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대선 후보직에서 자진 하차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본인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각)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는 성명에서 “재선에 도전하고 싶었지만 (후보를) 사임하고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 직무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 당과 국가에 있어 최선이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한 것은 린든 존슨 전(前) 대통령 이후 56년 만입니다.
지난 6월 첫 대선 TV토론회에서 참패 이후 사퇴 압박이 더욱 거세지며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분석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하차 발표 직후, 민주당 대선 후보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를 밝혔습니다.
공식적인 민주당 대선 후보는 오는 8월 19일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결정될 예정입니다.
바이든 대통령, 대선 4개월 앞두고 후보 전격 하차 ✋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미동부 델라웨어주 별장에서 자가격리 중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대통령으로 봉사한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영광이었다”고 운을 뗐습니다.
그러나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으로서 의무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기로 결정했다”며 하차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어 “해리스 부통령이 올해 민주당의 후보가 되는 것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이 당일 오전에야 결정을 확정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을 포함한 서너 명을 제외하면 백악관 대부분의 직원이 발표 1분 전까지 하차 결정을 알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발표 시점과 방식의 돌발성과는 별도로 바이든의 사퇴 자체는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확진 판정 발표가 주목받았습니다. 조용히 넘어가는 대신 대대적으로 알리고 칩거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을 두고 하차 선언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단, 미국 대선까지 4개월도 채 남지 않았던 만큼 지금 시점에서 중도 하차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존재했습니다.
같은날 영국 경제전문매체 파이낸셜타임스(FT)는 “대통령 선출이 4개월도 안 남은 가운데 올해 백악관 경선이 혼란에 빠졌다”고 전했습니다.
TV토론회 참패·트럼프 암살 미수 악재에 사퇴 압박 작용 📺
바이든 대통령은 그간 고령과 건강 문제 등으로 당 내외에서 후보 사퇴 압박을 받았습니다. 지난 6월 첫 대선 TV토론회에서는 건강 문제가 거듭 떠오르며 바이든 대통령의 참패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유력 상대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달 13일 암살 미수 사건을 계기로 지지율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6일 위스콘신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공식 후보로 선정됐습니다.
미 방송사 CBS에 따르면, 18일 기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52%로 집계됐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47%보다 5%p(퍼센트포인트) 앞선 결과입니다.
CBS는 이달 3일 조사 대비 트럼프 전 대통령은 2%p 상승, 바이든 대통령은 1%p 하락한 수치라고 전했습니다. 총격 사건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줘 대중의 지지를 끌어올렸다는 분석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대선 완주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민주당 내에서는 후보 교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후보 하차 발표 직전까지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한 전·현직 민주당 의원은 36명에 달합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뉴욕주) 등 굵직한 인사들이 포함됐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직 사퇴 발표 직후 민주당 측 인사들은 즉각 환영을 표했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새로운 후보자에게 횃불을 넘기는 결정은 분명 힘든 결정 중 하나였을 것”이라며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나라 사랑에 대한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펠로시 전 하원의장 또한 “항상 우리나라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애국적인 미국인”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해리스 부통령 본격 출격…트럼프 “누구든 똑같아” 💬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 표명으로 중심은 해리스 부통령에게 쏠리는 모양새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2020년) 해리스 부통령을 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내가 내린 최고의 결정”이었다며 “전폭적인 지지를 표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대통령의 지지를 받게 돼 영광이며 (최종 후보로) 선정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습니다. AP통신은 “해리스 부통령을 중심으로 집결하고 있지만, 역학 관계는 여전히 유동적”이라며 민주당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대선 후보가 결정될 민주당 전당대회는 당장 다음달 19일 열립니다. 110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민주당 대선 경선은 사실상 주별 대의원 과반 지지를 받아 확정된 후보가 지명되는 방식이었습니다. 19일 전까지 과반을 확보한 후보가 없을 시 1968년 이후 처음으로 현장 투표가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이에 BBC는 미국 국민이 지금껏 본 적 없는 “생생하고 예측불허의 정치쇼를 보게 될 수 있다”고 논평했습니다. 동시에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흥미진진할 수도 있다”며 기대를 드러냈습니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도 없고 대통령 출마 자격도 없다”며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이어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서 “좌파가 누구를 내세우든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민주당 新 대선 후보, ‘기후정책 퇴보’ 저지 가능할까? 🤔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하차는 앞으로 미국과 세계 기후대응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일각에서는 ‘인기 없는’ 바이든 후보를 교체함으로써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저지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표적인 기후부정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화석연료로의 회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대규모 축소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앞서 미 기후단체 클라이밋디파이낸스의 마이클 그린버그 설립자는 “기후와 민주주의를 위해 11월에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핵심은 새롭게 등장할 민주당 대선 후보의 기후대응에 대한 인식과 정책에 달려 있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을 포함해 주요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4명의 기후정책 관련 이력을 살펴봤습니다.
