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VC)의 자금줄이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자 주요 금융당국 및 기관 모두 상황을 예의주시 중입니다.

지난 8일(현지시각) SVB는 18억 달러(약 2조원)에 이르는 채권 투자 손실 규모를 공개했습니다. 이튿날인 9일 은행에서 420억 달러(약 55조원)가 빠져나갔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입·출급할 수 있는 모바일뱅킹이 SVB의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을 가속화했단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이에 미국 정부는 SVB 고객 자금을 보험 한도에 관계 없이 전액 지급 보증하기로 결정하면서 SVB 사태는 연쇄작용 없이 일단락하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SVB 파산 이후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에 150억 달러(약 19조원) 이상의 자금이 대거 유입되는 등 대형은행으로의 자금 이동이 가시화됐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중소형 은행을 중심으로 뱅크런 확산 우려 등 SVB 파산과 같은 사태가 다시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감이 조성됐습니다.

 

👉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한 이유는?

 

▲ 1983년 설립된 실리콘밸리은행SVB은 그간 기후테크 등 지속가능성 부문 주요 투자자임을 자처해 왔다 ©SVB 홈페이지 캡처

주요 전문가 “SVB 사태로 기후테크 산업 상대적 약세 예상” 📉

자산 규모로는 미국에서 16번째 규모인 SVB가 파산하자 블룸버그통신·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들은 ‘기후테크 산업’이 위기에 맞았다고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마크 카니 전(前) 영란은행(BoE) 총재는 SVB 사태가 기후테크 산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현재 유엔 기후행동 및 재정 특사를 맡은 카니 전 총재는 15일 열린 영국 의회 위원회 청문회에서 “SVB 사태가 기후테크 투자를 위한 자본의 가용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탄소감축 플랫폼을 개발한 스타트업 클라이밋클럽(Climate Club)의 창립자인 애덤 브라운 또한 “SVB가 (기후테크 산업을 이끈) 선구자였을지 모르나, 이 사태를 계기로 기후테크 산업을 향한 지원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미국 주요 금융 분석가와 투자자들은 SVB 사태로 인해 당분간 기후테크 산업의 상대적인 약세가 예상된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 실리콘밸리은행SVB 홈페이지에 따르면 SVB를 이용한 기후 및 지속가능성 부문 스타트업 수는 1550개에 달한다 ©SVB 홈페이지 캡처

기후테크 친화 은행이던 SVB 파산…“초기 스타트업 자금 확보 난항 전망” 💸

이는 SVB가 그간 기후테크 산업의 중요한 투자자를 자처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SVB는 “혁신경제의 은행으로서, 우리의 고객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도록 돕는다”는 사명을 공개했습니다. 그러면서 2027년까지 지속가능성 부문에 최소 50억 달러(약 6조 6,150억원) 이상을 제공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SVB를 이용한 기후 및 지속가능성 부문 스타트업만 1,550곳에 달합니다.

캐나다 기후테크 스타트업 프리시즌 AI(Precision AI)도 SVB로부터 초기 자금을 대출 받은 곳 중 하나였습니다. 이 스타트업은 제초제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드론을 설계하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프리시즌 AI 최고경영자(CEO)인 댄 맥켄은 미 패스트컴퍼니와의 인터뷰에서 “기후테크는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대개 많은 시간과 자본이 필요하다”며 “초기 자금이 필요했을 당시 SVB에 연락할 것을 제안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맥켄 CEO는 SVB가 기후테크에 친화적인 은행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빠른 수익을 요구한 기존 금융권과 달리 SVB는 기후테크가 실제 성과를 창출하기까지 최대 10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단 것을 이해했다고 맥켄 CEO는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SVB가 아니었다면 시드 단계(극 초기 단계) 스타트업이었던 프리시즌 AI가 150만 달러(약 19억원)를 대출받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2007년 설립된 미국 태양광 업체 선런은 그간 70만여개가 넘는 태양광 지불을 설치했다 선런은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초기에 투자한 대표적인 스타트업 중 하나다 ©SUNRUN

美 소규모 태양광 업체 직격타…“시스템 재건에 시간 걸릴 것” 😥

기후테크 전문 VC인 프렐류드벤처스(Prelude Ventures)의 가브릴엘라 크라 매니징 디렉터는 SVB에 예금한 기업들의 현금 수요를 계산하기 위해 지난 주말 내내 근무했습니다.

