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가 ‘탄소상쇄’ 승인을 추진하는 배경에 존 케리 전(前) 미국 기후특사의 로비가 있단 보도가 나왔습니다.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각)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SBTi의) 기업 탄소상쇄 계획 승인을 밀어붙였다”며 이같이 보도했습니다.
2015년 출범한 SBTi는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대해 과학적 방법에 따른 측정과 계획실행을 요구하는 이니셔티브입니다.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기준 충족 여부와 진행 상황 보고 등을 평가해 승인합니다.
논란은 지난 9일 SBTi가 탄소상쇄 역시 감축으로 인정하겠단 성명을 발표하며 시작됐습니다.
앞서 FT는 SBTi의 이같은 결정의 배경으로 ‘베이조스 지구 기금(BEF)’의 압력이 작용한 것 아니냔 의혹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BEF는 자발적 탄소시장 확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SBTi 이사회 ‘탄소상쇄’로 돌연 선회…FT “존 케리의 막대한 로비 때문” 💰
그간 SBTi는 기업의 감축목표에 탄소상쇄 크레딧을 포함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탄소상쇄가 포함될 경우 감축목표와 진행 상황 등을 추적하고 계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발적 탄소시장(VCM) 업계는 SBTi에 탄소상쇄 크레딧 허용을 지속적으로 요청해왔습니다. 이 경우 기업의 탄소상쇄 크레딧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가격 안정과 시장 확대가 기대됐기 때문입니다. 현재 SBTi 가입 기업은 전 세계 8,386개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케리 전 특사를 보좌했던 미국 국무부 관계자들이 SBTi에 압박을 가했다고 FT는 전했습니다.
FT는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존 케리의 (국무부) 고문들이 탄소상쇄에 대한 반대를 뒤집기 위해 세계 최고의 기업 기후목표 감독그룹에 막대한 로비를 펼쳤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를 위해 미 국무부 관계자들은 다양한 방면에서 로비 활동을 벌였습니다. 심지어 케리 기후특사 시절, 그의 사무실이 SBTi에 기업들의 탄소상쇄 사용 허용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당 내용은 2022년 10월 루이스 페르난도 아마랄 SBTi 최고경영자(CEO)가 직원 간 대담에서 밝힌 것이라고 FT는 전했습니다.
나아가 지난해 미 국무부가 SBTi에 탄소중립 검증 절차에 참여하는 기업에 탄소크레딧 구매를 의무화하도록 요청했단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탄소크레딧이 기업의 배출량 상쇄에 사용되지 않더라도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한단 내용입니다.
美 국무부 “탄소상쇄, 개도국 에너지 전환 지원 위해 필요” ⚡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탄소크레딧 수요에 대한 신호를 창출해라. SBTi가 쌓은 명성, 1.5℃ 억제를 위한 마지막 기회를 희생하더라도.”
FT의 소식통은 미국 정부가 SBTi에 이같은 압력을 지속적으로 가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러한 압력이 2022년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개최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을 앞두고 시작됐다고 소식통은 말했습니다.
이는 2023년 제28차 당사국총회(COP28)에서 미 국무부가 ‘에너지 트랜지션 액셀러레이터(ETA)’ 계획을 발표하며 본격화됩니다.
ETA는 개발도상국과 신흥경제국의 에너지 전환 전략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민간 금융 플랫폼입니다. 민간 자본 촉진을 목표로 합니다. 미 국무부, BEF, 록펠러재단이 공동 창립했습니다.
케리 전 특사는 이 과정에서 ETA 설립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ETA의 핵심은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청정에너지 전환 자금을 탄소시장을 통해 조달한단 것입니다.
ETA는 이를 위해 부문별 탄소크레딧 표준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해당 표준을 통해 개도국이 고품질의 탄소크레딧을 발행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입니다.
민관기관이 검증하는 VCM과 달리, 미국 정부가 해당 책임을 보장함으로써 투명성과 신뢰성을 제고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펩시코, 뱅크오브아메리카, 마스터카드, 모건스탠리 등이 참여 의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국무부는 ETA를 통해 칠레·도미니카공화국·나이지리아 등 3개국의 청정에너지 전환에 2035년까지 720억 달러에서 최대 2,070억 달러(약 283조원)의 자금 조달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美 국무부 탄소상쇄 지침 발표 예정…“높은 무결성 요구할 것” ⚖️
한편, SBTi의 내홍과 별개로 미 정부는 탄소상쇄 시장 창출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입니다.
지난 19일 국무부 주최 행사에서 존 포데스타 신임 미국 기후특사는 정부 내외부의 탄소상쇄 사용에 대한 지침을 며칠 내에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TA 탄소상쇄 프레임워크에 따른 것으로 풀이됩니다.
포데스타 특사는 이날 행사 연설에서 “탄소시장은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미만으로 억제하는 중요한 도구”이지만 “그간 신뢰성 문제로 강력한 비판을 받으며 잘못된 조치가 취해졌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에 포데스타 특사는 이번 지침에 “실제적이고 추가적이며 영구적인 배출감소를 나타낼 수 있는 탄소크레딧”의 기준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해당 지침에 기업이 감축 노력을 위한 투자를 대체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탄소상쇄를 사용해서는 안 된단 점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케리 전 특사도 참석했습니다. 케리 전 특사는 ETA 고위 자문위원단의 명예 의장으로 임명됐습니다.
그는 “민간 부문을 동원하지 않으며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며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고품질의 탄소시장이 필요하다”고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