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체 기업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중견·중소기업 상당수는 탄소중립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중견·중소기업) 대다수가 탄소중립 자체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자동차 부품기업 신도의 조찬홍 연구소장의 호소입니다.
그는 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중소·중견기업이 원하는 탄소중립 지원 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습니다.
토론회는 국회기후위기탈탄소경제포럼·녹색전환연구소·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공동 주최했습니다.
탄소중립이란 국제사회의 트렌드 속에서 우리나라 중소·중견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맞춤형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공통된 제언이 토론회 내내 쏟아졌습니다.
주요국 탈탄소화 지원 정책 현황은? 🤔
이날 첫 발제를 맡은 김은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주요국의 탄소중립 지원 추진 동향을 이야기했습니다.
현재 국제사회 탈탄소화를 주도하는 유럽연합(EU)이 먼저 소개됐습니다. 김 전문연구원은 “넷제로산업법(NZIA)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NZIA는 탈탄소화나 기후테크와 관련된 EU 역내 제조 역량을 2030년까지 4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지난 5월 EU 차원의 모든 입법 절차가 완료됐습니다.
법을 통해 청정기술 사업 인허가나 기술개발과 관련한 불필요한 행정절차를 제거하는데 주목해야 한다고 김 전문연구원은 강조했습니다.
그중 스웨덴과 독일 사례가 소개됐습니다. 두 국가 모두 한국과 마찬가지로 제조업 비중이 높고 경제가 수출에 의존하는 형태입니다.
스웨덴의 경우 ‘기후산업도약(Climate·Industrial Leap)’이란 사업을 운영 중입니다.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으나 보조금이 없어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프로젝트에 정부가 최대 5년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독일 역시 산업계 탈탄소화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추진 중이라는 점이 언급됐습니다.
미국도 산업 부문의 탈탄소화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2022년 발효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대표적입니다. 향후 10년간 기후대응과 에너지안보 향상을 위한 로드맵과 투자 계획을 담고 있습니다.
김 전문연구원은 오는 11월 열릴 미국 대통령 선거의 향방에 따라 기후정책의 방향성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나 민주당 유력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모두 일자리 창출과 역내 산업 경쟁력을 향상하려는 점은 동일하다고 그는 밝혔습니다.
최근에는 일본의 탈탄소화 정책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김 전문연구원은 “최근 일본의 주요 정책 문서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디지털전환과 녹색전환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일본이 내놓은 ‘GX(녹색전환) 추진전략’ 덕분입니다. 탈탄소·에너지안보·산업경쟁력 강화를 골자로 한 법입니다. 녹색전환을 통해 국가 경제의 신성장동력을 창출한다는 계획입니다.
주요국 녹색전환 공통점, ①로드맵 ②예산 ③국제협력 🏛️
EU·미국·일본의 녹색전환 추진 계획의 공통점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 중장기적 계획을 담은 법이나 전략을 수립했다는 점입니다. EU의 NZIA, 미국의 IRA, 일본의 GX 추진전략이 대표 사례입니다.
둘째, 녹색전환을 위한 예산을 마련할 방법 역시 확보했습니다.
일례로 EU는 2027년까지 전체 예산 가운데 장기재원과 기금의 30% 이상을 기후대응에 사용하도록 설정했습니다. 약 5,500억 유로(약 827조원)에 이릅니다. 미국 역시 IRA를 통해 향후 10년간 3,690억 달러(약 511조원)를 지원합니다. IRA 발효 후 현재까지 집행된 203억 달러(약 28조원)로 추정됩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녹색전환 관련 일본 경제산업성의 예산안만 1조 985억 엔(약 10조원)에 이릅니다. 일본 정부는 향후 10년간 GX 전략 추진을 위해 약 150조 엔(약 1,365조원) 규모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마지막은 청정기술 연구개발(R&D)과 역량 강화를 위해 국제협력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일본은 공정개발원조(ODA)를 적극 활용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개발도상국 지원을 돕고 있습니다. 주요 대상국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입니다.
일본은 최근에 아시아태평양 10개국과 함께 ‘아시아무배출공동체(AZEC)’란 플랫폼도 설립했습니다. 탈탄소화 금융과 기술 그리고 인력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韓 중소기업 77.8% “탈탄소화 지원사업 잘 몰라” 📊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중소·중견기업 탈탄소화 지원 정책은 어떨까요?
김 전문연구원은 한국의 기업 탈탄소화 지원 정책을 크게 4가지로 구분했습니다. ①감축설비 도입 및 연료 전환 지원 ②기술혁신 및 R&D 지원 ③융자·보증 등 금융 지원 ④기타 순입니다.
그는 “한국 역시 탈탄소화 지원 정책이 정말 많다”며 “우리나라는 대개 감축설비 지원이나 기술혁신 지원이 많다”고 소개했습니다. 또 지원이 패키지 형식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습니다. 기업의 현황을 진단한 후 컨설팅을 통해 탈탄소화 계획 수립까지 제공한단 뜻입니다.
그러나 정책이 많다고 좋은 뜻은 아닙니다. 정작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은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김 전문연구원의 말입니다.
2023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250곳 중 189곳이 ‘지원사업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어서’ 탈탄소화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전체 응답의 77.8%에 이릅니다.
또 어떤 사업이 자사에게 적합한지 판단하기 어려워 탈탄소화 사업에 지원하지 못한다는 응답도 18.9%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중소기업 스스로 정보를 수집해 자사에 적합한 사업을 선별해 신청하는 일부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본과 대응 인력 모두 현저히 부족한 상황에서 지원사업을 찾는 일부터가 큰 과제라고 김 전문연구원은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설문조사에서 온실가스 감축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대응 자금 부족’과 ‘어떤 감축 노력이 자사에게 적합한지 판단하기 어려움’이란 선택 비중이 각각 21.3%와 17.5%로 가장 높았습니다.
R&D 확대…“배출량 저감 효과 평가해야” ☁️
이에 김 전문연구원은 국내 중소·중견기업 탈탄소화 지원 정책의 효과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단 점을 강조했습니다.
탄소중립 관련 정보와 제조 역량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의 필요성도 언급했습니다.
나아가 중소·중견기업이 실제로 지원 정책을 통해 배출량을 감축했는지 그 효과성을 정기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단 점도 강조됐습니다.
기후테크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제언도 내놓았습니다. 구체적으로 기업 규모가 1,000억 원 미만인 중소기업이나 기후테크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한 투자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기후테크 산업 내 중소기업들 역시 R&D 규모를 이어가고 있고, 정부 역시 지원하고 있으나 그 기간이 5년 미만으로 짧다는 것이 김 전문연구원의 지적입니다.
김 전문연구원은 “기후테크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에 대한 지원 기간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국내에서 시장이 없으면 국외 진출 역시 어렵다”고 피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이나 EU와 마찬가지로 탈탄소화와 기후테크와 관련된 다자협의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술협력을 모색해야 한다고 그는 전했습니다. 모든 협의체에 참여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수많은 기후테크 중에서 어느 기술 분야에 힘을 쓸지 방향성이 갖춰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그린수소·재생 플라스틱 등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에 있어 파트너 국가를 찾아야 한다고 김 전문연구원은 덧붙였습니다.
[중소·중견기업 탄소중립 지원 방안 토론회 모아보기]
① 한국 중소·중견기업 탈탄소화 지원 정책 시급
② 기후통상 규제에 韓 수출기업 ‘비상’…2030 로드맵·탈탄소 예산 필요
③ 자금은 충분…중소·중견기업 녹색전환 위해선 녹색금융 문턱 낮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