1️⃣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미국 최초의 아시아계이자 흑인계 여성 부통령이란 기록을 세운 인물입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법무장관 및 상원의원을 거쳐 정치계에 입문했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될 경우, 현 정부의 기후정책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중에서도 ▲대규모 기후투자 ▲환경정의 ▲녹색기후기금(GCF) 기여 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이든 정부보다 환경규제가 더 강화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상원의원 시절 해리스 부통령은 ▲10조 달러(약 1경 3,900조원) 규모의 그린뉴딜 계획 ▲수압파쇄법(프래킹) 금지 ▲화석연료 업계 대상 공유지 임대 금지 등을 발의하거나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수압파쇄법은 고압의 액체로 암반을 파쇄해 셰일오일 등을 채굴하는 공법입니다.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시절에는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 석유운송 기업 플레인스, 폭스바겐 등을 대상으로 환경범죄를 조사·기소한 이력도 있습니다.
2️⃣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주지사
미시간주 하원·상원의원을 거쳐 주지사를 맡고 있습니다. 주로 여성과 임신중절 문제에 진보적 목소리를 내 온 인사입니다.
미시간주는 대표적인 공업단지란 점에서 공화당에 유리한 입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특성에도 2022년 주지사 선거에서 54% 이상 득표하며 압승을 거뒀습니다. 이에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떠오른 인물입니다.
실제로 미시간주는 네바다주·조지아주·애리조나주·펜실베이니아주·위스콘신주 등과 함께 6대 스윙 스테이트(경합주)로* 꼽히는 지역입니다.
기후정책으로는 작년 11월 미시간주 차원의 기후변화 패키지 법안 도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2040년까지 에너지 기업 청정에너지 100% 의무화 ▲주정부 에너지 절감 목표 수립 ▲대규모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승인 간소화 ▲정의로운 일자리 전환 등이 포함됐습니다.
*스윙 스테이트: 미국 대선에서 특정 정당이 압도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주를 뜻한다. 선거 때마다 민주당 또는 공화당으로 지지를 바꾸는 모습이 그네처럼 오락가락한다는 뜻에서 붙었다.
3️⃣ 조쉬 샤피로 펜실베이니아주지사
현 펜실베이니아주 주지사입니다. 같은주에서 하원의원과 법무장관을 거쳤습니다.
그 역시 공업단지 지역에서 주지사에 당선됐단 점에서 휘트머 미시간주지사와 함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주목을 받습니다.
지난 3월에는 펜실베이니아주 차원의 기후프로그램을 발의했습니다. 에너지 기업에게 탄소세를 부과하고,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를 골자로 합니다.
AP통신은 법안이 통과되면 “세계 최초로 탄소세를 채택한 화석연료 생산주(州)”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펜실베이니아주는 주요 석탄 및 셰일오일 생산지로, 세계 최초로 유정이 개발된 지역이란 점에서 상징성을 갖고 있습니다.
4️⃣ 마크 켈리 애리조나주 상원의원
전직 미 해군 대위이자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비행사 출신의 정치인입니다. 군대와 총기 규제 관련해 주로 활동해 왔습니다.
그는 기후정책에서도 다소 보수적인 태도를 드러낸 바 있습니다.
2020년 대선 당시, 기후대응의 필요성은 공감하나 그린뉴딜은 찬성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2022년에는 조 맨친 웨스트버지니아주 상원의원(무소속)과 함께 석유 시추 확대 필요성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민주당에서 탈당한 맨친 의원은 보수성향 인사로 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