그는 “임금 지급도 못할 위기에 있는 회사들에 며칠 안에 유동성을 제공하려고 서두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SVB 파산 직후 일부 스타트업 경영진들은 자금 확보를 위해 고금리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고, 투자자들과 단기대출 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일단 SVB 파산으로 직격탄을 맞은 곳은 미국 내 소규모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입니다. 그간 SVB는 저소득층 주거지역에 공급되는 소규모 태양광 발전사업에 대한 융자 거래(프로젝트 파이낸싱)의 62%를 참여했습니다. 이는 약 32억 달러(약 4조 2,000억원)에 달합니다.

미국 최대 지역사회 태양광 관리업체인 아카디아(Arcadia)의 키란 바트라주 CEO는 “SVB가 여러 면에서 ‘기후은행’이었다”며 “시장 금융의 대부분을 한 기관이 담당했던 탓에 부수적인 피해가 많이 발생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바트라주 CEO는 “SVB가 없어짐에 따라 다른 금융기관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지만, 기존 시스템을 재건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주거용 태양광 시스템 업체 선런(SUNRUN)은 SVB 사태 직후 여러 다른 대출 기관이 접촉했단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SVB를 주 계좌로 사용하던 선런 SVB 사태 발생 초기인 8일 주가가 급락한 바 있습니다.

 

▲ 지난 10일현지시각 미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실리콘밸리은행SVB을 폐쇄하고 관련 거래도 중단시켰다 거래는 13일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감독 아래 재개됐다 ©Focal Foto

기후테크 전문 VC “SVB 사태로 기후테크 자금 조달 ‘큰 구멍’ 생겨” 💼

SVB 사태로 타격을 입은 곳 중 하나는 기후테크 전문 VC들입니다. SVB는 그간 투자조건부 융자(벤처대출) 제도에서 두각을 보였습니다. 이 제도는 은행 등 융자기관이 벤처투자를 이미 받았거나 받을 예정인 기업에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대신 소량의 지분인수권을 얻는 제도입니다.

융자전문기관 멀티펀딩(Multifunding)의 아미 카사르 CEO는 “벤처대출을 하는 다른 곳들도 있으나 SVB는 ‘1,000파운드(약 453kg)짜리 고릴라’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비유는 비즈니스 업계에서 영향력이 크고 막강한 회사를 뜻합니다.

식용포장재를 개발한 낫플라(Notpla) 등 유명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한 벨기에 VC인 에스타노르벤쳐스(Astanor Ventures)는 SVB 사태로 인해 기후테크 자금 조달 부문에 ‘큰 구멍’이 생긴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SVB 사태 계기로 기후금융 조달 방식 다각화 필요” 📊

SVB 사태를 계기로 기후금융 조달 방식이 더 다각화돼야 한단 분석도 나옵니다.

전 월스트리트 분석가인 브래드 핸들러는 정치전문매체 더힐(The Hill)에 기고를 통해 “SVB 사태는 하나의 은행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산업에 대한 위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계기로 더 다양한 자금 조달원을 확보해야 더 나은 기후테크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습니다.

더불어 기후테크 스타트업이 너무 초기 단계일 경우 공공기관이 이를 지원하고, 산업을 더 육성하기 위해선 민간 자본이 더 유입돼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습니다. 또 주요국의 대형은행들이 기후테크 부문 투자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우리 기업도 SVB 사태에 영향을 받았을까? 💰
SVB 사태로 인해 국내 기업과 VC의 피해는 제한적이란 분석입니다. 국내 기업과 VC들이 SVB에 예금을 예치하거나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미국 현지에 법인을 설립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미국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한국계 VC가 직격타를 맞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계 VC인 알토스벤처스(Altos Ventures)는 펀드 포트폴리오의 60~80%를 SVB와 거래 중이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기관인 한국벤처투자와 벤처기업협회 등은 이번 사태로 인해 투자심리 전망이 얼어붙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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