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독일 사례를 참고해 한국 역시 산업 부문 전문성을 가진 부처를 중심으로 탄소중립 산업정책 거버넌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왔습니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얼마전 탄소중립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일본·독일의 전략과 국내에의 시사점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보고서는 제조업 기반 경제 구조를 가진 일본과 독일의 탄소중립 및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입법과 전략 수립 동향을 살펴보고, 한국에 필요한 시사점을 도출했습니다.
9일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주요국들이 청정에너지 기반의 경제체제를 선제적으로 구축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유럽연합(EU) 탄소중립산업법(NZIA),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대표적입니다. 두 법안 모두 탄소중립 기술 산업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연구원은 “이 움직임은 보호무역주의와 산업정책의 부활로 해석된다”며 “주요국 산업전략의 핵심은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경제안보와 산업경쟁력 확보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탄소중립 기술을 육성할 제조업 기반 회복이 대두됐다는 것이 연구원의 말입니다.
“탄소중립 기조 속 주요국 제조업 강화…한국에 큰 위협”
제조업은 탄소집약적일뿐더러, 탈탄소화가 어려운 산업군으로 꼽힙니다. 탈탄소화 기술개발의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설비 교체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여러 행정적 규제란 장애물도 있습니다.
철강 산업이 대표적입니다. 철강의 기존 용광로를 전기로나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교체할 수 있습니다. 단, 수소환원제철은 아직 대규모 생산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안정적인 청정수소 공급 방식 역시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국내 철강업체는 수소환원제철 고로 1기 건설에 최소 10조 원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한 바 있습니다.
경제 구조에서 제조업 기반이 강한 한국에서 탈탄소화가 유달리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2010년대 중반부터 세계 제조업 5~6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8%에 이릅니다. 이는 중국(28.2%)과 함께 가장 높은 비중인 겁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주요국의 제조업 기반 강화 추세에 있습니다.
EU·미국 등 주요국이 자국 탄소중립 기술 육성에 나서며 자국 제조업을 빠르게 강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이같은 기조가 더 빠르게 강화될 여지도 있습니다.
연구원은 “이러한 추세는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대응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탈탄소 전환에 사활 건 일본…10년간 150조엔 투자
연구원이 일본과 독일 사례를 들고 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세계 제조업 각각 3위와 4위를 다투는 곳입니다. 경제 구조가 한국과 비슷한 겁니다.
두 나라는 이미 경제사회 전반의 녹색전환을 추진하고자 여러 입법과 전략을 수립한 상태입니다.
2023년 5월 일본은 ‘탈탄소 성장형 경제 구조에의 원활한 이행의 추진에 관한 법률(이하 GX 추진법)’을 제정했습니다. 해당 법을 기반으로 ‘GX 추진전략’을 수립했습니다.
향후 10년간 녹색전환에 필요한 150조 엔(약 1,385조 원)을 민관이 함께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추진전략은 현재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GX 추진기구에서 총괄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민간이 공동출자해 설립된 곳입니다.
GX 추진전략은 크게 ①안정적 에너지 공급 대전제로 한 GX 정책 ②탄소가격제 도입 ③국제협략 ④사회 전반 걸친 GX 추진 ⑤이행 평가 및 검토 등 5가지 본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시행 초기인 만큼 아직 구체적인 성과는 없으나, 일본 산업계들의 관심은 높은 편입니다.
가령 작년 2월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1조 6,000억 엔(약 15조 원) 규모의 GX 경제이행체를 발행했습니다. 보험사와 은행 등 투자자들이 참여해 약 3배의 입찰률을 기록했습니다.
이중 55.5%는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에서 운영되는 ‘그린혁신기금’과 과 ‘포스트 5G 정보통신 시스템 기반 연구개발 사업’ 등에 활용됩니다.
독일, 에너지위기 계기로 산업 부문 녹색전환 서둘러
독일 역시 EU의 탄소중립산업법 초안 발표 후 자국 산업 기반 재편과 경제안보를 위해 ‘전환기 산업정책’을 2023년 3월 발표했습니다. 연방경제기후보호부가 정책을 총괄합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에너지위기가 심화하자 산업 전반에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독일 정부의 설명입니다.
전환기 산업정책은 세계 경제질서 변화 과정에서 독일이 직면한 도전과제에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자국의 산업정책에 전략적 방향성을 크게 3가지를 제시했습니다.
▲국내 사업 환경 강화 ▲적극적 자금 지원정책 ▲유럽적 관점에서 접근 순입니다. 마지막 유럽적 관점에서의 접근이란 말은 독일 전환기 산업정책이 EU의 탄소중립산업법이나 그린딜 등에 일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독일의 경우 산업계 전환을 지원하고자 탄소차액계약(CCfD) 제도를 운용 중입니다.
이는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 시설에 투자할 경우 정부와 미리 협의해 미리 탄소가격을 정해 계약하는 겁니다. 추후 배출권 가격이 탄소계약 가격보다 낮으면 정부가 그 차액을 보전해 줍니다. 덕분에 기업은 경제적 손해 걱정 없이 감축 시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작년 3월 공개입찰을 통해 15개 기업을 선정했고, 이들 기업에 향후 15년간 총 28억 유로(약 4조 2,060억 원)를 지원합니다.
이밖에도 ‘산업 전용 전기요금 패키지’ 제도도 운용 중입니다.
전기세 인하나 전기요금 보전 등을 통해 기업이 부담하는 전기요금을 경감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028년까지 280억 유로(약 42조 원)를 지원한다는 구상입니다.
국회미래연구원, 한국 산업 부문 탄소중립 대전환 전략 필요
연구원은 한국 역시 제조업 기반 산업 현실을 고려해 산업 부문 탄소중립 대전환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여기에는 기존 산업의 탈탄소 전환과 탄소중립 신산업 육성이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연구원은 “산업 부문 탄소중립 전환에 대한 명확한 개념과 범위 그리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며 “전환 과정에서 국가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도록 산업경쟁력 확보와 경제안보를 목표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전략 수립 시 산업 전환에 필수적인 ▲에너지 ▲무역·통상 ▲기반시설 구축 ▲인력양성 등 유관 정책들을 연계하여 종합적이고 포괄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기관은 덧붙였습니다.
현재 22대 국회에는 이른바 ‘탄소중립산업 육성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이하 탄소중립산업법)’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의정부갑)이 대표발의했습니다.
국내 탄소중립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효율적인 지원체계 마련 및 조세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현재 상임위원회에서 심사 중입니다.
연구원은 또 일본과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도 수립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기존 예산 투자 체계 개선의 필요성도 언급됐습니다.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 탄소중립기본계획 예산, 기후대응기금 등 기존 재원 배분체계를 재검토하고 산업지원 방안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원의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연구원은 산업 부문 전문성을 가진 경제·산업 담당 부처를 중심으로 탄소중립 산업정책 거버넌스를 구축할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기관은 “현재 산업정책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며 “기후정책과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를 신설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적어도 부처 간 조정 기능에 대해 명확한 법적 지위가 부여돼야 한다는 것이 연구원의 설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