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전 세계에 제기된 기후소송 건수가 최소 233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올해 5월까지 제기된 기후소송은 43건으로 파악됐습니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 산하 그랜섬 기후변화환경연구소는 지난 27일(이하 현지시각) ‘기후소송 글로벌 트렌드 2024’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랜섬연구소는 미국 컬럼비아대 법학전문대학원 내 사빈센터와 협력해 연례 기후소송 건수와 트렌드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6번째 보고서입니다.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39년간(1986~2024년 5월) 누적된 기후소송 건수는 2,666건에 이릅니다.
기후소송 중 약 70%가 파리협정이 채택된 2015년부터 제기됐습니다. 국가별로는 미국(1,745건)이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영국(139건), 브라질(82건), 독일(60건)이 뒤를 이었습니다.
55개국서 기후소송 제기…“美서 소송 전체 70% 제기, 기후소송 다각화” 📊
2023년 제기된 기후소송 233건 중 129건은 미국에서 접수된 것이었습니다. 이어 영국(24건), 브라질(10건), 독일(7건), 호주(5건) 순이었습니다.
아시아 국가 상당수는 1~10건에 그쳤습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가 11~20건으로 상대적으로 기후소송이 많았습니다.
한국 역시 아시아권에서는 기후소송이 많은 국가로 분류됐습니다. 보고서에서는 지난해 기후솔루션 등 기후단체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낸 행정소송이 소개됐습니다. 단체들은 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기금운용위훤회의 탈석탄 정책 수립 과정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기후소송 제기 건수 자체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둔화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연구소는 설명했습니다. 이는 소송이 더 전략적인 형태로 전환됐기 때문입니다.
주목할 점은 기후소송이 미국을 넘어 다른 국가들에서 제기되고 있단 것입니다. 예컨대 지난해 파나마와 포르투갈에서 기후소송이 처음 제기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또 전체 기후소송 건수의 약 8%가 남반구 국가에서 제기됐다고 그랜섬연구소는 덧붙였습니다.
보고서는 “일부 남반구 국가에서는 법원을 기후정책 대응의 도구로 활용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며 “반면, 다른 국가에서는 기후소송을 전략적으로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결과, 기후소송이 제기된 국가 수는 55개국으로 파악됐습니다.
“역사적 판결 잇따라”…英 그랜섬연구소, 2023년 기후소송서 ‘중요한 해’ 🏛️
그랜섬연구소는 2023년이 기후소송에 있어 중요한 해였단 점을 강조했습니다.
주요 국제법원으로 기후소송이 몰렸기 때문입니다. 전체 기후소송 중 국제법원에 제기된 사건 수는 5%에 그칩니다. 허나, 이들 사건 중 상당수는 일반 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상당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올해 4월 유럽인권재판소(ECHR)가 스위스 여성노인단체가 제기한 소송에서 스위스 정부가 기후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인권을 침해했다는 판결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단, 스위스 의회는 재판소의 판결을 무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 5월에는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가 각국 정부가 해양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온실가스를 감축할 의무가 있다는 권고적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와 미주인권재판소(IACHR) 등에도 현재 비슷한 사건이 제기돼 있습니다.
기후워싱 소송, 2021년 27건 →2022년 26건 → 2023년 47건 📈
눈여겨볼 지점은 기업을 상대로 한 기후소송 역시 늘어났단 점입니다. 특히, 기업의 ‘기후워싱(Climate Washing)’을 문제 삼는 소송이 늘었습니다.
기후워싱은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중 하나입니다. ▲기후대응 투자·지원 과장 ▲기후리스크 비공해 ▲친환경 오해 소지 담은 제품·서비스 등을 해결하고자 법원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일고 그랜섬연구소는 설명했습니다.
2023년 기업을 상대로 한 기후워싱 소송 건수는 최소 47건으로 집계됐습니다. 2021년(27건)과 2022년(26건)보다 늘어난 것입니다. 최근 8년간(2015~2023년) 제기된 기후워싱 건수는 총 140건에 이릅니다.
기관은 “(판결이 나온) 기후워싱 사건 77건 중 54건이 청구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졌다”고 밝혔습니다. 약 70%에 해당합니다. 물론 이같은 소송의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추가 관찰이 필요하다는 단서가 달렸습니다.
나아가 이같은 기후소송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단 사실이 발견됐습니다.
과거에는 화석연료나 에너지 기업에 소송을 제기한 반면, 현재는 항공·식음료·전자상거래·금융 등 산업군 전반에서 소송이 이어지고 있단 뜻입니다.
보고서는 2023년 7월 호주 증권투자위원회가 뱅가드인베스트먼트(이하 뱅가드) 호주 현지법인을 그린워싱 혐의로 고발한 사례를 대표적으로 소개했습니다.
회사가 소유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가 화석연료나 담배 기업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안내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화석연료 관련 프로젝트에 투자된 것이 문제였습니다. 지난 4월 호주 법원은 뱅가드의 그린워싱 행위를 인정하고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기후소송 백래시? 반기후소송 역시 증가”…反 ESG 소송 대표적 ⚖️
이같은 기후워싱 소송에 반발하는 움직임 역시 관측됐습니다.
그랜섬연구소는 이를 ‘반기후소송(Non-Aligned Climate Litigation)’으로 정의합니다. 기후소송에 반발하는 움직임, 즉 백래시가 일고 있단 뜻입니다.
재무제표에 기후리스크를 포함시키는 사항에 반대하는 반(反) ESG 소송이 대표적입니다. 예컨대 엑손모빌은 주주결의안에 기후대응을 넣으려는 행동주의 펀드 2곳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기후대응 참여를 독려하는 기후환경단체나 활동가를 상대로 한 소송 역시 늘었습니다.
반기후소송이 던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청정에너지로의 전환 과정에서 노동단체나 지역사회가 반발하는 소송 역시 여기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또 기후대응과 환경보호가 서로 상충하는 소송 역시 고민해야 할 지점입니다.
해상풍력이 대표적입니다. 기후대응을 위해선 해상풍력은 필수이나, 지역사회 어업과 해양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단 논쟁도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해상풍력 설비가 고래 개체수에 위협이 된단 주장이 있습니다.
“기후소송 공청회, 기후대응 이해·대화 도울 플랫폼으로 거듭나” 🤔
그랜섬연구소는 법원이 기후변화에 대중의 이해와 대화를 도울 플랫폼이 됐단 점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헌법재판소에 제기된 기후소송 4건을 언급했습니다. 4건 모두 정부의 기후대응 계획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취지로 제기됐습니다. 지난 4월과 5월 헌재는 두 차례에 걸쳐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그랜섬연구소는 한국 헌재의 공청회 등을 예시로 들며 “여러 기후소송에서 드러나는 일반적인 특징은 공청회나 증거 수집 과정에서 법원이 대중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특이한 조치를 취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또 법원 공청회가 기후변화와 관련된 시민 교육 기능을 제공함으로써, 증거 기반 토론을 더 촉진할 수 있다고 기관은 덧붙였습니다.
28일 사빈센터 데이터 자료를 확인한 결과, 국내 기후소송 누적 건수는 총 10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여기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시한 권고적 의견 2건도 포함된 것입니다.
그랜섬연구소는 이번 보고서에 대해 “기후소송이 기후행동을 진전시키는지 방해하는지 여부를 여전히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를 상대로 한 일부 기후소송은 청구인이 속한 국가 기후거버넌스 체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점은 분명하다고 기관은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