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넷제로산업법(NZIA)’ 3자 협상을 잠정 타결했습니다.
EU 이사회는 성명을 통해 “유럽의회와 넷제로산업법과 관련해 잠정 합의했다”고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각) 밝혔습니다. 이는 입법절차가 모두 완료됐단 의미입니다.
이후 넷제로산업법은 EU 이사회와 유럽의회의 공식 서명을 거쳐 EU 관보에 게재된 후 발효됩니다. 이르면 연내 발효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넷제로산업법은 EU 내 탄소중립 기술개발에 투자를 촉진하고 관련 역내 산업을 육성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가 작년 3월 발의한 법입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대응 차원에서 넷제로산업을 공식 추진했습니다.
넷제로산업법은 핵심원자재법(CRMA), 전력시장 개편안(EMD)과 함께 EU 그린딜 산업계획을 위한 3대 핵심 입법안으로 불립니다.
EU “2030년까지 역내 탄소중립 기술 수요 40% 자체 생산 목표” ⚖️
넷제로산업법의 핵심은 2030년까지 EU 내 청정기술 제조역량이 역내 수요의 최소 40%를 충당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청정기술 개발 ▲속도 향상 ▲규제 간소화 ▲자금 지원 등과 관련된 내용은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예컨대 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해 1GW(기가와트) 이상의 대규모 청정기술 제조 프로젝트 허가 절차는 최대 18개월, 그 미만 소규모 프로젝트 허가는 12개월로 단축됩니다.
청정기술 관련 상품·서비스 공공조달 활성화를 위한 기준도 마련됩니다.
나아가 ‘넷제로 산업 클러스터(산업단지)’도 조성됩니다.
클러스터에 입주한 기업은 행정 및 규제 절차가 다른 곳보다 간소화됩니다. 기술혁신을 촉진하고자 신기술 개발부터 실험까지 검증하기 위해 완화된 규제 샌드박스(규제 특례)를 만든단 내용도 담겼습니다.
이들 기업에 숙련된 인력을 지원하기 위해 ‘넷제로 산업 아카데미’도 설립됩니다. EU 집행위는 역내 일자리 중 “35~40%가 녹색 전환의 영향을 받는다”며 “산업 내 기술 인력 양성 및 노동자들의 기술 전환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EU 전역의 투자와 정보 교환을 촉구하는 것을 목표로 ‘넷제로 유럽 플랫폼’도 구축됩니다.
청정기술 전환에 필요한 구체적인 재원 조달 계획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단, 유럽의회 요구에 따라 향후 EU 배출권거래제도(EU-ETS) 수익 등을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단 내용이 적시됐습니다.
“규제·허가 간소화, 투자 확대” 기후중립 달성 위한 ‘전략기술’ 범위는? 📊
쟁점도 남아 있습니다. 여러 청정기술 중 EU 기후중립 달성에 도움이 될 전략기술의 범위를 놓고 견해차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EU는 청정기술 중에서도 전략기술의 역내 제조역량을 2030년까지 연간 수요의 40%까지 증대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EU 집행위는 넷제로산업법 초안에서 전략기술로 8가지를 선정했습니다. ①태양광·태양열 기술 ②육상·해상 재생에너지 기술 ③배터리 및 에너지 저장 기술 ④히트펌프 및 지열에너지 기술 ⑤전해조 및 연료전지 ⑥그리드 기술 ⑦지속가능한 바이오가스·바이오메탄 기술 ⑧CCS(탄소포집·저장) 기술 등입니다.
소형모듈원전(SMR) 등 원자력 기술이나 대체연료도 청정기술로 지원이 가능하다고 언급은 됐으나, 전략기술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작년 11월 유럽의회 본회의 투표 결과, 전략기술 숫자는 17개로 늘어납니다. 기존 8가지 기술에 ⑨수소 ⑩열에너지 분배 ⑪대체연료 ⑫전기차 충전 ⑬메탄·아산화질소 등 비(非) 이산화탄소(CO₂) 포집 ⑭바이오소재 생산 ⑮재활용 ⑯열핵융합 ⑰원자력 기술 등이 추가됐습니다.
