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국가들의 책임을 공개적으론 논의하는 청문회가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각)부터 시작했습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각국이 어떤 법적 책임을 지는지 확인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청문회는 오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98개국과 12개 국제기구가 네덜란드 헤이그에 소재한 국제사법재판소에 출석해 의견을 밝힙니다. 1945년 국제사법재판소 출범 이후 청문회에 이같이 많이 국가와 기관이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른바 ‘기후 청문회’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 기후위기에 따른 위험으로부터 각국 정부가 국민을 보호할 국제법적 의무가 있는지입니다.
둘째, 만약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국제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겁니다.
이번 청문회는 2023년 3월 유엔총회에서의 결정에 따라 진행 중입니다. 태평양 도서국인 바누아투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당시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적 의견은) 유엔과 회원국들이 더 대담하고 강력한 기후조치를 취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습니다.
“국제법 의무 vs 의무 아냐” 청문회 첫날부터 격돌 🤔
국가들뿐만 아니라,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등도 재판부로부터 발언 기회를 얻었습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역시 명단에 포함됐습니다.
각 나라와 기구들은 각각 30분씩 발언합니다. 한국 대표단은 3일 오후(한국시각 4일 새벽)에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ICJ에 따르면, 황준식 외교부 국제법률국장과 이근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한국 대표단으로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정부는 앞서 올해 3월에 국제사법재판소에 서면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습니다.
청문회 이틀차(3일)까지 22개국이 출석해 발언을 마쳤습니다.
청문회 첫 발언자로 나선 랠프 레겐바누 바누아투 기후변화·환경특사는 “국내법으로만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법정에 서게 됐다”고 피력했습니다. 그는 바누아투를 비롯한 인근 섬나라 국가들의 연합기구인 ‘멜라네시아 스피어헤드 그룹(MSG)’의 대표입니다.
레겐바누 특사는 “온실가스 배출 대다수는 소수의 나라에서 나왔다”며 “정작 큰 피해를 입 건 바누아투를 포함한 나라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는 “우리는 우리 탓이 아님에도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이에 기후위기에 따른 위험으로부터 정부가 국민을 보호할 국제법적 의무가 있을뿐더러,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 국제법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틀을 넘어서는 배상과 보상이 모두 이뤄져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반면, 같은날 발언에 나선 호주·사우디아라비아·독일의 경우 기후변화에 대한 조치 의무는 UNFCCC에만 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UNFCCC틀 내에서 법적 책임을 한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기후변화에 따른 책임을 국제법으로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호주 대표단은 UNFCCC와 파리협정이 온실가스 배출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의무의 주요 원천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조약이나 관습법에 따른 정부 의무가 이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도 이야기했습니다. 해당 주장은 바누아투 등 주변국으로 빈축을 샀습니다.
“2024년 주요 국제법원 기후소송 청구인 손 들어줘” ⚖️
청문 절차가 끝난 후 국제사법재판소는 권고적 의견을 내놓게 됩니다. 청문회가 종료된 후 재판관들이 판단을 내리기까지 최소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2025년에야 권고적 의견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이는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가 제시한 권고적 의견의 내용에 따라 각국의 기후대응이 자발적 참여가 아닌 국제법상 의무로 바뀔 가능성도 있습니다.
최창민 플랜 1.5 변호사는 그리니엄에 “국제법 사안에 대한 권한을 가진 유엔 사법기구에 의하여 (권고적 의견도) 판결과 동일한 엄격성과 정밀성을 가지고 만들어진다”며 “그 무게나 권한이 덜하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어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적 의견이 향후 국내 기후소송에서 인용될뿐만 아니라, 지역·국제재판소에서 국가간의 기후변화 관련 ‘국가책임(State Responsibility)’을 묻는 새로운 유형의 법적 분쟁의 마중물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권고적 의견이라 할지라도 국제사법재판소의 위치를 생각할 경우 국내외 법적 분쟁에서 중요한 참조로 사용될 것이란 말입니다.
앞서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와 유럽인권재판소(ECHR) 등 주요 국제법원들이 올해 잇따라 기후소송 청구인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나아가 세계 각지에서 진행 중인 주요 기후소송 판결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큽니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주로 기후과학이나 정책·법적 전문지식 접근성이 비교적 낮은 중저소득국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한편, 영국 그랜섬 기후변화환경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39년간(1986~2024년 5월) 누적된 기후소송 건수는 2,666건에 이릅니다. 이중 70%는 파리협정이 채택된 2015년부터 제기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