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석유 기업 엑손모빌을 상대로 소송에 나섰습니다.
고급 재활용 기술로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엑손모빌 측의 주장이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이란 것이 캘리포니아 주당국의 말입니다.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실은 샌프란시스코 고등법원에 엑손모빌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기했다고 23일(이하 현지시각) 밝혔습니다. 시에라클럽 등 미국 내 4개 환경단체과 함께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롭 본타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은 소장에서 “수십년간 엑손모빌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플라스틱 재활용으로 공해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만을 이어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엑손모빌은 천문학적 수익을 위해 지구와 보건을 대가로 거짓말을 지속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캘리포니아 당국은 1970년대부터 엑손모빌이 플라스틱 재활용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러한 거짓말을 이어갔다고 주장했습니다.
“화학적 재활용, 엑손모빌이 기술한계 여럿 숨겨” ⚖️
엑손모빌은 세계 2위 화석연료 기업인 동시에 일회용 플라스틱 제작에 쓰이는 폴리머 최대 생산 기업입니다.
캘리포니아 당국은 작년 4월부터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고자 화석연료·석유화학 업계에 대한 조사를 시작해 왔다고 덧붙였습니다.
조사 결과, 엑손모빌이 그동안 마케팅으로 주장해 온 내용과 대치되는 자료 상당수가 발견됐다는 것이 주정부의 말입니다.
당국이 정확히 문제 삼고 나선 것은 ‘화학적 재활용’입니다. 이는 폐페트병 등 플라스틱 폐기물을 화학적으로 분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염도·색상·재질 등에 관계없이 재활용이 가능한 고부가가치 기술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화학적 재활용을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본타 장관은 “엑손모빌은 자사의 화학적 재활용을 플라스틱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기술로 홍보한다”며 “그런데 기술적 한계에 대한 중요한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엑손모빌의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통해 처리된 폐플라스틱의 92%가 연료(열분해유)로 사용될뿐더러, 일부 폐플라스틱은 처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아울러 화학적 재활용 공정으로 생산된 플라스틱이 ‘순환성’이 높다고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은 사기라고 캘리포니아 당국은 꼬집었습니다.
당국은 “엑손모빌이 수십년간 대중을 기만하는 캠페인을 벌여왔다”며 “이는 캘리포니아주의 공해·천연자원·수질오염·허위광고를 야기해 주의 공해방지법과 불공정경쟁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민사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엑손모빌이 불법적으로 얻은 이익을 모두 환수하도록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주정부 문제를 기업에게 전가”…엑손모빌 즉각 반발 🤔
이날 엑손모빌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캘리포니아 공무원들이 (주의) 재활용 제도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며 “주의 무능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주정부의 말과 달리 자사의 화학적 재활용이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에 효과적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소송 대신 우리와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고 플라스틱이 매립되지 않도록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사측은 비판했습니다. 앞서 엑손모빌은 올해 5월 미국 지방법원에 소환장 발부를 중단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달초 법원은 업계들의 요청을 기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주정부가 석유기업을 상대로 플라스틱 재활용 문제와 관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를 비롯한 청구인들은 이를 계기로 다른 지역에도 유사한 소송 물결이 촉발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제환경법센터(CIEL)의 제인 패튼 캠페이너는 뉴욕타임스(NYT)에 “법원을 통해 환경 피해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묻는 추세가 바뀌는 것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다른 주와 도시에서도 비슷한 소송이 제기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실제로 작년 9월 캘리포니아주는 엑손모빌·로열더치쉘 등 4개 석유 기업을 대상으로 기후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화석연료 연소가 기후문제에 미치는 영향을 1950년대부터 알고 있었으나,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 당국의 주장입니다.
해당 소송 직후 미국 내 다른 20여개주·도시에서 석유 기업을 상대로 비슷한 기후소송이 잇따랐습니다.
“부산서 열릴 플라스틱 국제협약 회의 앞두고 소송 제기” 🗺️
물론 소송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립니다.
미 노트르담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환경법을 전문으로 하는 브루스 후버 교수는 이번 소송이 힘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후버 교수는 “캘리포니아주가 제시한 주요 근거는 ‘공해(Public Nuisance)’에 의존하고 있다”며 “악명 높게 법률 자체가 모호하다”고 짚었습니다.
사실 미국에서는 화학적 재활용 두고 의견이 엇갈립니다.
미국화학협회(ACC) 등 석유화학업계는 화학적 재활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미 환경보호청(EPA)은 화학적 재활용은 ‘재활용’이 아니란 입장입니다. 이 기술을 통해 나온 열분해유를 다시 사용할 경우 화석연료를 연소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술을 두고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정치적 갈등도 있습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022년 “미국이 이 기술(화학적 재활용)을 어떻게 다루기로 결정하느냐에 따라 플라스틱 위기의 궤적이 결정될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번 소송이 플라스틱 국제협약 논의를 위한 마지막 회의 개최를 앞두고 제기됐다는 점입니다. 회의는 오는 11월 우리나라 부산에서 열립니다.
플라스틱 오염 문제와 관련해 법적 구속력을 갖춘 국제협약을 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주요 쟁점 중 하나인 플라스틱 생산 제한 규제를 두고 각국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지난 8월 미국 정부는 플라스틱 생산 제한 규제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강력한 법적 구속력을 갖춘 협약을 체결하겠다는 겁니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현 추세로는 플라스틱 소비량이 2060년 12억 1,300만 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2019년과 비교해 3배 이상 늘어난 겁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플라스틱 생산을 위해 석유가 몰려들고 있다는 점은 바 있습니다. 현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50년대에는 세계 전체 탄소에서 플라스틱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0%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IEA는 예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