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 없이 인공지능(AI) 붐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올해 4월 미국 최대 가스생산업체 EQT 최고경영자(CEO) 토비 라이스가 한 말입니다. 최근 이 말이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석유 업계가 앞다퉈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신규 건설에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주요 석유가스업체 엑손모빌과 셰브론이 각각 데이터센터를 위한 LNG 발전소 건설을 계획 중이라고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각) 밝혔습니다. 두 사업 모두 CCS(탄소포집·저장) 설비를 갖춘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엑손모빌이 상업용 발전소 건설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란 점에서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엑손모빌은 5.5GW(기가와트) 규모의 발전소 건설 경험이 있습니다. 단, 지금까지는 모두 자사 전력공급에 사용됐습니다.
엑손모빌 “데이터센터 위해 LNG 발전소 추진” ⚡
경쟁의 불을 당긴 곳은 엑손모빌입니다.
엑손모빌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10년 이내에 CCS를 적용한 LNG 발전소를 건설해 데이터센터에 저탄소 전력을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캐시 미켈스 엑손모빌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해당 계획이 최종 투자 결정만을 앞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LNG 발전은 재생에너지와 달리 안정적이면서 석탄 대비 탄소집약도가 낮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화석연료를 사용한단 점에서 탄소배출이 불가피합니다. 사측은 CCS 기술을 통해 LNG 발전소의 탄소배출량 90% 이상을 포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엑손모빌은 저탄소 사업 강화를 위해 작년 7월 CCS 전문 기업 덴버리를 49억 달러(약 7조 원)에 인수한 바 있습니다.
대런 우즈 엑손모빌 CEO는 “데이터센터에 탄소배출이 적거나 없는 전력을 공급할 방법이 지금 당장은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전력수요 급증에 대한 단기적 해법으로 CCS 기반 LNG 발전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우즈 CEO는 발전 사업을 본격화하는 것은 아니란 점도 분명히 했습니다. 이를 보여주듯 엑손모빌은 CCS 기반 LNG 발전소를 지역 전력망과 분리된 발전소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미켈스 CFO는 이같은 독립형 발전소 방식 덕분에 건설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연결 지연 등 전력망 문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부지 확보를 완료해 잠재 고객과 협의 중인 상황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측은 건설 비용·부지에 대해서는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GE 베르노바, 데이터센터용 가스터빈 주문 폭증 📈
엑손모빌 발표 직후, 셰브론은 자사 역시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을 위해 LNG 발전소 건설을 1년 이상 논의해 왔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제프 구스타브슨 셰브론 뉴에너지스 CEO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자사가 LNG·CCS·지열 등 다양한 저탄소 전력을 고객에게 제공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이에 대해 매체는 “일반적으로 자급용 전력 생산에 그쳤던 화석연료 기업들이 전력 수요증가로 인해 전력시장에 진출하는 모습”이라고 논평했습니다.
LNG 발전소 증가 현황은 에너지 기업 GE 베르노바 관계자 발언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스콧 스트래직 GE 베르노바 CEO는 지난 12일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지난 한달 동안 체결한 LNG 발전소용 가스터빈 예약만 9GW 규모에 달했다고 말했습니다.
스트래직 CEO는 계약 기업 중 데이터센터 개발사가 포함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인 기업명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시작일 뿐”이라며 주문 증가를 전망했습니다.
향후 4년간 전 세계에서 연간 20GW의 가스터빈 주문이 예상된다는 설명입니다. 그는 미국 내 주문이 그중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데이터센터 전력원, 원전 vs LNG 주도권 싸움 🥊
현 상황을 두고 데이터센터 주요 전력원 자리를 두고 원자력발전과 CCS 기반 LNG 간의 주도권 싸움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두 발전 방식 모두 안정적으로 전력생산이 가능합니다. 동시에 탄소배출량이 거의 없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그중 빅테크 기업이 먼저 주목한 것은 원전이었습니다.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구글·메타(구 페이스북) 모두 원전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관련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원전 기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주춤했습니다. 지난 11월 메타와 아마존의 프로젝트가 각각 환경·지역 규제로 중단 위기에 처했단 소식이 나왔습니다.
그 틈을 엑손모빌 등 화석연료 기업이 파고들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즈 CEO는 기자회견에서 “원자력이나 미래의 무언가에 (돈을) 건다면 긴 여정을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원전의 경우 건설 기간만 평균 7년 이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LNG 발전소가 데이터센터의 주력 발전원으로 자리 잡을 경우, 이는 엑손모빌의 주력 상품인 천연가스 판매 증가로 이어집니다. 이미 엑손모빌은 향후 5년간 석유·천연가스 생산량을 18% 늘리겠단 계획도 밝혔습니다.
LNG 발전소 가속화 전망…“변수는 기술 혁신” 💪
CCS 기반 LNG 발전소에도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싱크탱크 전략국제연구센터(CSIS)는 CCS가 LNG 발전소에 결합할 때 상업성이 증가하긴 하나, 그럼에도 2030년 이후에나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기관은 CCS 파이프라인 등 인프라(기반시설) 부족과 높은 포집 비용을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그럼에도 엑손모빌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CCS 기반 LNG 발전소가 원전보다 더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첫째, 덴버리 인수로 파이프라인 인프라를 다수 확보했습니다.
둘째, 저탄소전력에 대한 빅테크 기업의 지불 의사가 높다는 것입니다. 앞서 아마존·MS는 원전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기존 전기요금보다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탄소포집 세액공제가 더해지면 비용 부담은 더 줄어듭니다. 화석연료 업계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에게 세액공제 유지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셋째, LNG 발전소와 달리 원전은 독립형 발전소로 건설이 불가능합니다. 안전 문제 때문입니다. 원전이 다 건설된 후에도 전력망 연결 등으로 가동이 지연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편, 데이터센터 제3의 전력원으로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도 계속되고 있단 점도 무시할 순 없습니다.
구글은 지난 12일 재생에너지와 데이터센터 공동배치에 2030년까지 200억 달러(약 28조 원) 투자를 발표했습니다. MS도 2025년까지 자체 운영 데이터센터에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목표로 합니다.
AI 시대 전력수요 급증이 기술혁신 속도를 가속화하는 가운데 원전·LNG·재생에너지 삼파전에서 누가 승리할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