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결산에서 그리니엄은 ‘다중위기(polycrisis)’를 2022년 단어로 꼽았습니다. 이는 여러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더 큰 위기를 만들어 내는 현상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2023년은 어땠을까요?
2023년 한해 소비·투자 등 경제는 더 위축됐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분쟁이 발생하며 지정학적 불안이 한층 고조됐습니다. 여러 기후데이터는 최고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6월초 지구 평균기온이 일시적으로 1.5℃를 넘었고, 11월 중순에는 2℃를 돌파했습니다. 두 기록 모두 일시적이긴 하나 인류 관측 사상 처음으로 기후대응 마지노선을 넘은 것입니다.
이미 2023년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2024년에는 이 기록이 경신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지구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열대화 시대가 시작됐다”고 표현했습니다.
동시에 올해는 기후테크 산업이 전면으로 나온 해입니다.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이 쏟아졌을뿐더러, 경기침체 속에서도 기후테크 산업은 비교적 선방했단 평가가 나옵니다. 해양 기반 탄소제거 등 초기 개발 단계에 머물던 스타트업들도 올해를 기점으로 실증 작업에 나선 것도 관측됐습니다.
기후위기가 정치·경제·사회·산업 등 인류 생활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인 동시에 이를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보입니다. 그중 2023년을 달군 핵심 이슈들을 되짚어 봤습니다.
[편집자주]
2023년 기후테크·순환경제 부문 10대 뉴스
1️⃣ 2023년 올해의 단어는 AI
오픈에이아이(OpenAI)가 개발한 ‘챗GPT’가 올해 전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챗GPT는 2023년 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용된 생성AI 도구로 꼽혔습니다.
영국 콜린스사전은 2023년 올해의 단어로 ‘인공지능(AI)’을 선정했습니다. 대개 올해의 단어는 잘 알려지지 않거나 새롭게 떠오른 단어를 선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럼에도 이미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AI를 선정했단 것은 그만큼 그 중요성이 커졌단 뜻입니다.
기후테크와 순환경제 산업에서도 AI가 깊숙이 파고 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그리니엄이 챗GPT에서 한국의 기후테크 현황을 물어봤습니다.
2️⃣ IPCC 6차 종합보고서 공개…의미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가 ‘제6차 종합보고서(AR6)’를 지난 3월 공개했습니다. 9년 만에 공개된 IPCC의 종합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는 간단명료합니다. 현 추세로는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단 것.
IPCC 핵심저자로 참여한 이준이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교수는 그리니엄과의 인터뷰에서 ‘기후탄력적발전(CRD)’을 강조했는데요. 기후대응이 한국 사회의 우선순위가 돼야 한단 점도 피력했습니다.
3️⃣ COP28 최종합의문에 포함된 ‘화석연료’ 단어의 의미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최종합의문에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연료로부터 전환’한다는 표현이 담겼습니다. 10년 안에 전환을 시작한단 문구도 명시됐습니다.
단, 전환 범위는 에너지 시스템에 한정됩니다. 플라스틱 등 화석연료를 원료로 하는 업계는 제외됩니다. 기후총회 역사상 ‘화석연료’란 단어가 들어간 것에 의의를 둔 곳도 있는 반면, 아쉬움이 남는단 의견도 나옵니다.
4️⃣ 2030 NDC 달성 위한 1차 탄소중립기본계획 발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한 제1차 탄소중립기본계획이 3월 21일 공개됐습니다. 전환 부문 감축량이 늘고, 산업 부문이 줄어든 것이 특징인데요. 에너지·산업 관련 전문가들은 고무적 결과라 평가하면서도, 실질적 이행을 위해선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목소리 높였습니다. 단, 일각에선 CCUS(탄소포집·활용·저장)와 국제감축목표가 늘어난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계획안 수립 시 소통 부족에 대한 비판도 계속됐습니다.
5️⃣ 韓 기후테크 유니콘 기업 10개 육성 위한 ‘기후테크 산업 육성 전략’ 의결
지난 6월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는 ‘기후테크 산업 육성전략’을 심의·의결했습니다. 2030년까지 민관 합동으로 145조 원을 투자한단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기후테크 유니콘 기업 10개 육성, 신규 일자리 10만 개 창출을 목표로 합니다. 또 기후테크 산업 육성에 어려움을 주는 규제들을 대거 개선할 것이라고 정부는 덧붙였습니다.
