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배터리·전기자동차 등 중국 클린테크 업계가 자국 내 치열한 가격경쟁과 서방의 견제 속에서 살아남고자 해외직접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호주 기후싱크탱크 클라이밋에너지파이낸스(CEF)는 최근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보고서 제목은 ‘녹색자본의 쓰나미’입니다. 중국 클린테크 업계의 투자 속도를 ‘쓰나미’에 비유한 겁니다.
4일 해당 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중국 클린테크 업계가 2023년부터 2024년 8월까지 해외에 투자 또는 약속한 금액은 1,029억 달러(약 137조원)에 이릅니다.
약 130여개 해외 기업들과 청정기술 거래 계약을 통해 자금을 제공하기로 협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CEF는 이같은 중국발 청정기술 쓰나미가 전 세계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청정기술, 중국 경제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아” 🧪
2023년 기준 중국이 자국 에너지 전환에 투자한 금액은 약 6,760억 달러(약 902조원)입니다. 전 세계 투자의 약 38%를 차지합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청정기술 육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미국보다 약 2배 더 많은 겁니다.
이같은 투자 추세는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3개 산업(태양광·배터리·전기차)의 중국 내 투자가 6,750억 달러(약 9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는 청정기술이 중국 경제의 큰 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핀란드 싱크탱크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는 2021년 중국 정부의 ‘쌍탄소(双碳)’ 전략 발표 이후 민간 부문이 청정기술 투자로 몰려갔다는 점을 짚은 바 있습니다. 이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 정점·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전략입니다.
CEF 역시 청정기술이 중국 경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공급과잉·서방 무역장벽 속 중국 해외직접투자 ↑ 📈
나아가 중국 클린테크 업계가 해외 직접투자를 확대하는 주요 이유로 크게 2가지를 언급했습니다.
①국내 공급과잉 문제 대응 ②미국·유럽연합(EU) 등 서방의 추가관세 우회를 위해서입니다.
태양광·배터리·전기차 모두 중국에서는 공급과잉으로 인해 가격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예컨대 태양광 모듈 가격은 2023년 대비 60% 떨어졌습니다. 같은기간 배터리는 50% 하락했습니다. 우선순위로 인해 민간 부문이 청정기술 산업으로 많이 몰리는 부작용이 발생한 겁니다.
이 가운데 바깥에서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EU 등은 중국산 청정기술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은 올해 8월부터 중국산 전기차 관세를 기존 25%에서 100%로 인상했습니다. 태양광 패널·배터리에 부과되는 관세 역시 25%로 높였습니다. EU는 중국 전기차 업체별로 각기 다른 추가관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캐나다도 올해 8월부터 중국산 청정기술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산 제품이 정부의 부당한 보조금 덕분에 저가로 수출되므로 추가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 국가의 주장입니다.
중국, 44개국서 청정기술 투자·약속…순위는? 🤔
청정기술을 둘러싼 패권 경쟁 속에서 중국 클린테크 업계는 ▲기술이전 ▲합작 연구 ▲공장 건설 등 여러 형태로 해외와 밀접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투자 역시 유럽·아시아·아프리카·남미에 고루 포진돼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EU와 미국의 관세를 피하고자 동유럽이나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중국 클린테크 업계의 투자가 최근 크게 늘었다는 점입니다.
헝가리가 대표적입니다. 올해 7월 중국 화유코발트는 헝가리에 배터리 현지 공장 설립을 위해 1억 5,500만 달러(약 2,058억원)를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중국 비야디(BYD) 또한 유럽 내 첫 전기차 공장을 헝가리에 설립할 것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인접국인 튀르키예(터키)에도 10억 달러(약 1조 3,000억원)를 투자해 전기차 공장을 건설 중입니다.
중국은 이를 통해 EU의 규제를 우회적으로 벗어나겠다는 전략입니다. 이를 증명하듯 EU를 탈퇴한 영국 내 투자도 늘어난 점이 확인됐습니다.
그리니엄이 자료를 확인한 결과, 중국 클린테크 업계들의 미국 투자 사례가 12개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는 IRA에 따른 규제를 피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됩니다. 일례로 IRA는 전체 배터리 부품 가치의 50% 이상이 북미에서 제조·조립된 경우에만 세액공제 대상입니다.
이어 사우디아라비아(8개), 영국·우즈베키스탄(각각 7개), 칠레(6개), 헝가리·브라질(각각 5개) 순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한국을 포함해 총 44개국 청정기술 분야에 중국 업체들이 투자를 약속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투자 대다수가 기업 스스로 부지를 확보해 공장·사업장을 설치하는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주를 이뤘습니다.
이는 투자비와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는 하나, 투자를 받는 수혜국 입장에서는 고용창출효과가 크고 기술이전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중국 청정기술 해외투자 흐름, 기회이자 위기” 🤝
현재 중국 정부는 자국 클린테크 업체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12일 ‘2024 중국-아프리카 협력 포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포럼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주석은 향후 3년에 걸쳐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3,600억 위안(약 68조원)을 지원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중 일부 금액은 녹색개발 프로젝트 일부로 청정기술 산업에 투자됩니다.
CEF는 이같이 중국 클린테크 업계의 해외직접투자가 늘어난 점이 기회이자 위기란 점 강조했습니다.
보고서 저자로 참여한 쉬양둥 에너지 정책 분석가는 “중국 기업이 다른 국가에 생산기술을 건설 시 기술·전문성·자본 나아가 현지 노동 시장을 확장할 수 있다”며 “다른 국가들의 에너지 전환 촉진 기회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물론 현재 발표된 투자 중 일부는 실현되지 않을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해외 진출에 따라 기업 재무상태가 일시적으로 약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미국 등 서방에서의 반중 감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 배터리 업체 고션하이테크는 미국 미시간주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려 나섰으나, 지역주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어려움을 고 있습니다.
다른 우려도 나옵니다.
CEF 설립자 겸 책임자인 팀 버클리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클린테크 제조와 수출 공급망에서 중국의 지배력이 커지고 있다”며 “미국 등 서방 세계가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지정학적 문제”라고 소개했습니다.
버클리 대표는 이어 “세계 시장 공급망에서 한 국가가 80~90%를 지배하는 것은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입장과 거리가 멀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태양광이 대표적입니다. 중국은 현재 전 세계 태양광 공급망의 최대 90%를 장악한 상황입니다.
CEF, 청정기술 패권 다툼 지정학적 경쟁 넘어서야 🌐
적어도 중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은 빠르게 습득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입니다. ▲청정기술 투자 규모 확대 ▲연구개발(R&D) 규모 ▲정부의 명확한 투자 신호 등이 대표적입니다.
에너지 전문 조사기관 라이스타드에너지의 에너지 부문 책임자인 라르스 니터 하브로는 중국의 청정기술 투자 규모가 세계 에너지 전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중국의 기술 경쟁력에 놀란 주요국이 앞다퉈 청정기술 제조 역량 개발에 나섰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그는 “덕분에 다른 지역들 역시 잇따라 투자하고 있다”며 “중국의 투자 우위는 점점 좁혀져 2027년에는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경제학자인 앨버트 파크는 WSJ에 중국 덕에 청정기술 개발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CEF는 청정기술을 둘러싼 각국의 청정기술 패권 경쟁이 지정학적 경쟁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버클리 대표는 “무역장벽으로 인해 최첨단 청정기술 접근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지정학적 경쟁을 넘어서는 시장 중심적이고 실용적인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경쟁보다는 협력이 절실하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