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탄소시장(VCM) 대표 인증기관인 베라가 최근 법적제재 대상이 된 탄소크레딧 500만 여건에 대해 발행을 취소했습니다.
베라는 자사의 VCM 등록부 ‘검증된 탄소 표준(VCS)’에 등록된 ‘C 퀘스트 캐피털(CQC)’의 탄소크레딧 500만 4,915개의 발행을 모두 취소했다고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각) 밝혔습니다.
CQC는 미국 탄소크레딧 개발업체입니다. CQC는 지난 5년간(2019~2023년) 일부 탄소프로젝트에서 탄소크레딧을 과대 발행한 혐의로 최근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로부터 법적제재를 받았습니다.
24일 그리니엄이 확인한 결과, 베라는 해당 문제를 인지한 올해 6월 이미 관련 프로젝트의 탄소크레딧 발행을 중단한 상황이었습니다. 중단 직후 2달여간의 조사 끝에 베라가 초과 발행 탄소크레딧 역시 공식 취소 처분을 발표한 것입니다.
베라가 ‘CQC 지우기’에 나선 가운데 VCM에 더 강력한 규제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베라, CQC 초과 발행 탄소크레딧 취소 발표 📝
문제가 된 프로젝트는 아프리카·동남아시아·중미 지역에서 진행된 청정 쿡스토브 프로젝트입니다.
청정 쿡스토브는 연료의 에너지효율을 높임으로써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공중보건 향상 등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때 상쇄된 온실가스 감축량만큼 탄소상쇄 크레딧을 발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케네스 뉴콤 전(前) CQC 최고경영자(CEO)가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탄소크레딧의 사기성 과대 발행을 주도했단 사실이 드러나며 미국 사법당국의 제재를 받았습니다. 문제가 된 탄소크레딧 대부분은 베라를 통해 발급됐습니다.
이에 베라는 CQC의 청정 쿡스토브 프로젝트 전수조사에 들어갔습니다.
10월 기준, CQC의 26개 프로젝트 중 22개 프로젝트에 대한 검토를 완료했다고 베라는 밝혔습니다. 그 결과, 500만여개의 탄소크레딧이 초과 발행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CQC의 해당 탄소프로젝트에는 ▲맥쿼리그룹 ▲테마섹 산하 탈탄소 전문투자사 젠제로 ▲로열더치쉘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등도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라는 CQC에 해당 초과 발행분에 대한 보상을 청구했습니다. 배상을 청구한 직후 CQC로부터 해당 발행분에 대한 발급 취소 요청을 받았다고 베라는 설명했습니다.
아직 4개 프로젝트에 대한 검토는 진행 중입니다.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 초과 발행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베라 인력 25% 감축 발표…이해상충·신뢰성 논란 때문 📉
VCM에서 베라가 차지하는 위상은 독보적입니다. 2023년 베라가 발행한 탄소크레딧은 약 1억 4,800만 개에 달합니다. 이는 2번째로 큰 등록기관인 골드스탠다드(GS)보다 2배 이상 많습니다.
그만큼 여러 논란도 많습니다. 일례로 지난해 1월 레드플러스(REDD+·국외산림탄소배출감축사업)의 탄소크레딧이 과대산정됐다는 문제가 언론보도를 통해 불거진 바 있습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그해 5월 베라 설립자 겸 당시 CEO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베라는 신뢰성 회복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CQC의 탄소크레딧 문제가 다시 한번 찬물을 끼얹은 겁니다.
CQC와의 선 긋기에도 불구하고 베라의 신뢰성 문제는 여전합니다.
무엇보다 뉴콤 전 CEO는 베라에서 약 17년간(2007년~2023년) 근무한 이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베라 이사로 재임하면서, CQC 프로젝트에 부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같은 비판에 베라는 강력한 대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첫 행보는 인력 감축입니다. 맨디 람바로스 베라 CEO는 회사 전체 인력의 약 25%를 감축할 것이라고 지난 21일 발표했습니다. 그는 인력을 감축해 확보한 에너지와 자원을 탄소크레딧의 엄격성과 무결성 유지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람바로스 CEO는 이튿날(22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해상충에 대한 논란에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영국 경제전문매체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베라가 강력한 내부 규정을 갖고 있다고 피력했습니다. 이사회 구성원에게도 이해상충 여부를 공개하고 기피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그럼에도 베라의 신뢰성 논란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란 것입니다. 앞서 베라가 인증한 벼농사 탄소프로젝트에서도 지침 부재·모니터링 부족 등의 문제가 드러난 바 있습니다.
‘베이조스 지구 기금’ “VCM, 정부의 적극 규제 필요” ⚖️
이같은 신뢰성 문제가 거듭되자 VCM을 두고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베이조스 지구 기금(BEF)’의 최고경영자(CEO)인 앤드류 스티어는 지난 7일 한 행사에서 VCM의 정부 개입을 시사하는 발언을 꺼냈습니다.
스티어 CEO는 “그간 방(VCM)에 들어오려는 어른들(정부)에게 민간기관도 꽤 훌륭하니 개입하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말해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규제를 받아야 할 때”라고 말을 이었습니다.
그간 민간의 자율적 규제를 지지해 왔던 그조차 이제는 VCM에 좀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는 기금이 ‘에너지 트랜지션 액셀러레이터(ETA)’를 후원하고 있단 점과 연결됩니다. 이 프로그램은 미 국무부가 탄소시장을 통해 청정에너지 전환 자금조달을 목표로 만들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 프로그램 외에도 ‘VCM 무결성 강화를 위한 지침’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VCM 살리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는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논의될 국제탄소시장 논의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