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수소 상용화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차세대 기술에 대한 철강업계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청정수소는 철강·화학 등 산업계 내 탈탄소화 해결책으로 주목받습니다. 그러나 최근 일부 외신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청정수소에 대한 기대가 과장됐단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높은 생산비용과 규모 확장의 어려움 등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그간 수소환원제철 등 청정수소에 기대를 걸어온 철강업계로서는 차세대 기술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업들이 차세대 철강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까요?
27일 그리니엄은 최근 미국 정부가 직접 투자한 차세대 탈탄소 철강 기술개발 기관 13곳을 살펴봤습니다.
美 에너지부, ‘非수소’ 탈탄소 철강 스타트업 13곳 투자 💰
미 에너지부가 투자 소식을 전한 건 지난 4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에너지부는 무탄소 및 초저배출 철강 생산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9개주에 걸쳐 13개 프로젝트를 선정합니다. 기업 5곳, 연구소·대학 8곳이 선정됐습니다.
프로젝트명은 ‘로지(ROSIE·Revolutionizing Ore to Steel to Impact Emissions)’입니다. ‘배출량 감축을 위한 광석에서 철강으로의 혁신’의 줄임말입니다. 프로젝트명에서 알 수 있듯이 “새롭고 변혁적인 기술”을 대상으로 합니다.
단순히 철강 생산을 넘어, 광석부터 제철까지 전 공급망에 혁신을 일으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미 에너지고등연구계획원(ARPA-E)을 통해 총 2,800만 달러(약 380억원)가 지원됩니다.
그런데 로지 프로젝트에 선정된 곳을 살펴보면, 13곳 중 10곳이 수소를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물론 대부분이 실험 또는 파일럿(시범) 단계입니다.
현재 탈탄소 철강 기술의 주류는 청정수소 기반의 수소환원제철입니다.
대표적인 기업이 스웨덴의 녹색철강 스타트업 H2그린스틸(H2GS)입니다. 우리나라 포스코그룹 또한 2050년까지 수소환원설비 전환을 목표로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수소환원제철 이외 탈탄소화 기술 필요 🥚
물론 미국 정부가 청정수소 기반의 녹색철강을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번 에너지부 투자에 앞서 청정수소 녹색철강에 대규모 투자가 선행됐습니다.
지난 3월 조 바이든 정부가 발표한 산업 탈탄소 부문 60억 달러(약 8조원) 투자가 대표적입니다. 발표 당시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업 탈탄소화 투자로 주목받았습니다.
철강·알루미늄·시멘트·화학 등 탈탄소화가 어려운 중공업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철강 분야로는 미국 주요 철강 기업 클리블랜드 클리프와 스웨덴 철강기업 SSAB가 선정됐습니다. 각각 최대 5억 달러(약 6,800억원)가 지원됩니다. 두 기업 모두 정부 지원금을 기반으로 청정수소 기반의 철강 생산시설을 건설할 계획입니다.
청정수소 생산 및 공급을 늘리기 위한 세액공제 세부기준도 확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너지부는 차세대 기술 지원 대상으로 왜 ‘비(非)수소’ 기반의 녹색철강 기술에 주목했을까요?
코리 필립스 이에 대해 ARPA-E 프로그램 디렉터는 “철강 생산을 탈탄소화 하기 위한 서로 다른 조치를 보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프로젝트는 항상 여러 대안을 시도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과 일맥상통합니다.
실제로 화석연료를 청정수소나 암모니아로 교체하는 직접환원 기술은 장단점이 뚜렷합니다. 초기 투자비와 생산설비 추가 필요성이 적지만, 주로 고품질 광석에만 활용이 가능합니다.
▲전기화학 ▲수소플라즈마 ▲고급 열 제어 등 다른 초기 기술에 대한 투자 역시 필요하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ARPA-E 측은 차세대 철강 기술을 통해 미국 배출량을 연간 6,500만 톤, 전 세계 배출량을 연간 29억 톤 이상 줄일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각각 미국 연간 배출량의 1%, 세계 배출량의 5.5%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민간 기업 5곳 선정, 레이저부터 배터리까지 다양 🔋
로지 프로젝트에 선정된 13곳 5곳은 민간 기업입니다.
▲라임라이트 스틸 ▲일렉트라 ▲블루오리진 ▲피닉스 테일링 ▲폼에너지 등이 선정됐습니다. 각 기업이 연구 중인 철강 부문 탈탄소화 기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라임라이트 스틸|‘레이저 용광로’로 탄소 80% ↓
202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설립된 철강 스타트업입니다.
레이저를 활용해 저렴하고 탄소배출 없이 철광석을 제련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철광석에 여러 개의 작은 레이저를 쏘아 단 몇 초 만에 녹일 수 있다단 것이 사측의 설명입니다.
회사 공동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올리비아 디포는 자사의 기술이 모든 철광석에 사용될 수 있단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 수소환원제철보다 에너지도 30% 덜 사용한다고 그는 밝혔습니다. 그 결과, 기존 화석연료 방식 대비 에너지 소비는 46%, 배출량은 80% 이상 줄일 수 있습니다.
단, 현재 적용 가능한 면적은 약 1제곱피트(약 30㎠) 너비에 불과합니다. 이를 욕조 크기 이상으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디포 CEO는 밝혔습니다.
② 일렉트라|커피 한 잔 온도로 제철 도전
2020년 미국 콜로라도주에 설립된 녹색철강 스타트업입니다.
