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항소법원, 로열더치쉘 ‘45% 감축’ 강제한 2021년 판결 뒤집어

“기업 온실가스 감축, 인권 측면서 사회적 의무…법적 의무 아냐”

네덜란드 법원이 석유 대기업 로열더치쉘에 대해 탄소배출량을 줄이라는 2021년 하급법원의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12일(이하 현지시각) 네덜란드 헤이그 항소법원은 쉘이 사회적 의무에 따라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하나, 그 감축목표를 법원이 결정할 수 없다며 이전 지방법원의 판결을 기각했습니다.

지난 2021년 5월 헤이그 지방법원은 쉘이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5%까지 줄여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헤이그 지방법원은 쉘이 파리협정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공급망 내 배출량을 줄일 의무가 존재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스코프3 배출 역시 관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스코프3 배출량 산정이 어렵다는 점에서 통상 규제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법원이 이례적인 판결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이 소송은 네덜란드 환경단체들과 시민들을 주축으로 2019년에 제기됐습니다.

당시 판결은 기후소송의 분수령인 사건으로 여겨졌습니다. 이후 다른 에너지 기업에 대한 소송의 물결을 촉발했습니다.

쉘은 당시 판결에 항소하고 이후 본사를 영국으로 이전했습니다. 헤이그 지방법원의 판결은 네덜란드에서만 법적 구속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상급법원에 항소를 진행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억제하라는 요구는 사법부가 아닌 행정부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사측의 주장이었습니다.

 

“항소법원, 1심 판단 뒤집고 쉘의 손 들어준 이유는?” ⚖️

헤이그 항소법원은 일단 쉘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항소법원은 “(환경단체들이) 기후변화라는 위험에 대처하고자 해당 소송을 제기한 것은 정치적 논제를 뒤로 미루고 봐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기후대응과 인권 측면을 고려해 쉘이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해 ‘사회적 의무’가 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법적 의무’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항소법원이 쉘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 사법부가 기업에게 구체적인 배출량 감축 범위를 정해줄 수 없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칼라 주스트라 부장판사는 “쉘이 대형 석유·가스 기업으로서 특별한 책임이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감축목표인 45%를 곧장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판시했습니다.

2030년까지 45% 감축이란 수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가 제시했습니다. 파리협정 1.5℃ 억제 목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수치입니다.

주스트라 판사는 “현재 기후과학계에서 쉘과 같은 개별 기업이 준수해야 할 구체적인 감축목표에 대한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둘째, 스코프3와 관련해 실제 배출량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공급망 배출량까지 부과된 감축의무가 실제 고객의 배출량까지 제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 항소법원의 설명입니다.

화석연료 채굴과 거래를 중단해도, 다른 경쟁사가 존재하는 이상 실제 배출량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쉘의 주장을 항소법원이 받아들인 겁니다.

 

 

쉘, 법원 결정 환영…청구인, 추가 항소 입장 밝히지 않아 🏛️

항소법원의 판결 직후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쉘의 주가는 전날 대비 소폭 하락한 30.63유로(약 4만 5,7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이는 같은날 지수 하락세와 대체적으로 일치했습니다.

항소법원의 판결 직후 쉘 측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와엘 사완 쉘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을 통해 “항소법원의 결정에 만족한다”며 “에너지 전환, 네덜란드 그리고 쉘 모두를 위한 올바른 결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쉘은 자체 배출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반면, 소송을 당시 처음 제기한 국제환경단체 ‘지구의 벗’은 항소법원 판결에 대해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단체 책임자인 도널드 폴스는 “(그럼에도) 이번 판결은 대형 오염원이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법정 밖에서 “(기후소송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며, 경주는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단체는 대법원에 추가 항소 여부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개별 기업 구체적 감축목표 ‘수치’ 관련 연구 진행 중” 🔍

기후과학계와 법조계는 이번 판결을 놓고 여러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영국 런던정경대(LSE) 산하 그랜섬 기후변화환경연구소의 조아나 세처 준교수는 ‘사회적 의무’에 초점을 뒀습니다.

세처 준교수는 “네덜란드 항소법원이 쉘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임으로써 인권을 존중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항소법원이 하급법원의 판결을 뒤집기는 했으나, 기업들이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원칙이 다시 강조됐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그랜섬연구소에 따르면, 기후변화와 기업 간의 인권 책임 문제를 두고 20건의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연구소의 노아 워커 크로포드 연구원은 오히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기업들을 위한 구체적인 감축목표가 제시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는 “이번 판결은 과학자들이 전지구적 감축목표를 개별과 기업의 구체적인 감축목표로 전환하도록 한다”며 “(소송을) 성공으로 이끌 증거에 대해 명확한 증거가 곧 제공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크로포드 연구원은 “석유·가스에 대한 부문별 감축목표에 대한 과학적 합의가 없다”면서도 “해당 수치를 도출하기 위한 연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세계적인 로펌 애셔스트의 톰 커민스 파트너는 “이번 판결에 그간 여러 기후소송에서 승소를 거둬온 기후활동가에게는 실망스러울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항소법원의 판결이 다른 국가의 유사 기후소송에도 근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커민스 파트너의 말입니다.

한편, 올해 5월까지 제기된 전 세계 기후소송은 43건으로 파악됐습니다. 누적 소송 건수만 2,666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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