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보호무역주의 기조 확산으로 인해 2023년 세계 무역 규모가 2,744억 달러(약 379조 원)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버나드 호크먼 유럽대학연구소 교수는 23일 오전 한국경제인협회가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한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대응방향’ 세미나에 참석해 이같은 분석 자료를 내놓았습니다.
호크먼 교수는 세계은행에서 국제무역국장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그는 무역 연구기관 세계무역경보(GTA)의 분석 결과를 인용해 발표했습니다.
호크먼 교수는 보호무역주의가 세계적인 현상이라면서도, 그중에서도 선진국이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GTA에 따르면, 2023년 실행되거나 발표된 전체 통상정책은 1,806건입니다. 이중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역내 보조금 정책이 1,030건으로 전체 57%를 차지했습니다.
전체 70.9%가 선진국에서 나온 정책이었고, 47.7%는 중국·유럽연합(EU)·미국이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후대응·공급망 안정성 위해 통상정책 환경 변화” 🌐
눈여겨볼 점은 최근 선진국 통상정책이 무역적자 해소나 국내경제 활성화 같은 전통적 동기를 따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호크먼 교수는 통상정책이 적용되는 정책환경에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그는 “최근 통상정책은 안보(25.7%), 첨단기술(20.6%), 저탄소기술(15.3%) 분야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기후대응(28.1%)이나 공급망 안정성(15.2%) 같은 비전통적인 동기가 증가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호크먼 교수는 “각국이 진행하는 보호무역주의는 보호무역주의의 탈을 쓴 산업정책”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산업정책이란 특정 산업에서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이루어지는 보조금·금융지원 같은 정부 개입을 뜻합니다.
최근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또한 기후대응·탈탄소화를 위해 주요국의 정책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을 짚은 바 있습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대표적입니다. IRA는 에너지안보·기후대응을 목표로 향후 10년간 미국 내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호크먼 교수는 “불확실한 국제 정세로 각국 정부가 세운 정책목표에 따른 파급효과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기후대응이나 공급망 안정 등 비전통적 동기와 관련해 공통된 이해관계를 지니는 유사한 입장국들의 협력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거세지는 녹색보호무역주의…CPTPP 가입 서둘러야 🗺️
이와 관련해 법무법인 광장의 이태호 고문은 현 국제정세가 한국에게 매우 도전적인 상황이란 점을 짚었습니다. 녹색보호무역주의와 경제안보가 대두되며 한국의 산업 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 이 고문의 설명입니다.
이 고문은 “지지부진했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논의가 다시 본격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CPTPP는 일본 주도의 아시아태평양 경제동맹체입니다.
2008년 출범해 현재 11개국이 가입해 있습니다. 이들 회원국에서 생산된 모든 중간재는 CPTPP 수출국에서도 자국 생산품으로 인정됩니다. 관세 철폐율이 96%로 시장 개방도가 매우 높습니다.
한국은 중국 중심의 ‘경제동반자협정(RECP)’에는 가입돼 있으나, CPTPP에는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중국 무역제재에 취약하다는 것이 이 고문의 주장입니다.
단, 국내에서는 관세 철폐율이 높아 농어민들의 반대가 큽니다. 한국은 CPTPP에 가입할 경우 농어업 분야에 피해를 우려해 가입 반대 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4월 산업통상자원부는 “농수산업 등 일부 산업에 예상되는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체제 가입을 지속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11월 미국 대선 결과 상관없이 대중국 견제 기조 강화 ↑ 🗳️
한편,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대중국 견제 기조가 강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미국)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중국에 대한 견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는 통상장벽의 범위가 기존 수출통제에서 해외직접투자(FDI)나 전문인력 이동 통제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중국 청정기술 업계는 자국 내 치열한 가격경쟁과 서방의 견제 속에서 살아남고자 해외직접투자 규모를 늘리고 있습니다.
호주 클라이밋에너지파이낸스(CEF)에 따르면, 중국 태양광·배터리·전기자동차 업계가 2023년부터 2024년 8월까지 해외에 투자 또는 약속한 금액은 1,029억 달러(약 142조 원)에 육박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나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 모두 중국 이 부분을 견제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원장은 “해리스 후보 당선 시 기존 조 바이든 행정부의 통상정책 기조가 대체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노동·인권·환경 관련 통상정책은 더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특히, 노동 문제의 경우 국가와 기업 간 소송으로 바뀔 수 있단 점을 그는 짚었습니다.
반면,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 취임 직후부터 관세를 중심으로 통상압력이 가중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 원장은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 시절) 관세 인상과 이민 제한을 통해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실행한 인물”이라며 “대미 무역수지 흑자 문제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고 상기했습니다.
공급망·첨단기술·탄소중립 중심으로 통상정책 재편 시급 🏛️
문재인 정부 시설 산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한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이어진 패널토론에서 유 교수는 “노동·인권·환경 등 가치와 연계된 통상정책이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급망·첨단기술·탄소중립 분야 중심의 통상정책 재편이 이뤄져야 한다”며 “주요국과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습니다.
통상환경이 전반적으로 예측이 불확실해진 만큼, 다층적인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습니다.
동시에 전문성을 강화해 리스크 대응 역량도 제고해야 한다고 유 교수는 피력했습니다.
실제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 세계에서 한국에 대해 반덤핑·상계관세 등 수입규제 조치를 시행 중인 건수는 214건으로 나타났습니다. 2023년 동기(201건) 대비 13건 증가했습니다
한경협은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같은 정책이 국제 통상환경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한 양질의 분석 보고서를 내놓을 것을 약속했습니다.
정철 한경협 연구총괄대표 겸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개회사에서 “한경협은 급변하는 대외 통상환경으로 인해 예상되는 문제점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기업들의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원활한 대응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