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목표로 부산에서 국제협약 마련 논의를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이하 5차 회의)가 열리고 있습니다. 5차 회의는 오는 12월 1일까지 개최됩니다.
회의 폐막까지 불과 이틀을 앞두고 협상이 정리된 초안이 29일 처음 공개됐습니다.
이날 오후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 위원회 의장이 공개한 ‘의장 초안 문안이 포함된 비공식 문서(신규 문서)’입니다.
빠른 논의를 위해 발디비에소 의장이 회의 한달전 미리 정리된 협약 초안인 ‘제3차 비공식 문서(3차 문서)’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등 산유국·생산국의 반발과 소위 ‘지연전술’로 회의 5일차까지 논의는 지지부진했습니다. 기한 내 협약 문구가 완성되지 못할 수 있단 우려도 나왔습니다.
이에 발디비에소 의장은 논의를 가속화하기 위해 모든 공식 회의를 28일 오후 9시까지 정리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후 비공식 회의를 독려해 논의를 진전시킨 후 오늘(29일) 오후 2시께에 정리된 문서를 공개할 계획이었습니다.
해당 문서는 예정된 시간을 조금 넘겨 4시경 공개됐습니다.
5차 회의 첫 협약문 등장…주요 쟁점은 ‘제6조’ 🤔
그리니엄이 살펴본 결과, 이날 공개된 신규 문서는 총 41쪽 32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발디비에소 의장이 제안한 3차 문서(18쪽 31개 조항)보다는 증가하기는 했으나, 마지막 공식 초안(79쪽 42개 조항)보다는 확실히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2개 조항 중 25개 조항에서는 괄호([])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었습니다. 괄호는 해당 문구·단어가 아직 합의되지 않았단 뜻입니다.
반면, 남은 쟁점에 대한 이견은 여전히 분분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조항은 플라스틱 생산과 관련된 제6조입니다. 조항 이름은 ‘공급(SUPPLY)’ 또는 ‘지속가능한 생산(SUSTAINABLE PRODUCTION)’으로 제안됐습니다.
정리된 내용은 명확합니다. 2가지 선택지(Option)가 제시됐습니다.
선택지1은 텍스트 없음(no text), 즉 플라스틱 생산 관리에 대한 언급을 제외하는 겁니다. 사우디 대표단은 공급 조항 삭제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반대로 선택지2에는 생산 관리에 대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제1차 당사국총회에서 1차 플라스틱 폴리머의 생산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줄이기 위한 전지구적 목표를 협약의 부속서로 채택한다”입니다.
기후총회처럼 ‘플라스틱 총회(COP)’를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이후 플라스틱 총회에서 1차 플라스틱 폴리머 규제를 위한 목표를 만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당사국은 플라스틱 전주기에 걸친 조치도 취해야 합니다. 아울러 5년마다 각국의 진전을 검토해 갱신된 목표를 채택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플라스틱, 오염 피해 vs 경제 피해 두고 대치 중 🥊
협약의 ▲목표(1조) ▲플라스틱 제품(2조) ▲우려 화학물질(3조) ▲재원(10조) ▲건강(19조) 등 다른 쟁점들에도 괄호가 다수 포함됐습니다.
주요 쟁점은 ①플라스틱 전주기 포함 여부 ②오염자 부담 원칙 포함 여부 ③우려 화학물질 규제 포함 여부 ④플라스틱 관련 개념 정의 ⑤전용 신규 기금 마련 ⑥보건 관련 우려 인정 여부 등으로 정리됩니다.
유럽연합(EU)과 군소도서국은 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끝내기 위해서는 플라스틱 업스트림을 포괄하는 전주기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산유국·생산국의 책임을 인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용 기금을 마련해줄 것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한 보건 문제에 대한 인식은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반면, 산유국·생산국은 관련 규제가 각국의 경제발전에 대한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이에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BDR)’ 원칙을 적용할 것을 요구합니다. 즉, 개발도상국에는 더 유연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플라스틱 오염 끝장낼 ‘플라스틱 총회’ 열리나 🗺️
이외 조항에 대해서는 대부분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제품 디자인 ▲폐기물 관리 ▲기존 폐기물(레거시 플라스틱) 처리 등이 포함됩니다.
일명 ‘플라스틱 총회’를 개최한단 내용도 담겼습니다. 생물다양성협약(CBD)과 마찬가지로 2년마다 개최될 예정입니다.
물론 합의 수준이 높다고 해서 뒤집힐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산유국 등 강력한 협약을 반대하는 국가들이 동의 수준이 높은 항목에 대해서도 이견을 표출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발디비에소 의장은 지난 27일 관련 항목들을 법률문안그룹(LDG)으로 넘겨 법률적 문안으로 빠르게 다듬자고 제안했습니다. 사우디 대표단은 합의가 끝나지 않은 사항이라며 이에 반대했습니다.
29일 취소된 본회의가 언제 재개될지도 미정인 상황입니다.
EU 등 89개국, ‘생산’ 조치 포함 촉구…한국은? 🌐
신규 문서 공개 직후 일부 국가 대표단은 29일 저녁 기자회견을 열고 협약 내에 생산과 관련된 조치가 포함될 것을 강력하게 촉구했습니다.
기자회견에는 EU·헝가리·프랑스·피지·파나마·미크로네시아 대표단이 참석했습니다.
아니코 라이스 헝가리 환경부 장관은 “그동안 많은 기술을 개발했지만 아직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100%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생산감축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결코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시벤드라 마이클 피지 환경기후변화부 상임비서도 “생산량을 줄이겠다는 목표가 없다면 매초마다 트럭에 플라스틱을 싣는 것과 같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어 “재활용 중심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조약이 아닌 진정한 조약을 갖고 부산을 떠나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
미크로네시아 대표단은 지난 28일에도 생산 조항이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습니다.
유엔환경계획(UNEP)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한 결과, EU 등 총 89개국이 이에 동의한단 의사를 밝혔습니다. 한국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시민단체 “생산감축 언급 환영, 끝까지 관철돼야” 📢
시민단체는 신규 문서에 대해 비판적인 반응을 내놓았습니다.
기후환경단체가 요구해 왔던 플라스틱 감축을 위한 전지구적 목표 연도나 수치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 그간 나온 여러 초안에서도 목표 연도나 수치가 언급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레이엄 포브스 그린피스 글로벌 플라스틱 캠페인 리더는 “새롭게 제안된 문서는 협약 성안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여러 선택지 중 상당수가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그럼에도 플라스틱 생산감축을 위한 전 세계적 목표를 설정하는 절차가 포함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세계자연기금(WWF) 글로벌 플라스틱 정책 책임자 에이릭 린데붸에그르 역시 “우리는 각국이 이 초안에 반영된 낮은 수준의 목표를 수용하지 않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높은 의지를 지닌 국가들이 생산 단계에 대한 조치가 최종 협약문에 포함되도록 입장을 고수할 것을 주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