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자발적 탄소시장(VCM) 내 무결성 강화를 위한 새로운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28일(이하 현지시각) 미 재무부는 ‘VCM의 책임 있는 참여에 대한 공동 정책 성명과 원칙’을 발표했습니다. 해당 지침은 에너지부 장관과 농무부 장관 그리고 백악관 기후·경제 고문 모두 서명을 완료했습니다.
존 포데스타 미국 신임 기후특사 역시 서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이번 발표가 “야심차고 신뢰할 수 있는 기후조치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며 “명확한 가드레일을 마련해 책임 있는 VCM 개발을 약속”하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재무부가 이같은 지침을 내놓은 것은 일부 탄소상쇄 프로젝트에서 불거진 신뢰성 문제가 VCM 전반으로 번졌기 때문입니다. VCM 내에서 실효성과 투명성 우려가 잇따라 제기되자 이번 지침을 내놓은 것입니다.
유엔기후변화특사이자 블룸버그통신 설립자인 마이클 블룸버그는 이번 지침에 대해 “이제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왔다”며 환영했습니다.
美 정부, VCM 단속 나선 까닭? “신뢰 저하에 성장 잠재력 ↓” 📉
탄소시장은 크게 규제시장과 기업·개인 등 민간이 주도하는 시장으로 구분됩니다.
VCM은 후자에 해당합니다. 정부의 법적 규제와 무관하게 자발적으로 운영됩니다. 베라·골드스탠다드(GS) 등의 민간 운영기관을 통해 거래됩니다.
그만큼 확장성이 크단 장점이 있습니다. 2021년 기준 세계 VCM 규모는 약 20억 달러(약 2조 7,600억원)로 추산됩니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VCM이 2030년 최대 500억 달러(약 69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VCM을 통해 조달한 자본은 여러 탈탄소화 프로젝트를 지원할 수 있단 점에서 주목받습니다. 개발도상국 에너지 전환 지원, 생물다양성 보호, 지역사회 지원 등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단 것이 미 정부의 설명입니다.
문제는 VCM 전반에서 신뢰성 문제가 대두됐단 것.
베라의 탄소크레딧 신뢰성 논란이 영향을 끼쳤단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지난해 1월 영국 가디언 등 언론3사의 탐사보도에 의하면, 베라가 개발한 탄소크레딧의 약 94%가 실제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베라는 전 세계 탄소크레딧의 4분의 3가량을 인증하는 대표 기관입니다.
이같은 논란은 VCM 전반으로 확산됐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 VCM은 급격한 감소세를 기록했습니다.
이에 VCM 내 “책임 있는 참여를 위한 행정부의 원칙”을 발표하게 됐다는 것이 미 재무부의 설명입니다.
옐런 장관이 “VCM은 배출량 감축을 위한 민간 시장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면서도 “이는 기존의 중대한 문제를 해결해야만 가능하다”고 밝힌 것도 이와 연관됩니다.
VCM 무결성 강화 위한 3대 방향·7대 원칙, 어떤 내용 담겼나? ⚖️
미 정부는 지침에서 VCM이 잠재력을 달성하도록 돕기 위한 조치로 크게 3가지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공급 무결성 ▲수요 무결성 ▲시장 무결성 등입니다.
투명하게 공급하고, 투명하게 사용하며, 투명하게 거래하라는 뜻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3대 방향을 위한 7가지 원칙도 공개했습니다.
그중 원칙 1·2는 공급 무결성, 원칙 3~5는 수요 무결성, 원칙 6·7은 시장 무결성과 관련됩니다.
1️⃣ 탄소프로젝트 탈탄소화 입증
첫 번째 원칙은 “탄소크레딧과 이를 생성하는 활동은 신뢰할 수 있는 대기 건전성 표준을 충족하고 실제 탈탄소화를 나타내야 한다”입니다.
대기 건전성이란 대기 중 온실가스 분포에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와 관련됩니다. 쉽게 말해 해당 프로젝트가 실제 감축효과가 있단 것을 증명하란 뜻입니다.
나아가 탄소프로젝트·크레딧의 무결성을 인증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요소를 강력한 표준에 따라 인증해야 합니다. ▲추가성 ▲고유성* ▲수량화 및 누출 방지 ▲검증 및 확인 ▲영구성 ▲보수적 베이스라인 사용 등이 제시됐습니다.
탄소크레딧 인증기관의 무결성을 입증하기 위한 기준도 제시됐습니다.
▲투명성 ▲책임성 ▲대응성 ▲강력한 측정·보고·검증(MRV) ▲이중산정 방지 절차 마련 ▲독립적 제3자 검증 등이 포함됩니다.
