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배터리 기업인 노스볼트가 자금난 속에 끝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고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각) 밝혔습니다.
이날 노스볼트는 미국 텍사스 남부 파산법원에 연방파산법 제11조(챕터 11)에 따른 파산호보를 신청했습니다.
챕터11은 기업이 법원의 감독 아래 영업을 지속하면서 채무를 재조정하는 절차를 뜻합니다. 자회사를 청산하는 식으로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노스볼트가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회사내 가용 현금은 3,000만 달러(약 420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노스볼트를 일주일 간 운영할 수 있는 자금에 해당합니다.
반면, 부채는 58억 5,000만 달러(약 8조 2,000억 원)에 달했습니다. 사측은 추가 자금조달을 유치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협상이 결렬돼 실패했습니다. 스웨덴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노스볼트에 구제금융이 없을 것이란 점을 못 박았습니다.
노스볼트는 “챕터11은 스웨덴이나 다른 많은 국가의 일반적인 파산 절차와 다르다”며 “이를 통해 오히려 약 1억 4,500만 달러(약 2,030억 원) 규모의 담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기가팩토리를 건설하기로 한 독일·캐나다에서 별도 보조금을 받은 덕에 정상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을 피력했습니다.
회사는 추가 투자금을 확보하여 2025년 1분기(1~3월)까지 파산보호를 벗어난다는 계획입니다. 노스볼트가 필요한 추가 자금 규모는 최대 12억 달러(약 1조 6,815억 원)로 알려졌습니다.
이튿날(22일) 회사 경영을 책임지던 피터 칼손은 노스볼트 최고경영자(CEO)직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는 선임 고문으로 물러나 회사 이사회 구성원으로 남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기후테크 유니콘 기업이 파산보호까지 이른 배경은?” 🔋
노스볼트는 유럽 내에서 배터리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2015년 설립된 업체입니다. 폭스바겐그룹·골드만삭스 등으로부터 투자받은 총액만 150억 달러(약 21조 원)가 넘습니다. 덕분에 기업가치가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 이상인 유니콘 기후테크 기업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대규모 투자금을 기반으로 회사는 빠르게 시설을 확장했으나, 실제 품질과 생산능력은 목표치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 가운데 전기자동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과 아시아 기업과의 가격 경쟁으로 재무 상황이 빠르게 악화했습니다.
올해 6월 BMW그룹과 맺기로 했던 20억 유로(약 2조 9,350억 원) 상당의 계약 건이 취소되면서 파산 위험신호가 감지됐습니다. 이후 9월 비용절감 전략의 일환으로 회사 전체 인원 7,100여명 중 1,600명을 해고하는 계획도 발표합니다.
회사 사업의 확장도 역시 중단됐습니다. 스웨덴 셸레프테오에 소재한 배터리셀 제조 공장 ‘노스볼트 에트’만 현재 운영 중입니다. 회사 사업 확장을 담당하던 자회사는 이미 재정난으로 파산했습니다.
폭스바겐 등 기존 투자자들 역시 노스볼트와 거리를 두는 듯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지분 21%로 회사 최대 주주인 폭스바겐은 노스볼트 이사회에서 물러났습니다.
볼보자동차 역시 노스볼트와 만든 합작사 정상화를 위해 칼을 빼들었습니다.
볼보는 “배터리 합작사에 대한 노스볼트의 주식을 인수하기 위해 환매권을 행사할 것을 통보했다”고 올해 10월 밝혔습니다. 해당 합작사는 노스볼트의 자금난으로 인해 당초 목표로 했던 투자가 제때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골드만삭스 1조원 손실…수출입은행 역시 난감 💸
당장 노스볼트에 투자한 기업들 역시 모두 돈을 날리게 됐습니다.
골드만삭스가 대표적입니다. 골드만삭스 산하 사모펀드는 약 8억 9,600만 달러(약 1조 2,550억 원)를 노스볼트에 투자한 2대 주주였습니다.
23일 골드만삭스는 투자자들에게 서한을 보내 “(노스볼트에 투자한 돈을) 연말에 전액 상각해 0원이 될 것”이라고 안내했습니다. 불과 7개월 전만 해도 골드만삭스는 투자자들에게 2025년 노스볼트의 투자가치가 6배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소개해 왔습니다.
노스볼트 최대 주주인 폭스바겐 역시 비슷한 규모의 손실을 감수할 것으로 보입니다. 폭스바겐은 노스볼트 전환사채를 3억 5,500만 달러(약 4,975억 원) 규모로 매입했습니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노스볼트의 주요 대출기관에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노스볼트는 노스볼트 에트 공장 증설을 위해 올해 초 23개 금융기관과 50억 달러(약 7조 원) 상당의 ‘무상환청구 프로젝트 금융(Non-Recourse PF)’을 체결했습니다.
노스볼트는 당시 계약이 유럽에서 조달한 녹색대출 가운데 최대 규모라고 밝혔습니다. 수출입은행은 노스볼트에 8,700만 달러(약 1,215억 원)를 지원했습니다. 만기일은 2029년 12월 31일까지입니다.
수출입은행은 향후 미국 법원의 결정에 따라 대응 방향을 정한다는 계획입니다. 법원의 최종 심리는 오는 12월 17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한국무역보험공사 역시 금융약정에 참여한 방식으로 노스볼트의 자금조달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달렸던 노스볼트” 🗺️
노스볼트의 파산보호 신청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두고 여러 말이 오갑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회사 임원진이 무능한 점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경험이 부족한 가운데 너무 빨리 많은 것을 하려고 했다는 지적입니다.
이제는 CEO 자리에서 물러난 칼손은 창업 직전 테슬라에서 공급망 책임 임원으로 일한 바 있습니다. 창업 후 그는 공격적인 경영 전략을 취해 왔습니다.
2021년 스웨덴의 첫 공장에서 배터리셀이 양산되자마자, 추가로 공장을 건설할 계획을 내놓습니다. 또 독일과 캐나다에 공장을 추가로 짓겠다고 발표합니다. 나트륨이온배터리 개발에 이어 폐배터리 재활용까지 사업을 확장하려 했습니다.
정작 스웨덴 첫 공장의 배터리 생산능력은 당초 목표치에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생산량을 기록했습니다.
칼손 전(前) CEO와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임원은 FT에 “너무 힘들었다”며 “롤러코스터 같은 여정이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직원은 생산 현장의 인력난 문제를 호소했습니다. 회사의 첫 공장인 노스볼트 에트는 스웨덴 북부 셸레프테오에 위치했습니다. 매우 고립된 지역이라 사람을 유치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하소연이 잇따랐습니다.
회사는 당초 침체돼 있던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고자 셸레프테오에 공장을 건설했습니다.
인력난이 심각해 갓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 부서 책임자를 맡았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여기에 장비 불량문제와 안전사고 문제도 잇따랐습니다. 올해 들어 노스볼트 공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3명입니다. 이와 관련해 경찰 조사가 계속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