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후예산의 규모와 이행 정도를 모두 파악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예산별 분류체계가 다를뿐더러, 예산과 법 간의 연계성도 낮기 때문입니다. 기후예산의 정의가 더 명확해져야 한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에 돈을 얼마나 어떻게 쓰고 있나’란 토론회에서 나온 지적입니다.
토론회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박정 의원실(더불어민주당·경기 파주시을)이 주최했습니다. 녹색전환연구소·나라살림연구소·랩2050 등 3개 기관이 공동으로 주관했습니다.
이날 패널토론 좌장을 맡은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원장은 “2월에 한국재무행정학회에서 기후대응기금 등 기후예산을 포괄적으로 발표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다”며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예산과 관련해) 얻고 싶은 숫자를 얻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정재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기후예산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가 알 수 없다”며 ”제대로 된 평가를 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기후예산? “얼마나 쓰는지 집계 안 돼” 💰
이날 발제를 맡은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나라는 기후재정에 얼마나 쓰는지 자체가 집계되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 등 예산이 각 부처에 흩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부뿐만이 아니라, 중소벤처기업부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각 부처에서 기후예산을 배정받아 집행 중입니다. 각 부처의 하위 공공기관 역시 세부사업을 추진합니다. 물론 이는 국가의 예산 공식분류체계에 따라서 분류가 가능합니다.
문제는 공식 분류체계에 포함할 수 없는 예산에서 발생합니다.
이 수석연구원은 군대 막사를 예시로 소개했습니다. 군대 막사를 짓기 위한 예산은 국방으로 분류됩니다. 막사 건설 시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건설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예산은 결과적으로 국방으로 분류됩니다.
현 공식 분류체계만으로는 기후대응에 실질적으로 사용되는 전체 예산 규모를 알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물론 한국은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를 시행 중입니다. 국가 예산과 기금을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방향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했는지 평가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그러나 이 제도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전체 국가 사업 중 1.8%만이 평가되고 있을뿐더러, 배출사업이 빠진 채 분석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도 이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탄소중립기본계획 예산, 기존 예산과 최소 연계돼야” ⚖️
이 수석연구원은 2023년 한국 기후예산을 크게 3가지로 분류했습니다.
①기존 예산 분류에 따른 금액 39조 5,000억 원 ②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탄소중립기본계획) 내 재정투자 계획액 13조 3,000억 원 ③온실가스감축 인지예산 내 6조 3,000억 원 순입니다.
그는 “(분류체계별로) 각각 다 한계가 있다”며 “결과적으로 탄소중립을 위해 돈을 얼마나 쓰고 있느냐란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잘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그는 정확한 예산 산출을 위한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이 수석연구원은 “최소한 탄소중립기본계획 재정투자 계획과 기존 예산체계 간의 연계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탄소중립기본계획 상 재정투자 계획액이 기존 예산체계의 어떤 세부사업을 통해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는 “탄소중립기본계획 상의 재정 투자 계획이 실제 국가의 어떤 세부·내역사업을 통해 구현되는지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나아가 온실가스감축 인지예산을 모든 사업으로 넓혀가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그는 “기존 예산 시스템과 탄소중립기본계획, 온실가스감축 인지예산 등 3가지 시스템이 모두 연계돼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
탄소중립기본계획 내 세부사업 내역 비공개 현황 지적돼 🤔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의 최기원 선임연구원은 기후예산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기후예산이 ▲기후대응기금 예산 ▲온실가스감축 인지예산 ▲환경부 예산 ▲기획재정부 탄소중립 예산을 모두 말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기후’나 ‘탄소중립’이 붙은 예산을 모두 기후예산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실제 온실가스 감축효과만 있는 사업만 볼 것인지 분류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기후적응까지 포함하면 분류체계는 더 광범위해집니다.
이에 최 선임연구원은 탄소중립기본계획 내 정책에 배정된 예산을 기후예산으로 지목했습니다. 탄소중립기본계획 내 정책 예산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40%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입니다.
탄소중립기본계획 내 5개년(2023~2027년) 예산은 모두 합쳐 89조 9,000억 원입니다. ▲2023년 13조 3,000억 원 ▲2024년 17조 2,000억 원 ▲2025년 18조 6,000억 원 ▲2026년 20조 1,000억 원 ▲2027년 20조 7,000억 원 순입니다. 연평균 18조 원 규모입니다.
이는 국회의원 요구자료 형태로만 제출됐습니다. 연간 금액만 있을 뿐, 세부사업 내역은 비공개입니다. 실질적인 예산 편성을 알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는 것이 최 선임연구원의 지적입니다.
기후싱크탱크 사단법인 넥스트의 이주 수석정책전문위원 역시 비슷한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는 “올해 초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에 기본계획 대비 예산이 얼마나 잡혀 있는지 물어봤다”며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세부사업과 관련해 정확히 얼마가 집행 중인지 탄녹위도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탄녹위는 국가 탄소중립과 기후대응에 있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지자체에서는 탄소중립기본계획 내 재정투입 계획과 사업 세부 투자 내역을 충실히 공개하고 있다고 최 선임연구원은 꼬집었습니다.
정확한 예산 평가를 위해서는 탄소중립기본계획 내 세부사업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현 기후예산, 탄소중립 달성에 충분한가? 🔔
나아가 최 선임연구원은 “국가가 (탄소중립)기본계획으로 세운 예산과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가 세운 예산에서 중복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가 기후예산”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국가기본계획과 광역지자체 기본계획 내 기후예산은 연평균 약 29조 원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해당 기후예산에는 기초지자체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연평균 29조 원이란 예산이 탄소중립 달성에 충분한지 역시 논의해야 할 지점입니다.
이는 한국의 5년간(2024~2028년) 추정 명목 국내총생산(GDP) 2,650조 원의 1.1% 수준입니다. 기후대응을 위해서는 세계 GDP의 약 5%를 투자해야 한다고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분석한 바 있습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이중 30%가 공공재원으로 충당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경우 한국의 기후대응을 위해서는 연간 132조 5,000억 원이 필요합니다. 약 39조 8,000억 원을 정부가 투자해야 합니다.
최 선임연구원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떤 정책수단을 사용할 것인지 정확한 규모가 추계돼야 한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각각 얼마를 분담할 것인지 공유된 큰 그림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탄녹위와 (상설이 예정된) 국회 기후위기 특별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기후예산의 편성과 집행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올해 세수 결손 규모가 세입예산안 대비 30조 원 안팎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기후예산이 단기적으로 삭감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최 선임연구원은 “초기 녹색전환을 위한 사업예산 투입이 추후 더 큰 경제적 편익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국의 진익 국장은 각계각층이 예산 모니터링에 나서줄 것을 주문했습니다.
진 국장은 “탄소중립기본계획은 정책적 측면에서 최상위 계획이나 구속력이 없다”고 짚었습니다. 정부가 실행을 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에 그는 결국 관심이 해결책이라며, 시민단체·학계가 기후예산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의견을 개진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