*고유성: 탄소크레딧 1개가 이산화탄소 1톤(또는 그에 상응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상응하는 감축·제거를 의미한다는 원칙.
2️⃣ 기후·환경정의에 따른 이익 공유
탄소프로젝트가 운영되는 지역사회에 환경적·사회적 피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단 내용입니다.
토지 사용 및 소유권, 식량안보, 자연 및 생물다양성 등이 해당됩니다.
아울러 미 정부는 이러한 부정적 영향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또 프로젝트로 수익이 발생할 경우 지역사회와 그 이익을 공유해야 한단 점을 덧붙였습니다.
3️⃣ 탄소배출 감축 우선
탄소크레딧 사용보다 자체적인 배출 감축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단 뜻입니다. 미 정부는 탄소크레딧은 기업 공급망 내 배출량 감축을 “보완하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4️⃣ 크레딧 구매·사용 내역 공개
탄소크레딧 구매자는 구매·취소·사용한 탄소크레딧 내역에 대해 연 1회 이상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투명성 향상을 위한 조치입니다.
또 외부의 이해관계자가 확인·평가할 수 있도록 세부 정보가 포함돼야 한다고 미 정부는 덧붙였습니다.
5️⃣ 무결성 탄소크레딧 사용
기업들이 높은 무결성 기준을 충족하는 탄소크레딧만 사용할 것을 요구하는 원칙입니다.
이미 사용한 탄소크레딧이 추후 발행이 취소되거나 과대발행으로 밝혀질 경우에 대한 조치도 언급됐습니다.
이 경우 무결성 기준을 충족한 탄소크레딧을 새로 구매하는 등 개선 조치가 필요하단 것이 미 정부의 입장입니다.
6️⃣ 시장 건전성 개선 노력
미 정부는 시장 건전성이 개선돼야 한단 점도 언급했습니다. VCM 전반이 개선돼야 탄소크레딧의 공급 및 수요 건전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단 것.
이에 따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도울 수 있도록 기존 시장참여자들이 시장 기능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 원칙으로 강조됐습니다. 이를 통해 VCM 내 공정하고 공평한 참여를 지원하겠단 설명입니다.
7️⃣ 시장 기회 확대
마지막은 정책 입안자와 시장 참여자가 효율적인 시장 참여를 촉진해야 한단 원칙입니다.
이를 위한 조치로 거래 비용 경감을 제시했습니다. 농부·중소기업·개도국 등 잠재 탄소크레딧 공급처가 높은 비용이란 장벽에 직면해 있단 점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美 정부가 탄소크레딧 보증 나선 것”…VCM 신뢰성 회복할까? 🤔
이번에 미 정부가 발표한 7대 원칙은 법적 구속력을 갖진 않습니다.
다만, 미 정부가 VCM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는 여러 정책에 기준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미 에너지부가 탄소제거 구매 증진을 위해 추진 중인 ‘탄소크레딧 구매 프로젝트’가 대표적입니다. 지침 발표 당일(28일) 해당 프로젝트의 1단계 준결승 진출 기업 목록도 공개됐습니다.
미 국무부 역시 ‘에너지 트랜지션 액셀러레이터(ETA)’이란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탄소시장을 통한 청정에너지 전환 자금 조달을 목표로 합니다. 열대 삼림벌채 방지에 초점을 맞춘 민간 기관 리프(LEAF) 연합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미 정부 내 여러 부처에서 VCM 활성화를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미 정부가 내놓은 지침이 이들 프로그램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이번 지침이 VCM 성장에 큰 도움을 줄 것이란 기대를 내비쳤습니다.
‘자발적 탄소시장 무결성 위원회(IC-VCM)’의 페드로 바라타 공동의장은 “이번 발표는 미국 정부에 책임을 얹은 것”이라며 “매우 중요한 이해관계자로부터 신뢰를 얻는 인증을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탄소컨설팅 기업 카본다이렉트 또한 이번 지침이 “VCM에 대한 표준을 확립한 것”이라며 환영했습니다.
세계자연기금(WWF) 또한 미국 정부의 노력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마르센 미셀 WWF 기후변화 담당 부수석은 “탄소크레딧은 비판을 받았지만 제대로 수행될 경우 다양한 기후솔루션에 상당한 투자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일각에선 미국 정부의 조치가 아직 부족하단 지적도 나왔습니다.
미 펜실베이니아대 클라인만에너지정책센터의 대니 컬렌워드 선임연구원은 “정부의 강력한 집행(강제력) 없이는 저품질의 탄소크레딧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30년 동안 실패한 기존 모델을 뒷받침하는데 그쳤단 것이 그의 평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