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의 연임이 확정됐습니다. 2019년 EU 최초의 여성 집행위원장이란 기록을 세운데 이어 ‘여성 최초 연임 집행위원장’이란 기록도 세우게 됐습니다.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각)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 본희의장에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연임 인준 투표 결과, 전체 720표 중 401표의 찬성을 받으며 연임이 확정됐습니다. 반대는 284표, 기권은 15표였습니다. 나머지는 무효표로 처리됐습니다.
집행위는 EU의 행정부 격인 곳입니다. 법안 발의와 정책 이행 그리고 예산 관리·집행 면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합니다. 집행위원장은 27개 EU 회원국을 대표하는 정상으로 불립니다.
세계 정세 불확실성…폰데어라이엔 “강력한 유럽” 강조 🌐
집행위원장 인준을 위해서는 720명 중 과반(361명) 이상이 찬성해야 합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첫 선출인 2019년 인준 투표 당시에는 불과 9표 차이로 간신히 통과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을 대체할 인물이 없었을뿐더러, 유럽 안팎의 정세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안정적인 리더가 필요하다는 기류가 반영된 결과로 보입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여러 굵직한 문제를 거치며 정치력과 지도력을 검증받았습니다.
이는 투표 직후 나온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성명에서 잘 드러납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유럽인들은 깊은 불안과 불확실성의 시기에 직면해 있다”며 “가족들은 생활비와 주택비로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목소리 높였습니다. 이어 “청년들은 지구, 미래 그리고 전쟁의 전망에 대해 걱정한다”며 “기업과 농부들도 압박받고 있다”고 성토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무기화되고 경쟁이 치열한 세상의 증상이다”라며 “그러나 ‘강력한 유럽’이 이같은 도전에 맞설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폰데어라이엔 2기 체제 모습은? 🤔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임기는 오는 2029년까지입니다.
‘폰데어라이엔 2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이날 발표된 31쪽 분량의 공약집에서 향후 5년간의 EU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크게 녹색산업 경쟁력과 국방력 강화가 대두된 점이 특징입니다.
1️⃣ EU 그린딜 유지…이행 초점 맞출 것
먼저 지난 5년간 주력한 녹색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입니다.
‘EU 그린딜’을 거론한 것입니다. 이는 2050년 기후중립 달성을 위한 사회·산업 전반에 걸친 탈탄소화 로드맵입니다. 2019년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제안했습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지난 5년간 그린딜을 통해 많은 것을 성취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또 “그린딜에 명시된 목표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극우세력이 약진한 유럽의회에서 그린딜을 약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내용으로 풀이됩니다.
이어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제는 EU가 합의한 내용을 이행하고 모든 이해관계자가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 우리의 초점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2️⃣ 녹색산업 경쟁력 확보 ‘청정산업협정’ 제안
산업계 온실가스 배출량 억제 노력을 지원하는 동시에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입법패키지인 ‘청정산업협정(Clean Industrial Deal)’을 제시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이는 유럽 내 산업과 기반시설의 탈탄소화를 목표로 합니다. 철강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의 탈탄소화를 위해 행정절차 간소화와 투자 확대에 초점을 맞춘다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재생에너지 ▲전력망 ▲CCUS(탄소포집·활용·저장) ▲수소 등과 관련된 기반시설 투자도 강화됩니다. 이를 통해 미국과 중국을 제치고 녹색산업 주도권을 주도하겠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나아가 청정산업협정을 통해 화석연료로부터 독립하고 역내 에너지 가격을 낮추겠다는 전략도 깔려 있습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연설에서 “높은 에너지 가격이 에너지 빈곤의 주요 원인이다”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화석연료 공급을 차단함으로써 우리를 협박한 것을 저는 잊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서방세계가 대러제재에 나서자, 러시아 역시 유럽으로의 천연가스 공급 상당수를 중단했습니다. 당시 공급 부족과 가격 급등으로 인해 유럽은 에너지위기에 직면한 바 있습니다.
청정산업협정의 구체적인 윤곽은 취임 후 100일 안에 발표될 것이라고 그는 공언했습니다.
