달한 227억 달러(약 31조 원)와 비교해 큰 폭으로 줄어든 겁니다.
지난달 31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은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NEF(BNEF)의 자료를 인용해 이같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투자 규모가 100만 달러(약 13억 원) 미만이거나, 미공개 거래를 제외하고 집계된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투자 규모가 줄어든 주요 원인으로는 인공지능(AI)이 주목됐습니다. 투자업계가 기후테크보다는 AI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 BNEF의 분석입니다.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3분기 AI 스타트업이 유치한 자금 규모는 210억 달러(약 28조 원)로 추정됩니다.
블룸버그통신은 “기후테크는 아직 비교적 미숙하고 미지수도 여러 가지가 있다”며 “이 가운데 일부 AI 기업은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수익성을 찾는 벤처캐피털(VC) 같은 투자업계에서는 AI가 오히려 더 매력적인 투자처가 됐다는 것이 매체의 분석입니다.
기후테크 전문 투자사 프레루드벤처스의 맷 에거스 상무이사는 현 상황을 이같이 평가했습니다.
“AI가 방의 모든 산소를 빨아들이고 있다. 2010년 모바일 시장이 본격화된 이래로 본 적이 없는 일이다.”
“기후테크 투자 위축 시 돌이킬 수 없는 결과 초래 우려” 💰
기후테크의 경우 기술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상용화를 위해서는 정책 지원이 필요할뿐더, 수익화에도 다른 업계보다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수요 역시 정부가 먼저 나서서 창출해 줘야 한다는 불확실성이 존재합니다.
AI는 기후테크보다는 투자 위험성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시설 구축에 필요한 시간 역시 비교적 짧은 편입니다.
오픈AI의 초기 투자자이자 미국 실리콘밸리의 큰 손인 비노드 코슬라는 “우리는 데이터센터를 짓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AI가 매력적인 투자처로 떠올랐다고 그는 이야기했습니다.
AI만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여기에 지정학적 갈등의 여파로 올해 들어 기후테크 산업 내 투자 규모가 계속 줄었습니다. 3분기까지 올해 기후테크 업계가 유치한 투자 규모는 323억 달러(약 45조 원)에 불과합니다.
2023년 모인 845억 달러(약 116조 원)와 비교해 큰 폭으로 줄어든 겁니다.
현 추세로는 2024년 기후테크 업계의 자금조달 규모가 전년 대비 50%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블룸버그통신은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적 영향을 제한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이미 닫히고 있다”며 “이같은 중요한 시기에 기후테크에 투자 규모가 둔화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미국 대선 앞두고 투자업계 ‘관망 모드’로 전환 🗳️
정치적 불확실성이 기후테크 업계 투자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오는 11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 측 대선후보들은 온실가스 감축이나 기후적응과 관련해 상반된 입장입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는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해서는 기후테크로 더 많은 자금이 흘러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청정기술 세액공제가 현재보다 더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내 청정기술 세액공제를 어떤 식으로든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물론 DAC(직접공기포집)나 CCUS(탄소포집·활용·저장)같은 일부 기술들은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 입장도 공존합니다. 그의 주요 정치자금 기부자인 화석연료 기업들이 연이어 DAC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투자업계는 현 대선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매체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투자자와 기업들이 관망 모드로 전환했다”며 “일부는 트럼프 후보의 당선을 앞두고 비상 계획을 수립 중이다”라고 전했습니다.
피치북 또한 대선을 앞두고 투자업계가 불확실성에 투자를 고심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투자업계, 기후테크 + AI 기술 융합 스타트업에 관심 👀
달리 말하면 대선 직후 기후테크 업계 내 자금조달 하락세가 조만간 반전을 맞을 것이란 기대도 나옵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인하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청정전력 수급에 목말라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실리콘밸리 유명 억만장자인 코슬라는 핵융합이나 그린수소 같은 초기 단계 기술들이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전력 부문 탈탄소화와 AI에 대한 강렬한 전력수요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업계로 돈이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법무법인 굿윈의 파트너이자 회사 내 기후테크 실무 공동의장을 맡은 앤드류 스파크스 변호사 역시 비슷한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최근 기후대응과 AI를 접목시킨 기업들에 투자자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당장 저탄소 콘크리트 공장을 만드는 일과 비교해서는 자본 집약도가 낮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스파크스 변호사는 이야기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사이트라인클라이밋의 공동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킴 주우는 수요와 상업적 경로가 명확한 기후테크 기업들은 여전히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사이트라인클라이밋은 기후테크 전문 시장조사기관입니다.
주우 CEO는 배터리 저장 스타트업 폼에너지를 사례로 언급했습니다.
폼에너지는 올해 10월 시리즈 F를 통해 4억 500만 달러(약 5,590억 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했습니다.
폼에너지는 전력망에 100시간 연속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초대형 배터리를 개발했습니다. 기존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의 방전 수명이 4시간 내외인 것을 고려하면 폼에너지의 배터리는 25배나 더 오래 지속됩니다.
또 기존 리튬이온배터리와 달리 철과 공기를 사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방전 시 배터리셀 내부의 철이 산소와 반응해 산화철(녹)을 형성하고, 이때 에너지가 방출되는 원리입니다.
주우 CEO는 기후대응을 목표로 한 펀드 역시 여전히 활발하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또 기후테크에 투자하려는 ‘여행객 투자자(Tourist Investor)’가 점점 늘고 있다고 그는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헤지펀드나 뮤추얼펀드 등 비전통적인 VC 투자자를 지칭하는 업계 용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