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의 음극재 개발에 필요한 핵심광물 중 하나는 ‘흑연’입니다. 흑연은 에너지용량이 클뿐더러, 안전성도 우수해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음극재에 주로 널리 사용됩니다. 리튬이온배터리의 20~30%가 흑연으로 구성됩니다.
현재 세계 흑연(천연자원·인조흑연) 생산량의 65.4%는 중국이 담당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중국 천연흑연 수입 의존도가 2022년 기준 94.4%에 이릅니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작년 12월부터 흑연 수출 통제에 나섰단 것입니다. 미국의 제재에 맞서 중국이 ‘자원 무기화’를 본격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이에 대안으로 인조흑연을 개발하려 나선 기후테크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2021년 미국에 설립된 ‘몰튼인더스트리스(이하 몰튼)’의 이야기입니다.
12일 회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사측이 설립 후 현재까지 모은 투자금은 2,700만 달러(약 368억원)에 달합니다. 지난 6월 빌 게이츠의 기후투자사 브레이크스루에너지벤처스(BEV)가 회사 시리즈 A에 투자하며 세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 기업은 메탄을 이용해 인조흑연을 만들려고 한단 것입니다.
“메탄 열분해 기술로 흑연 생산…부산물로 수소 나와” 🔥
몰튼은 천연가스에 풍부한 메탄(CH4)을 흑연(C)과 수소(H2)로 분해하는 열분해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일명 ‘메탄 열분해 기술’입니다.
메탄을 뜨거운 온도에서 가열해 탄소와 수소 구성 성분으로 분해될 때까지 가열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별도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몰튼은 현재 미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파일럿(시범) 시설을 운영 중입니다. 폐수처리시설이나 매립지에서 나온 바이오가스를 원료로 조달받고 있습니다. 에너지 가열에 필요한 전력은 시설 인근 재생에너지 설비로부터 조달받고 있습니다.
에너지 집약적인 마이크로파·플라스마 기반 가열 기술 대신 토스터와 같은 방식의 가열 기술을 사용한 덕분이란 것이 사측의 주장입니다.
사실 인조흑연을 만드는 기술을 갖춘 곳은 이미 여럿 있습니다. 몰튼은 경쟁사와 비교해 자사의 열분해 기술이 5배는 적는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또 부산물로 나온 그린수소는 산업계에 공급해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몰튼은 강조했습니다.
청정수소 대량생산 목표 → 흑연·청정수소 모두 생산 ⚡
몰튼이 원래부터 인조흑연을 전문으로 생산하려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회사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케빈 부시는 당초 청정수소 대량생산을 목표로 했습니다. 기후대응을 위해선 산업계 탈탄소화가 시급한 상황 속에서 청정수소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단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미 스탠포드대에서 재료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부시 CEO는 대학 동문인 케일럽 보이드를 만나 몰튼을 설립합니다.
부시 CEO는 “(당초 회사의 목표는) 비용효율적인 반응기를 사용해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수소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그와 동료들은 한 주택 차고에서 유튜브 영상을 참고해 수소 생산을 위한 메탄 열분해 기기를 만듭니다.
설립 첫해 시드투자에 참여한 벤처캐피털(VC) 유니온스퀘어벤처스(SVB) 등 주요 투자자 역시 청정수소 생산기술에 주목해 사측에 투자를 집행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메탄 열분해 기기를 사용하던 중 고품질 인조흑연이 생성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대개 인조흑연은 석탄이나 석유의 부산물인 콜타르(coal tar)를 주원료로 만들어집니다. 공정이 복잡하고 고온의 열처리 공정이 필요해 천연흑연보다 가격이 비쌉니다.
배터리에 사용될 수 있을 정도로 고품질의 인조흑연을 만드는 기술 수준 역시 높은 편입니다. 몰튼이 개발한 인조흑연은 배터리 제작에 사용될 수 있는 등급을 부여받았습니다.
나아가 시장에 출시된 다른 인조흑연보다 가격경쟁력 면에서 저렴할뿐더러,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역시 적단 것이 사측의 주장입니다.
이 발견은 회사 사업 구성과 전략을 조정하게 만들습니다.
美 에너지부, 녹색철강 개발 위해 몰튼에 보조금 지급 💸
미국 에너지부 역시 몰튼의 기술 잠재력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올해 6월 에너지부는 몰튼에 약 540만 달러(약 73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몰튼이 보유한 메탄 열분해 기술과 수소환원제철소를 융합해 녹색철강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메탄 열분해 기술에서 나온 그린수소를 수소환원제철소에 공급하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이를 위해 몰튼은 북미 최대 철강업체인 US스틸과 파트너십도 맺었습니다.
크리스찬 지아니 US스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선 다양한 기술의 개발과 상용화가 필요하다”며 “(몰튼과의 파트너십은) 지속가능한 강철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평가했습니다.
몰튼 공동설립자 겸 CTO인 보이드는 “화학·철강·운송 등 산업계는 깨끗하고 경제적인 수소 공급원을 찾는데 심각한 고민이 있다”며 “몰튼의 메탄 열분해 기술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25년 생산설비 확대…“배터리 대체재 경쟁↑” 🔋
사측은 최근 유치한 자금조달을 기반으로 오클랜드에 있는 생산설비를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새로운 열분해 기기를 건설 중입니다. 부시 CEO는 해당 장비가 매일 흑연 1,500㎏과 그린수소 500㎏가량을 생산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몰튼에 투자한 BEV의 카마이클 로버츠 투자위원장은 “흑연 같은 중요한 핵심광물의 공급원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이는 대규모 전기차 전환 지원에 필수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불확실성도 있습니다. 실리콘 등 다른 재료 역시 배터리 음극재의 대체재로 흑연과 경쟁할 여지가 높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차세대 배터리 기업 실라나노테크놀로지스는 흑연을 실리콘으로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실리콘이 흑연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아 배터리 성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의 말입니다.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NEF(BNEF) 역시 실리콘 같은 대체재가 흑연과 경쟁할 수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