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기반 탄소크레딧이 자발적 탄소시장(VCM)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자발적 탄소시장 무결성위원회(ICVCM)’가 탄소크레딧을 인증하는 기준을 한층 강화했기 때문입니다.
ICVCM은 성명을 통해 재생에너지 방법론 8가지를 통해 나온 탄소크레딧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각) 밝혔습니다. 해당 방법론으로 나온 탄소크레딧은 ICVCM의 ‘핵심탄소원칙(CCP)’ 라벨을 받을 수 없습니다.
ICVCM은 VCM의 국제표준을 만들기 위해 세워진 기구입니다. 2023년 고품질 탄소크레딧에 대한 국제 인증기준인 핵심탄소원칙을 수립했습니다.
9일 확인한 결과, 재생에너지 사업을 통해 발급된 탄소크레딧은 전체 VCM에서 약 32%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에이미 메릴 ICVCM 최고경영자(CEO)는 “재생에너지 사업은 여전히 VCM의 일부로 남아 있을 수 있다”며 “새로운 방법론을 도출해야만 이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습니다.
ICVCM, 재생에너지 기반 탄소크레딧 ‘추가성’ 불투명 💰
VCM에 있는 탄소크레딧은 주로 기업들이 자사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해 구매합니다. 재생에너지 설비·삼림복원·쿡스토브 등 발급 유형도 다양합니다.
문제는 VCM에 참여한 일부 기업이 감축 실적을 속이고 더 많은 탄소크레딧을 발급한 일이 연이어 발견됐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VCM의 신뢰도와 수요가 모두 떨어졌습니다.
실제로 VCM 시가총액이 2022년 18억 7,000만 달러(약 2조 5,493억원)에서 2023년 7억 2,300만 달러(약 9,856억원)로 급락했다고 에코시스템마켓플레이스가 밝힌 바 있습니다. 1년 사이 61%나 감소한 것입니다.
이에 ICVCM은 구매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고자 지난해 핵심탄소원칙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해당 원칙을 기준으로 그간 발급된 탄소크레딧을 모두 재평가했습니다. 100여개가 넘는 방법론을 29개 범주로 분류해 평가했습니다.
재평가 결과, 재생에너지 기반 탄소크레딧이 불합격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재생에너지 사업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관은 태양광·풍력발전 같은 재생에너지 설비 보급 확산이 기후대응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ICVCM의 지적은 재생에너지 기반 탄소크레딧이 ‘추가성(additionality)’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위적으로 온실가스를 저감하기 위하여 일반적인 경영여건에서 실시할 수 있는 추가적인 감축노력을 의미합니다.
탄소크레딧 발급을 위해 온실가스 감축량이나 흡수량이 사업이 시행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 증가 혹은 추가돼야 한다는 문구는 교토의정서에도 명시돼 있습니다.
각국 정부의 탈탄소화 기조에 맞춰 재생에너지 사업 비용이 감소되고 수익성이 개선됨에 따라 더는 탄소크레딧 수익이 프로젝트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기관의 지적입니다.
재생에너지 기반 잔여 탄소크레딧, 향방은? 🤔
그간 탄소시장·기후환경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기반 탄소크레딧이 추가성이 결여돼 상당 부분 가치가 없다고 지적해 왔습니다.
이번에 ICVCM이 탄소크레딧 인증을 거부한 재생에너지 방법론 8가지는 20여년전 등장한 것들입니다. 청정개발체제(CDM) 방법론으로 VCM 대표 인증기관인 베라와 골든스탠다드(GS)가 사용을 허용했습니다.
8가지 재생에너지 방법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ACM0002: 재생에너지 통한 전력망-연계 전력 생산
②ACM0006: 바이오매스를 이용한 발전
③ACM0018: 전력 전용 플랜트에서 바이오매스 잔류물을 통한 전력 생산
④AM0036: 열-생산장비에서 화석연료를 바이오매스 연료로 전환
⑤AM0072: 공간 난방 위해 화석연료를 지열자원으로 전환
⑥AMS-I.D: 전력망 연결 통한 재생에너지 생산
⑦AMS-I.L: 재생에너지 이용한 농촌 지역 전력 공급
⑧AMS-I.A: 사용자에 의한 전력 생산
미국 UC버클리(버클리캘리포니아대) 산하 ‘버클리 탄소거래 프로젝트(이하 버클리 프로젝트)’에 의하면, 올해 3월까지 베라·GS를 통해 등록된 재생에너지 기반 탄소크레딧은 2억 8,877만여개입니다.