당시 유럽의회는 “EU 회원국별로 지리적·경제적 상황에 적합한 청정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 목록을 크게 넓혔다”고 밝혔습니다. 독일·오스트리아 등은 원자력이 전략기술에 포함된 것에 불만을 표시했고, 반면 프랑스는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았습니다.
EU, 넷제로산업법 전략기술에 원자력 포함…“기술·자금 조달은 회원국 몫” ⚡
지난 7일 유럽 현지매체 유랙티브에 따르면, EU 집행위·유럽의회·EU 이사회는 3자 협상에서 원자력을 전략기술로 분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넷제로산업법 최종안이 나온 후에야 전략기술의 범위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U 이사회와 유럽의회는 “전략기술은 성숙 정도와 경쟁력 기여 여부 그리고 공급망 불안에 안보 위협 등 3가지 기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넷제로산업법 최종안에는 “청정기술 단일 목록이 제정될 예정”이라며 “해당 기술 중 탈탄소화에 더 크게 기여할 (전략기술) 프로젝트의 선정 기준도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물론 전략기술 목록에서 어떤 기술을 중점적으로 배포하고 자금을 조달할 것인지는 EU 27개 각 회원국의 몫입니다.
+ “전략기술 범위 확대”…기후환경단체, 한정된 재원 분산 우려 🤔
같은날 세계자연기금(WWF) EU 지부는 성명을 통해 넷제로산업법이 당초 목표보다 후퇴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기후중립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기술에 우선적으로 자금이 흘러야 하는 상황이나,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기술로 재원이 몰릴 수 있단 것.
독일 환경단체 도이치움벨트힐페(DUH) 또한 같은날 성명을 통해 원자력과 CCS가 전략기술에 포함된 것에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DUH는 이번 3자 협상이 “고가의 고위험 기술을 선호하는 모호한 타협”이라고 꼬집었습니다.
韓 무역협회 “넷제로산업법, 역외 기술·제품 차별 방식 운영 가능성” 🚢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번 합의를 환영한단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성명에서 “넷제로산업법에 대한 정치적 합의는 EU의 야심찬 기후 및 경제 목표 달성을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EU를 청정에너지 전환의 세계적 선두 주자로 만들고 있다”고 피력했습니다. EU는 넷제로산업법을 통해 미국 IRA와 중국과의 경쟁에서 탄소중립 산업의 주도권을 잃지 않겠단 계획입니다.
그러나 한국 입장에서는 넷제로산업법이 되려 또 다른 장벽이 될 수 있단 우려가 나옵니다.
미국의 IRA와 마찬가지로 EU의 넷제로산업법 역시 규제 완화와 보조금 지급 방식으로 역내 녹색산업을 키우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청정기술 프로젝트 공공조달 사업자 선정 시 EU 역내 사업자를 우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 8일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는 “비가격 기준 중 지속가능성 기준이 향후 EU 역내 기술을 우대할 수 있다”며 “역외 기술이나 제품을 차별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넷제로산업법이 EU 역내 기업과 수출기업에 동일하게 적용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단, EU 공식 관보 게재 이후 구체적인 우려점을 파악한단 계획입니다.
EU, 2030년까지 연간 5000만 톤 탄소포집 목표 💭
한편, CCS의 경우 별도 목표가 설정됐습니다. EU는 2030년까지 연간 CO₂ 저장 용량을 5,000만 톤을 달성한단 계획입니다. 2040년에는 2억 8,000만 톤까지 늘어납니다. 2050년에는 연간 최대 4억 5,000만 톤을 저장해야 합니다.
연간 5,000만 톤은 2022년 스웨덴의 연간 배출량에 해당합니다. 현재 세계 탄소포집 및 저장 용량을 고려할 시 현실적으로 가능하냔 반문도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