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공시에 ‘스코프3’ 포함돼야…“한국 기업 충분히 준비돼 있어”

▲2026년 단계적 도입 ▲스코프3 포함 ▲법정공시 등 제언 잇따라

“고등학교 3학년으로 치면 수능을 앞두고 시험 범위와 날짜가 안 나온 느낌이다. 답답하다. (중략) 정부 쪽에서 이 시험을 어떻게 볼 것인지 말해줘야 한다.”

 

이는 한 대기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실무자의 말입니다. 그는 지난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기후공시 방향 제안’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호소했습니다.

그는 “(ESG 실무) 담당자로서 우려사항이 있다”며 “금융위원회가 2026년 이후에 공시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는데, 올해 하반기에 조금만 지연돼도 2026년 시행이 힘들다”고 토로했습니다. 2026년 공시를 위해선 2025년 1월부터 12월까지의 데이터를 모아 공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ESG 공시 활성화에 명확한 신호를 주지 않아 현장에서 혼란을 느낀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ESG 공시? ①2026년 ②2027년 ③2028년 ④이후 🤔

이날 토론회는 녹색전환연구소·그린피스·경제개혁연구소·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동 개최했습니다. 전진숙·민병덕·이소영·김성환·강훈식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5인도 함께 주최했습니다.

국내 기후공시의 방향과 주요 개선사항을 제안하고자 마련된 가운데 현장에는 13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금융위는 당초 기후공시를 시작으로 ESG 공시를 2025년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할 것을 예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작년 10월 돌연 2026년 이후로 도입 시기가 변경됐습니다.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지난 4월 ESG 공시기준 공개초안을 발표했으나 ▲공시 의무화 시기·대상 ▲스코프3 공시 의무 여부 등 주요 쟁점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회계기준원은 오는 8월 말까지 의견 수렴을 진행합니다. 금융위는 의견 수렴을 기반으로 ESG 공시기준과 시기를 확정한다는 방침입니다. 다만, 금융위의 최종 결정 시점은 여전히 미정입니다.

이날 패널토론에 참석한 정부 측 관계자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했습니다. 최치연 금융위 공정시장과 과장은 “구체적인 의견 수렴과 동향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이 관계부처와 협의해 공시기준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SG 공시 시점은 2026년이나 2027년 또는 2028년이나 아예 그 이후가 될 수 있다고 최 과장은 덧붙였습니다.

또 공시기준이 공개될 시점에 세부 로드맵이 발표되느냐는 질문에는 “지금 시점에서는 어느 시기에 발표할 것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 지난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국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기후공시 방향 제안’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은 패널토론을 하는 참석자들의 모습. ©그리니엄

투자자 “스코프3 공시 포함 필요”…유예·방법론 필요 📊

이날 패널토론에 참석한 주요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기후공시를 포함한 ESG 공시가 빠르게 도입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자율공시가 아닌 법정공시를 통해 추진돼야 할뿐더러, 스코프3 역시 공시에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습니다.

스코프3는 현재 공시기준 공개초안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재계에서 반발이 가장 거센 항목입니다. 금융당국은 의견 수렴을 거쳐 스코프3 포함 유무와 방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입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수탁자책임실의 이동섭 실장은 “스코프3는 투자자 입장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ESG 투자 시 기업이 실제로 사용하는 전력과 내뿜은 배출량 이외에도 밸류체인(가치사슬) 전반에 어떤 리스크와 기회가 있는지 포착해야 한다는 것이 이 실장의 말입니다.

이 실장은 적어도 “밸류체인 전체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스코프3 등 기업 간 정보를 비교함으로써 더 정확한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최용환 NH아문디자산운용 ESG리서치팀 팀장 또한 “스코프3가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힘을 보탰습니다. 물론 스코프1·2 역시 통계가 아직 미흡한 만큼 스코프3 포함 후 일정 부분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달렸습니다.

최 팀장은 스코프3를 ‘방안의 코끼리’에 비유했습니다. 이는 모두가 잘못됐단 사실을 알면서도 너무 거대하고 무거운 나머지 언급하기를 꺼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는 “(스코프3 계산을 위한) 새로운 방법론이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이 실장 역시 스코프3 산정과 방법론이 복잡하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사각지대 관리·K-택소노미 고려 반영돼야” 💰

공시 적용 대상 기업과 보고 시점이 더 늘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현재 ESG 공시 적용 대상 기업은 자산 2조 원 규모 상장기업이 대상입니다.

최 팀장은 “다배출 기업도 최초 공시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각지대에 놓인 기업들 역시 공시 대상에 포함해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또 “기후공시와 관련해 지나친 우려는 지양해야 한다”며 “법제화를 통해 (보고 시점을) 최소 ‘반기’ 공시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는 ESG 공시기준에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가 반영돼야 한단 점도 언급했습니다. 이는 친환경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산업을 분류한 체계입니다.

최 팀장은 “(K-택소노미는) 투자자에게 매우 유용한 정보”라며 “기후공시라고 해도 기후만 볼 수 없고, 다른 것도 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정부가 직접 나서 한국의 ESG 공시기준이 주요국과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차별점이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고 그는 피력했습니다.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 한국 공시기준의 특수성이 무엇인지 정부가 나서서 설명해야 투자 유치가 원활하다는 뜻입니다.

 

▲ 주요국은 앞다퉈 ESG 등 지속가능성 공시를 수립해 발효를 예고한 상황이다. ©한국회계기준원

3.7경 규모 AIGCC “韓 기업 충분히 준비돼 있어” ⚖️

아시아기후변화투자자그룹(AIGCC)의 배희은 이사 또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AIGCC는 70여개 회원사가 모인 곳입니다. 자산 규모만 27조 달러(약 3경 7,386조원)에 달합니다.

배 이사는 “해외 투자자 관점에서 ESG 공시가 매우 의의가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최근 5년간 한국전력공사와 포스코 그리고 SK이노베이션에 주주관여 활동을 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3개 기업과 주요 글로벌 150개 기업 그리고 아시아 33개 기업의 공시 수준을 비교한 결과, 한국 기업들도 충분히 준비돼 있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배 이사는 “(ESG 공시를)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며 “기업 경쟁력이나 투자자 관점에서 앞당겨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의 김민 대표는 법정공시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그는 “탄소누출 우려가 있다”며 “(기존 공시만으로는) 어딘가 숨겨져 있거나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많다”고 밝혔습니다. 투자자나 주주 입장에서 구체적이고 투명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법정공시가 필요하다고 그는 재차 강조했습니다.

 

의견 접수 130여개 ↑…KSSB, 균형적 시각 반영 계획 📈

패널토론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ESG 공시가 더는 뒤로 미뤄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역설했습니다.

이 실장은 “뒤로 미뤄질수록 (투자)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생긴다”며 “(기업 간 투자) 비교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우려했습니다.

배 이사 역시 “공시를 빠르게 진행하는 일이 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재 ESG 공시기준 공개초안과 관련해 의견 수렴을 취합 중인 KSSB의 이웅희 부위원장은 “현재까지 130여개가 넘는 의견이 접수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7월까지 접수된 의견입니다.

이 부위원장은 “(8월까지) 더 많은 의견이 들어올 것”이라며 “여러 이해관계자의 균형 있는 시각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기업들이 ESG 공시를 미루기보다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약간의 준비 시간을 원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기후공시 방향 제안 토론회 모아보기]
① “한국 기후공시 도입 주요국보다 늦어”
② ESG공시에 스코프3 포함·사각지대 관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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