일렉트라는 2022년 브레이크스루에너지벤처스(BEV)가 주도하는 8,500만 달러(약 1,160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에 성공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일렉트라는 현재 전기화학을 이용한 저온 습식 제련 공정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특징은 ‘커피 한 잔’에 불과한 60℃의 낮은 온도에서 저품질 철광석을 고순도 철로 정제할 수 있단 것.
전기화학 공정으로 철광석의 불순물을 제거해 가능하다고 사측은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기존 공정 대비 탄소배출량은 80%, 비용은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③ 블루오리진|우주기술, 지구상 제철에도 응용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세운 민간우주기업 블루오리진 또한 차세대 철강 기술개발에 합류했습니다. 작년에는 달 먼지로 만든 태양전지 및 전송 와이어를 개발한 바 있습니다.
블루오리진은 자사의 우주기술을 활용해 지속가능한 제철 방식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으로 저품질 철광석에서 고품질 선철을 생산하는 ‘우로보로스’ 시스템을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해당 시스템은 전기분해 기반의 용융산화물 전기분해(MOE)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④ 피닉스 테일링|광산폐기물로 철강에 희토류까지
2020년 매사추세츠주에 설립된 기업입니다. 광산 부산물인 저품질의 스크랩을 원료로 고품질의 철을 생산합니다.
블루오리진과 마찬가지로 MOE 기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차별점으로는 독자적인 용융산화물 전해액을 사용한단 것. 이를 통해 제철 과정에서 고가의 희토류까지 모두 분리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⑤ 폼에너지|산화철 배터리 기업도 참전
2017년 매사추세츠주에 설립된 폼에너지도 선정됐습니다.
폼에너지는 산화철 기반의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개발해 왔습니다. 미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선정한 2023년 주목해야 할 기후테크 기업 15곳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런 폼에너지가 녹색철강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건 새로운 기회를 봤기 때문입니다. 산화철 배터리는 철이 산소와 반응(산화-환원)하는 과정을 전력 충전에 활용합니다. 이는 전기화학 기반의 제철 방식과 유사합니다.
공동설립자인 마테오 자라밀로 CEO는 “녹색철강의 다음 도전은 산화물을 충전하는 것”이라며 전기화학 제철 기술에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8개 대학·연구소, 수소·플라스마·전력 등 차세대 기술 R&D 나서 🔬
5개 기업과 별개로 대학교와 연구소 8곳도 로지 프로젝트를 통해 지원금을 받게 됐습니다.
구체적으로 대학교 7곳과 연구소 1곳입니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⑥ 유타대|수소환원 무용융제강
유타대학에서는 수소환원을 이용한 무(無)용융 제강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고품질의 철광석을 직접환원함으로써 에너지 집약 단계를 제거한다고 대학 측은 밝혔습니다.
⑦ 아르곤국립연구소|수소 플라스마 기술
에너지부 산하 아르곤국립연구소(ANL)는 마이크로파 플라스마 반응기로 만든 수소 플라스마를 활용할 계획입니다.
수소 플라스마를 활용하면 1,400℉(약 760℃) 미만의 낮은 온도에서 환원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시멘트 생산에 사용되는 회전식 가마로를 더해 에너지 소비도 줄입니다.
ANL은 기존 화석연료 방식과 비교하면 현재의 전력망으로는 35%, 미래에 저탄소 전력망으로는 88%까지 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지원금을 활용해 ANL은 하루 10㎏ 생산 규모의 개념 증명(PoC) 단계를 수행할 예정입니다.
⑧ 미네소타대|수소 플라스마 기술
미네소타대학 역시 수소 플라스마 기술을 활용한 제철 기술을 연구할 예정입니다.
⑨ 터프츠대|암모니아 직접환원
터프츠대학교는 그린암모니아를 사용한 직접환원 기술을 개발할 예정입니다. 그린암모니아는 그린수소를 기반으로 합성된 차세대 청정원료입니다. 수소보다 보관 및 운송이 수월하단 장점이 있습니다.
⑩ 네바다대|‘전해채취’ 공정
네바다대학은 ‘전해 채취(electrowining)’란 공정을 사용합니다.
광석을 전해액으로 추출하고 전기분해를 사용해 채취하는 방식입니다. 아연·카드뮴·망간·니켈 등에서 고순도의 금속을 얻는데 주로 사용됐습니다.
네바다대 연구진은 회전 임펠러(회전 장치)를 더해 화학 반응 속도를 10배 높였습니다. 이를 통해 오래된 기술을 철강 탈탄소화에 활용할 수 있단 것. 향후 목표는 시간당 순도 98%의 철 1㎏ 생산을 10시간 동안 유지하는 것이라고 대학 측은 밝혔습니다.
⑪ 펜실베이니아주립대|전기화학으로 600℃ 미만 제철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연구진은 600℃ 미만의 온도에서 철광석을 제련하는 전기화학 공정을 개발할 예정입니다. 고체 금속 산화물을 사용해 전기 분해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이 연구진의 말입니다.
⑫ 우스터폴리테크닉대|저탄소 전해철 분말
저탄소 전해철 분말 생산 기술 연구에 중점을 둘 예정입니다. 전해철이란 철강을 전기분해해서 만든 순철의 일종입니다. 촉매와 환원제, 고순도 시약 등 다양한 산업용으로 사용됩니다.
⑬ 조지아공과대|저탄소 구조용 강철 생산
조지아공과대학은 압출 구조의 직접환원 방식을 통해 다양한 구조의 저탄소 합금강을 생산하는 방법을 연구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구조용 합금강을 저탄소화함으로써 항공우주와 군사, 민간 항공기 등의 탈탄소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단 것이 대학 측의 설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