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반도체·인공지능(AI) 등으로 인해 전력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으나 전력을 수요처로 연결하는 송전망 건설 확충 속도가 현저히 떨어져 전력망을 조속히 확충해야 한다는 재계의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20일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이같은 주장이 담긴 ‘산업계 전력수요 대응을 위한 전력공급 최적화 방안’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최대 전력수요는 2003년 대비 2023년 98% 증가한 94GW(기가와트)에 이르렀습니다. 같은기간 발전설비 용량도 56GW에서 143GW로 154% 증가했습니다.
반면, 송전설비는 26%만 증가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송전설비는 2003년 2만 8,260c-㎞*에서 2023년 3만 5,596c-㎞ 증가했습니다.
이 때문에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이 수요처에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거나 정전 같은 전력계통 안정성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서는 지적했습니다.
*c-㎞(서킷킬로미터): 다양한 송전선 종류를 ㎞ 기준으로 계산한 단위
지역 반대 속 송전선 공사 지연…법·지원체계 한계 ⚖️
그 배경으로는 송전망 건설 사업이 계획보다 평균 5~6년 정도 지연됐기 때문입니다.
대한상의SGI가 한국전력공사 자료를 토대로 살펴본 결과, ①동해안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동해안-신가평 HVDC 선로 준공은 계획보다 66개월 ②서해안 발전소와 수도권을 연결하는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150개월 지연됐습니다. ③당진화력-신송산 송전선로 역시 90개월이나 지연됐습니다.
대표적인 지연 사유로는 ▲주민들의 송전설비 입지 선정 반대 ▲사업 인허가시 관계기관 의견 회신 지연 ▲지방자치단체 시공 인허가 비협조 등이 꼽혔습니다.
대한상의SGI는 현행 ‘송전설비주변법’ 상 보상 범위가 제한돼 보상 수준 역시 불충분하다는 지적을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경과지 지역주민 지원사업의 실효성도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며 “전력망 건설을 위한 법·제도적 지원체계가 부족하다”고 꼬집었습니다.
박경원 대한상의SGI 연구위원 역시 “현재의 법과 제도로는 송전선 공사 인허가를 신속히 진행하고 현실적 보상 금액을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필요한 전력수요를 제때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송전제약에 사업자 손실 이어져…비용 인상 전망도” 💰
보고서는 전국에서 발생한 여러 송전제약이 사업자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는 신규 발전사업 진행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호남 지역의 경우 올해 9월부터 2031년까지 신규발전허가가 사실상 중단됐습니다. 전력계통 포화로 인해 다수의 출력제어와 송전제약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또 송전망 부족으로 국내 전력 공급 비용이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동해안-신가평’ 선로가 대표적으로 소개됐습니다. 현재 선로 건설 지연으로 인해 발생한 동해안의 송전제약량은 2024년 기준 최대 7GW 수준입니다.
보고서는 동해안의 전력계통 제약으로 해당 지역의 석탄발전을 수도권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대체할 경우를 계산했습니다. 이 경우 매년 1GW당 5,400억 원이 더 드는 것으로 대한상의SGI는 분석했습니다.
송전망 건설 지연 ‘세계적 현상’…해외 벤치마킹 필요 🌐
산업계에서는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 성장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 내 전력의존도는 다른 산업군 대비 8배에 달합니다. AI 수요 증가에 맞춰 반도체 중요도가 늘어남에 다라 대규모 전력공급이 필수적인 상황입니다.
대표적으로 경기 용인에 들어설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우 2050년까지 필요한 전력만 12GW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정부는 초기 2036년까지 LNG 발전소를 이용해 3GW를 충당하고, 이후 청정수소를 활용해 전력을 공급한다는 구상입니다. 부족한 전력은 동해·서해·남해 등 다른 지역의 송전소를 이용해 전력을 공급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현재 송전망 부족 현상이 계속될 경우 반도체 클러스터들 역시 전력공급이 향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계속 나옵니다.
송전망 수요 증가와 건설 지연은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미국의 송전망 건설 지연으로 접속 대기로 추정되는 재생에너지 전력이 2022년 기준 1,200GW로 추정된 바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같은 송전망 건설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 바 있습니다.
대한상의SGI는 주요국의 송전망 혁신에 주목할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독일은 2011년 ‘전력망 확충 촉진법’을 통해 송전설비가 설치되는 지역주민에 대한 보상체계를 강화했습니다. 8주 이내에 토지보상에 합의한 경우 간소화 보상금이 추가 지급됩니다.
미국의 경우 2021년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법(IIJA)’을 통해 에너지규제위원회의 송전망 사업 승인기준을 완화했습니다. 또 전 과정에 걸쳐 진행 과정 공개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산업계와 소비자 모두에게 안정적·경제적으로 친환경적인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전력망 적시 확충이 가장 시급한 국가 과제라고 강조했습니다.
특별법 조속 통과 필요…“수도권 전력수요 분산 지적도” 🤔
그러면서 현재 국회에 발의된 ‘국가기간 전력망 특별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총 9건의 전력망 확충 특별법안이 발의돼 있습니다.
대체로 첨단산업 전력수요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이유로 송전망 확충을 가속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여기에 ▲인허가 절차 간소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소급 면제 적용 등의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법안이 발의된 만큼 병합 논의가 법안 통과의 열쇠라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대한상의SGI는 특별법이 통과될 경우 현재 송전설비 입지를 결정하는 ‘입지선정위원회’의 사업단위별 입지 결정 시한을 2년으로 제한해 현재(평균 4~5년) 입지선정 기한이 크게 단축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박양수 대한상의 SGI 원장은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전력공급은 첨단 산업을 포함한 산업계의 경쟁력 확보에 필수 조건”이라며 “국가적 과제인 핵심 전력망을 제때 짓기 위해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의 신속 제정을 촉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단, 모두가 특별법을 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고서가 공개된 날(20일) 환경운동연합 등 74개 지역 환경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거 국회에 발의된 전력망 특별법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습니다.
단체들은 법안이 재생에너지 전력망 체계 구축 없이 송전망 건설만 강행할 경우 환경파괴와 주민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사무부총장은 “수도권 전력공급을 늘리기 위한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 전력이 많은 지역으로 수요를 분산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