6️⃣ 그린수소 ‘유니콘 기업’ 세계 최초 등장
지난 10월 미국 그린수소 스타트업 일렉트릭하이드로젠(EH2)이 시리즈 C 투자에서 10억 달러(약 1조 3,000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았습니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굵직한 투자사가 대거 참여했습니다. 기업가치 10억 달러를 넘는 유니콘 기업이 그린수소 업계에 등장한 것은 EH2가 처음입니다. 자세한 기술은 영업비밀이나, 중국의 초저가 기술경쟁에도 자신이 있단 것이 사측의 말입니다.
7️⃣ 美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올해 3월 주요 스타트업과 벤치캐피털(VC)의 자금줄이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했습니다. 블룸버그통신과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은 SVB 파산으로 인해 기후테크 산업이 위기를 맞았다고 보도했습니다. 반면, 주요 금융 분석가와 투자자들은 기후테크 산업의 상대적인 약세를 예상했습니다.
결과적으론 경기침체로 인해 기후테크를 제외한 모든 산업군이 약진한 상황입니다. 물론 SVB 사태를 계기로 자금조달 방식이 더 다각화돼야 한단 평가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8️⃣ 2023년 최악의 실패 기술 사례 중 하나로 꼽힌 LK-99
8월 중순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상온·상압 초전도체 ‘LK-99’를 개발했다고 주장해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습니다. 직후 국내외 과학계가 진위 검증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검증에 나선 연구진 모두 LK-99이 초전도체가 아니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국 MIT테크놀로지스리뷰는 ‘2023년 최악의 실패 기술 사례’ 중 하나로 LK-99을 꼽았습니다. 다만, 이번 해프닝이 전 세계에 초전도체 화두를 던진 것은 사실인데요. 초전도체가 기후테크 산업에선 어떤 혁신을 불러올 수 있을까요?
9️⃣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 폐지 논란…일회용품 사용규제 ‘자율 참여’
지난 9월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의무 시행을 사실상 철회할 것이란 보도가 나왔습니다. 같은달 환경부는 지자체 의견을 폭넓게 수렴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유예·연기·축소 등 잦은 정책 변경으로 업계 혼선과 세금 낭비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도입을 위해 투입된 세금만 240억 원에 달합니다.
또 환경부가 당초 11월 24일부터 시행 예정이던 종이컵·플라스틱 빨대 사용금지 등 일회용품 사용규제의 계도기간을 연장하며 시장과 소비자들이 겪는 혼란은 더 가중됐습니다. 종이빨대 제조업체들은 회사 운영 자체가 어려워졌단 소식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 2024년에 더 주목해야 할 ‘플라스틱 국제협약’
‘플라스틱 종식을 위한 국제협약’의 초안이 지난 9월 공개됐습니다. 순환경제, 고위험 플라스틱 감축 등이 대거 담긴 것이 특징입니다. 구속력 있는 목표를 만든단 점에서 국가간 이견이 첨예한 상황. 중국·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 등은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 아닌 폐기물 해결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11월 열린 회의에서 초안은 기존 31장에서 100장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실제 어떤 문구를 담은 협약이 나올지 지켜봐야 하는데요. 관련 마지막 회의는 2024년 11월 우리나라에서 부산에서 열립니다.
2023년 올해의 순환디자인은?
그리니엄 편집팀이 뽑은 2023년 올해의 순환디자인은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는 ‘데사포테이토헤드(Desa Potato Head)’입니다. 뉴스레터 구독자 반응·홈페이지 유입률 등에서 독자분들의 반응이 가장 좋은 콘텐츠였습니다.
발리는 10월과 11월이면 몬순과 서풍으로 인해 바닷속 쓰레기들이 해변으로 밀려옵니다. 한해 최대 60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변에 쌓이는데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 디자이너들이 발리로 몰리고 있단 내용을 담은 콘텐츠였습니다.
데사포테이토헤드는 2010년 발리 유명 관광지인 스미냑 해변에 문을 연 리조트입니다. ‘데사(Desa)’는 인도네시아어로 마을이란 뜻합니다. 즉, 포테이토헤드의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요.
이 리조트가 주변 리조트와 다른 점은 순환경제에 기반에 설계됐단 것입니다. 건물 설계부터 내부 가구와 소품까지 모두 지속가능한 소재를 사용한 것이 특징인데요. 무엇보다 리조트 전체가 도화지가 되어 다양한 순환디자인 협업이 이뤄질 때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