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2시 미국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제47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바로 미국의 황금기가 시작된다”는 말로 취임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이어 자신의 최우선 순위는 “자랑스럽고, 번영하며, 자유로운 국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우선주의(MAGA) 기조를 재확인한 것입니다.
동시에 그는 미국의 번영을 위한 기반으로 에너지를 강조했습니다. 물가 급등의 원인으로 높은 에너지가격을 지목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연설 전반에서 ▲화석연료 생산·수출 확대 ▲화석연료 기반 제조업 확장 ▲전기자동차 장려 정책 폐지 등이 강조됐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권한 문제와 시장 반응을 고려할 때 트럼프의 화석연료 확대 정책이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렵단 관측도 나옵니다.
트럼프, ‘액체’ 황금시대 선포…“미국 에너지를 전 세계로”
“우리는 ‘드릴, 베이비, 드릴’할 것이다.”
‘드릴, 베이비, 드릴’은 석유시추 확대를 뜻하는 슬로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유세부터 강조해 온 해당 슬로건은 이번 취임 연설에서도 반복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너지) 가격을 낮추고 전략적 비축량을 다시 꼭대기까지 채워 전 세계로 미국의 에너지를 수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발밑에 ‘흐르는 금(Liquid Gold)’이 이를 도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액체 금은 당연히 석유를 뜻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부터 비상사태를 선포해 취임 1년 이내에 에너지가격을 절반 이하로 낮추겠다고 공언해 왔습니다. 그가 말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가 무엇인지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미국은 대통령에게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권한을 부여합니다.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면 대통령은 추가적인 행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일부 환경규제를 중단하거나 석유수출 제한을 푸는 등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미 진보 성향 싱크탱크 브레넌정의센터에 따르면, 과거 1970년대 석유파동 시기에 주지사가 지역 차원의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사례도 있습니다. 센터는 당시에도 지미 카터 대통령은 ‘최후의 수단’으로 조심히 사용할 것을 당부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화석연료 확대·전기차 우대 폐지, 핵심은 ‘제조업’ 재부상
연설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단순히 에너지 생산을 늘리는 것 이상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화석연료 확대는 미국을 제조업 중심의 국가로 만들기 위한 기반에 가깝습니다.
“미국은 다시 한번 제조업 국가가 될 것이며 우리는 다른 어떤 제조업 국가도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있다, 바로 어느 나라보다 많은 석유와 가스다”라는 그의 말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전기차에 대한 강력한 반감 역시 트럼프의 이같은 구상과 연결 지점에 있습니다.
그는 연설에서 “그린뉴딜을 끝내고 전기차 의무화를 폐지해 자동차 산업을 살리고 위대한 미국 자동차 노동자들에게 한 신성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미국에서 전기차 의무화가 도입된 적은 없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전기차 보조금과 전기차 비중 목표를 지목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기차 장려를 위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최대 7,500달러(약 1,080만 원)의 소비자 보조금을 제공했습니다.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 기업에 대한 생산세액공제 정책도 포함됐습니다. 이와 별도로 2030년까지 신차 판매 중 친환경차 비중 50%를 목표로 하는 자동차 배출규제도 도입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모두 ‘전기차 의무화’로 규정하고 철폐하겠단 의지를 강조한 것입니다.
실제로 취임식 이후 그는 행정명령을 통해 “전기차 의무화 폐지를 명시하고, 전기차 구매를 사실상 의무화하는 불공정한 보조금 폐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의 연설 중 “2025년 1월 20일은 미국 시민 해방의 날이 될 것”이라는 대목이 사실상 ‘화석연료 해방의 날’ 선포식이었단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공급과잉 우려에 유가 급락…‘트럼프 효과’ 계속될까
다만, 트럼프의 에너지 확대 기조가 그의 예상대로 수월하게 진행될지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CNN은 “현실적으로는 백악관조차 직접적인 권력을 행사할 권한이 제한돼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매체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에너지 고문을 지낸 밥 맥널리 래피단에너지 사장의 말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습니다. 맥널리 사장은 “부시 대통령 시절 나는 석유 가격을 즉각 인하할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를 열심히 찾았지만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달리 미국은 정부가 아닌 자유 시장에 의해 석유생산량이 결정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실제로 트럼프가 석유·가스 증산을 선포한 이후 국제 유가는 즉각 하락했습니다. 북미 최대 선물거래소 대륙간거래소(ICE)에서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가 전날 대비 0.8% 하락했습니다.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할 경우를 대비해 에너지 기업들이 석유생산을 줄일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CNN은 “많은 석유 기업 CEO들은 과도한 시추로 공급과잉에 가격이 폭락했던 과거의 교훈을 기억할 것”이라며 부정적 전망을 내비쳤습니다.
공급과잉 우려에 유가 급락…‘트럼프 효과’ 계속될까
선봉장을 맡을 ‘정부효율성부’도 트럼프 취임 직후부터 삐그덕 거리는 모양새입니다.
해당 부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IRA와 에너지 생산 규제 등 이른바 ‘비효율적’ 정책을 재검토·폐지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습니다. 당초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인도계 출신 기업가 비벡 라마스와미가 공동 수장으로 지명됐습니다.
그러나 정부효율성부는 트럼프 취임 직후 불법 운영 혐의로 피소됐습니다. 공익법률사무소 내셔널시큐리티카운슬러스가 제기한 소송입니다. 정부 자문위원회임에도 회의와 활동이 비공개로 진행됐다는 주장입니다.
이밖에도 미국공중보건협회·미국교사연맹 등 다수의 비영리단체가 트럼프 연설 몇분 만에 제각각의 혐의로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라마스와미 역시 취임식 당일 정부효율성부 공동수장에서 사퇴했단 소식이 미 주요 외신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오하이오주 주지사 출마로 인해 사퇴를 결심했다는 것이 대외적인 이유입니다. 뉴욕타임스(NYT)는 머스크 CEO와의 갈등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기후재난 둘러싼 가짜뉴스 반복 “모두 바이든 탓”
한편, 이번 연설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정하긴커녕 가짜뉴스를 적극 설파했습니다.
그는 “(그동안) 우리는 국내의 단순한 위기조차 감당할 수 없는 정부를 갖게 됐다”며 많은 사람이 허리케인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작년 미국 동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헬렌’과 ‘밀턴’을 짚은 것입니다. 두 허리케인으로 인한 손실은 500억 달러(약 72조 원)로 추정됐습니다.
또, “어떠한 방어 수단도 없이 여전히 비극적인 화재로 타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며 최근 발생한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산불을 거론했습니다.
기후재난을 이전 정부를 향한 공격 수단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허리케인 피해 당시 바이든 정부가 재난 지원 예산을 불법 이민자를 위해 전용해 피해자 지원에 차질을 빚었다고 주장했습니다.
LA 산불의 경우에도 민주당 소속인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탓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뉴섬 주지사의 다양성 정책과 수역 보호 정책이 소방용수 부족을 야기했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과학자들은 인류가 초래한 기후변화가 허리케인과 산불 등 최근 미국에서 심화되는 재난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분석한 바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되레 기후대응 정책이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저해했다며 취임 당일 파리협약 탈퇴를 공식 선언한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