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온 이후 언론에서는 주로 헌법과 합치되는지 불합치되는지 기준으로 주목한 것 같다. (중략) 그런데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많은 진전을 이루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아시아 최초이자 국내 최초 기후헌법소원의 공동대리인단을 맡은 윤세종 플랜 1.5 변호사의 평가입니다.
그는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탄소중립의 미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란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습니다. 행사는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등이 주최하고, 김원이·박지혜·정진욱 의원실이 주관했습니다.
지난 8월 29일 헌재는 온실가스 감축 조치를 담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아니한다”고 결정했습니다.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세우지 않은 탄소중립기본법의 해당 조항이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도 당분간 효력을 유지하는 조치를 말합니다.
효력 유지 기간은 오는 2026년 2월 28일까지입니다. 정부와 국회는 이때까지 관련 개정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헌재의 결정에 대해 윤 변호사는 크게 4가지 시사점을 뽑아 설명했습니다.
“헌재, 韓 정부 기후변화로부터 국민 보호할 의무 있어” ⚖️
첫째, 헌재가 기후변화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헌법상의 의무로 인정한 것입니다.
그는 “헌법상의 권리로 기후변화 문제를 인정한 사례는 전 세계에서 아직 많지 않다”며 “권리가 명시적으로 인정된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네덜란드·독일·유럽인권재판소에 이어 국제적으로 의미 있는 진전이 나왔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또 최종 판결문에 인용된 기후과학 정보가 단순 나열된 것이 아니라고 그는 짚었습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등이 수행한 기후과학 연구가 헌재의 법적 판단의 근거가 될 만큼 확실하고 객관적인 근거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윤 변호사는 설명했습니다.
둘째, 기후대응과 관련해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이 제시됐습니다.
윤 변호사는 “국제적 기준에 기반해 대한민국이 마땅히 기여해야 할 몫에 맞춰서 (감축목표가) 설정돼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제시됐다”고 밝혔습니다.
향후 입법과 정책 과제 수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이 제시된 것이라고 윤 변호사는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셋째, 미래세대의 권리가 인정됐습니다.
윤 변호사는 “지금 대응에 나서지 않는 것이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기본권 침해로 인정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사법부가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인정한 판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러면서 “미래세대가 정치적으로 (기후대응 입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해도 헌법상 기본권을 가지고 있다”며 “사법 심사를 통해 (기본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받은 굉장히 중요한 진전”이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마지막 넷째는 국회의 의무가 강조된 겁니다. 헌재는 판결문에서 탄소중립기본법 일부 조항이 법률 위법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시했습니다. 제도 수립에 필요한 최소한 법적 틀은 반드시 국회가 법으로 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윤 변호사는 기후대응은 “고도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는 “해결되지 않으면 합의될 수 없고 실현될 수 없다는 점이 다시 강조됐다”며 “결국 문제를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책임은 국회에게 있다는 것이 담긴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기후소송 판결, 끝이 아닌 기후대응 시작점…전제는? 🤔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혜경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국회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가 2026년 2월 28일까지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을 개정하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개정 방법으로 크게 2가지를 제안했습니다. ①2050년까지 단계적 목표를 법정으로 정하는 방법 ②2050년까지 감축경로(선형·오목·합형)를 제시하는 방법입니다.
또 헌재에서 의견 대립이 있었던 ‘순배출량’과 ‘배출량’ 등의 용어 사용에 대해서도 국회 법률 개정을 통해 논란의 여지를 불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이 입법조사관은 “중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감축경로를 계획하는 것은 매우 높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도 여럿 있습니다.
첫째, 정부가 감축목표와 관련해 객관적인 근거 자료를 제시하는 겁니다. 2023년 11월 감사원 역시 정부가 객관적 근거와 과학적 검토체계에 근거하여 감축목표를 논의하도록 촉구한 바 있습니다.
둘째, 감축목표 논의 과정에서 국제통상환경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려돼야 합니다. 미국·유럽연합(EU)·중국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청정기술 육성이 주요 핵심정책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른바 녹색보호주의도 대두됐습니다.
이 입법조사관은 탈탄소 국가경쟁력 확보와 감축목표 달성이 서로 연계된 사안이란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에 개정 논의 과정에서 심의 있는 검토가 진행돼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습니다.
마지막 셋째, 헌재의 결정 취지를 적극 반영하기 위해선 법안 간 연계성이 강화돼야 합니다.
탄소중립기본법의 부문별·연도별 이행 계획을 담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이 국가 최상위 계획으로서 실효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이나 전력수급기본계획 등과 연계하는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돼야 한다고 그는 이야기했습니다.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서 용어 사용 논란 여지 불식해야 🏛️
2035년 감축목표(2035 NDC) 설정 과정에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2035년 감축목표는 현재 논의 중입니다. 정부는 내년 2월까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해당 감축목표를 제시한다는 계획입니다. 이 목표 제출을 예정대로 선행하는 것이 좋은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입니다.
이 입법조사관은 헌재에서 의견 대립이 있었던 ‘순배출량’과 ‘배출량’ 등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용어 사용에 대해서도 국회 법률 개정을 통해 논란의 여지를 불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안영환 숙명여대 기후환경에너지학과 교수 또한 2035 NDC 수립 과정에서 관련 논의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내비쳤습니다. 그는 기후소송 공청회 당시 정부 측 참고인으로 나선 바 있습니다.
그는 “정부와 국회는 헌재의 판결을 존중해 후속 입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이날 좌장을 맡은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의정부갑)은 “(헌재의) 판결을 계기로 탄소중립기본법 뿐만 아니라, 기후정책과 관련한 여러 부분을 다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입법부인 국회는 무겁지만 중요한 과제를 떠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박 의원은 토론회에서 제시된 견해들을 바탕으로 국회에서의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행사 이튿날(27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김진식 환경부 기후전략과 과장은 “폭넓은 의견수렴을 통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계획”이라며 “탄녹위 심의·의결을 통해 2035 감축목표를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플랜 1.5는 헌재 판결을 따르기 위해서는 2035 감축목표를 2018년 대비 66.7% 수준으로 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의 국제적 행동기준인 ‘전 지구적 감축경로’와 IPCC의 공정배분 원칙에 따라 해당 목표가 도출됐다고 기관은 이야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