이중 2억 5,870만여개는 ACM0002 방법론을 통해 탄소크레딧이 발급됐습니다. 전체 91%를 차지합니다.
2022년 태국이 배출한 한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약 2억 4,770만 톤)을 상쇄하고도 남는 규모입니다.
베라에 따르면, 지난 12개월 동안 로열더치쉘·토탈에너지 같은 에너지 대기업이 재생에너지 기반 탄소크레딧 상당수를 구매했습니다. 아우디 같은 완성차업체나 크루즈 선박 운영업체 역시 상당 부분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남은 잔여 재생에너지 기반 탄소크레딧은 약 2억 3,6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ICVCM은 추정했습니다.
“韓 재생에너지 기반 탄소크레딧 사업, 영향 불가피”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국내 기업 역시 VCM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내에 등록된 재생에너지 기반 탄소크레딧 사업 역시 일부 영향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버클리 프로젝트를 통해 베라와 GS에 등록된 탄소크레딧을 살펴본 결과, 현재 한국을 기반으로 한 탄소크레딧 사업은 14개*입니다.
이중 3개 사업이 영향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재생에너지 기반 탄소크레딧(ACM0002 방법론)을 발급한 국내 사업 중 잔여 탄소크레딧이 남은 곳은 경북 영양풍력발전단지 사업입니다. 2009년 준공돼 영양풍력발전공사가 사업을 관리합니다.
61.5㎿(메가와트) 규모의 풍력발전단지로 탄소크레딧이 발급됐습니다. 버클리 프로젝트에 의하면, 해당 사업의 잔여 탄소크레딧은 2,977개입니다. 방법론 수정이 불가피하며, 최악의 경우 잔여 탄소크레딧 인정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이밖에도 한국농어촌공사가 진행 중인 3㎿ 규모의 수력발전 기반 사업, 두산중공업의 산업단지용 태양광 발전소 기반 사업 등도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두 사업 모두 ICVCM이 이번에 인증을 거부한 방법론(AMS-I.D)이 사용됐습니다. 단, 두 사업 모두 탄소크레딧이 아직 발급되지 않은 단계로 사업 등록이 진행 중입니다.
*탄소크레딧 발급이 모두 완료된 사업도 포함.
ICVCM “쿡스토브·REDD+ 탄소크레딧 역시 평가 중” 🔥
연구단체 카본마켓워치(CMW)의 정책 선임연구원인 질 뒤프라스네는 “(구매 가능한) 많은 저품질 탄소크레딧을 시장에서 정리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며 환영했습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ICVCM은 다른 유형의 탄소크레딧 역시 평가 중이란 점입니다. 기관은 “탄소크레딧 발급 방법론을 현대화해야 한다”며 칼을 빼 들었습니다.
쿡스토브와 레드플러스(REDD+·국외산림탄소배출감축사업) 기반 탄소크레딧이 포함됐습니다. 두 유형의 탄소크레딧 역시 몇 달 내로 평가 결과가 나올 계획입니다.
쿡스토브와 REDD+ 기반 탄소크레딧 모두 지난 몇 년간 과대산정과 효과성 의문이란 논란에 휩싸인 상황입니다. 지난 6월에는 브라질 정부가 REDD+ 사업을 진행하던 기업의 불법범죄 혐의를 포착해 압수수색에 나선 바 있습니다.
나아가 ICVCM의 결정은 국제탄소시장 개설에도 영향을 줄 수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오는 11월 열릴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국제사회는 국제탄소시장 개설을 목표로 합니다.
이니고 와이버드 CMW 탄소시장 전문가는 “저품질 탄소크레딧은 미래 유엔 메커니즘(제6.4조 메커니즘)에 따라 생명을 얻어서는 안 된다”고 평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