한편,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올해 상반기 EU 전력 생산량의 약 50%가 재생에너지를 포함한 청정에너지에서 나왔다”며 “유럽 내 청정기술 투자 역시 3배 이상 늘어났다”고 밝혔습니다.
3️⃣ 1990년 대비 2040년까지 90% 감축 목표 법제화
1990년 대비 204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90% 감축하기로 한 ‘2040 기후목표’ 역시 법제화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는 2050년 기후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EU 차원의 중간 목표입니다. 올해 2월 집행위가 구체적인 수치를 내놓았습니다.
2040 기후목표는 이번에 새로 출범한 집행위와 유럽의회에서 최종 결정됩니다. 당초 극우세력의 약진으로 새 집행위가 강력한 기후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란 예측이 나온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2040 기후목표를 그대로 법제화에 나선 것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유럽의회 내 정치그룹(교섭단체) 녹색당동맹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계산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그러나 일정 부분 기후대응 정책은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공약집에서 ‘녹색(10번)’이나 ‘기후(22번)’보다는 ‘경쟁(38번)’과 ‘투자(42번)’가 더 많이 언급됐습니다.
같은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폰데라이엔 2기 체제에서 거의 모든 환경 정책이 산업적 쇄신을 거쳤다”고 평가했습니다.
히트펌프가 대표적입니다. EU는 건물 부문 탈탄소화 수단의 핵심으로 히트펌프 보급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폰데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탈탄소화보다는 역내 기후친화적 기술 제조 역량 강화를 목표로 히트펌프 기술개발이 촉진돼야 한다는 계획을 제안했습니다.
향후 발의될 신순환경제계획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폴리티코는 “폐기물 분류 방법보다는 청정기술 제조에 필요한 중요한 원자재를 확보하는 내용이 더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4️⃣ ‘유럽방위동맹’ 구축 시작
안보·국방 강화의 중요성이 강조된 점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유럽 내 방위의 근간이란 점을 언급했습니다. 그럼에도 이제는 ‘유럽방위동맹(European Defence Union)’을 구축할 때라고 그는 밝혔습니다.
당장 국방 담당 집행위원직이 신설됩니다. 또 투자 수요를 망라한 ‘국방 미래 백서’를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공동 국방예산이 없는 EU에서 이를 공약으로 내세운 건 거의 금기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해 안보 불안감이 고조되며 분위기가 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前)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후보는 나토 유럽 회원국들의 방위비 지출이 저조하단 점을 비판해 왔습니다.
러시아·중국 강경 기조 유지…‘모호한 언어’로 결속 나서 🌐
일단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강경 기조는 유지될 전망입니다.
대신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의 협력이 강조됐습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일본, 한국, 뉴질랜드, 호주와 협력할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한편, 폴리티코 등 일부 외신은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모호한 언어’로 결속에 나섰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 목표가 대표적입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주도한 목표이나, 그가 속한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EPP) 내부에서는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반면, 녹색당 등 일부 정당은 목표 시점을 더 앞당길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기술중립적 접근 방식을 통해 목표가 일부 수정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습니다. 동시에 이미 목표가 약화됐는 점도 분명히 했습니다.
폰데어라이엔, EU 녹색산업 경쟁력 강화 피력 🧪
폰데어라이엔 2기 체제는 이전 1기보다 대내외적으로 여러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보입니다.
극우세력이 약진해 뒤바뀐 유럽 정치 지형도,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경기침체 등이 대표적입니다. 산업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자금을 어디서 끌어올 것인지도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그럼에도 이같은 도전을 오히려 기회로 삼겠다는 것이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말입니다.
특히, 청정기술을 포함한 녹색산업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이 공약문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다가올 10년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 이는 사업에 관한 것이 아니다. 청년들에게는 2030년, 2040년, 2050년이 코앞에 있다. 그들은 기후보호와 경제성장이 조화를 이뤄야 한단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도전에 나서지 않으면 그들은 결코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경쟁력의 문제일뿐만 아니라, 세대 간 형평성의 문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연임 모아보기]
① 역내 녹색산업 경쟁력 확보 천명
② 韓에 미칠 영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