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공시는 인프라 구축”…금융계, ESG 의무공시 도입에 당국 결단 촉구

ESG 공시 비용, 부담→보험료 인식 전환 필요

“기후공시는 경부고속도로다. 경부고속도로가 산업화 시대를 연 것처럼, 기후공시는 기후대응 시대 인프라(기반시설) 구축에 대한 것이다.”

국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자문사 서스틴베스트의 오승재 부대표의 말입니다.

그는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본시장 가치 제고를 위한 지속가능성 의무공시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기후공시의 필요성을 산업화 시기 경부고속도로에 빗대 역설한 것입니다.

오 부대표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여러 반대에도 정부의 결단으로 이뤄졌듯이, ESG 의무공시 도입도 금융당국의 큰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문했습니다.

토론회에서는 ESG 공시에 대한 기업과 투자자 간 입장차가 드러났습니다. 기업들은 부담을 호소하는 반면, 투자자들은 필요성을 크게 느끼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기업 측면에서 ESG 공시의 필요성에 대해 주로 논의됐습니다.

강력하고 빠른 ESG 공시 도입이 기업의 자금조달·리스크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단 것이 패널들의 공통된 주장입니다.

다만, 패널토론에 참석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원론적 입장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최치연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 과장은 “의무화 정도나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 수렴 종료 후에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오는 31일까지 의견 수렴을 진행해 올해 하반기 최종기준을 발표한다는 방침입니다.

 

“ESG 의무공시, 비용 우려에 기회 놓쳐” 주객전도 지적 📢

금융계 패널들은 재원이 저탄소 전환으로 배분되기 위해선 ESG 공시가 필수적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나승호 한국은행 지속가능성장실 실장은 ESG 공시가 “기업들이 탄소중립 자금을 원활히 조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배출량 같은 단순한 지표를 넘어 대출 탄소집약도나 신용 단위당 배출량 등의 관리 지표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발제자로 참석한 전윤재 KB금융지주 ESG사업부 부장도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 기반의 자금조달이 (기업) 경쟁력이 된 시대가 이미 됐다”고 말했습니다.

임대웅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 FI) 한국 대표는 우리나라의 ESG 공시가 주요국 대비 늦어지는 점을 우려했습니다. ESG 공시 도입이 늦춰지면서 오히려 기업들의 손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자금조달에서 ESG 공시와 택소노미를 활용해 받을 수 있는 금리 할인을 놓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공시 비용을 우려해 더 큰 경제적 기회를 놓친다는 뜻입니다.

임 대표는 현 상황에 대해 “주객이 전도돼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 왼쪽 상단부터 패널로 참석한 오승재 서스틴베스트 부대표, 최치연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 과장, 나승호 한국은행 지속가능성장실 실장, 임대웅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 한국 대표, 정준혁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김이배 덕성여자대학교 회계학과 교수의 모습. ©그리니엄

상법 전문가 “ESG 관리, 비용 아닌 배임 문제” 🚨

정준혁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ESG 리스크를 방치하는 것 자체가 배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에 대한 일본 판결을 사례로 들었습니다.

지난해 1심 재판부는 도쿄전력 측에 13조 3,000억 엔(약 122조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배상금은 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도쿄전력 경영진의 막대한 책임이 인정됐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입니다.

정 교수는 재판부 판결에 대해 “앞서 2008년 대지진 경고가 제기됐음에도 경영진이 비용 문제로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지속가능성 문제가 기업의 재무적 문제와 연결될 경우 이를 방치하는 것 자체가 배임이고 상법 위반이라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 최종원 NH아문디자산운용 채권리서치실 실장은 기업들이 ESG 공시 비용 부담을 ‘보험료’로 생각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기후리스크으로 인한 기업가치 하락을 ESG 공시를 통해 방지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법정공시 요구 목소리 ↑…”법률, 기업 보호 위한 것” ⚖️

정 교수는 ESG 공시 추진에 있어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현재 ESG 공시 추진 과정에 대해 KSSB가 법적 근거 없이 사실상 합의에 의존해 기준을 마련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SG 공시기준이 도입되도 이후 법적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허위공시나 기준 미이행에 대한 처벌이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현재 기업들은 법적 책임을 우려해 법정공시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대신 한국거래소 규정에 따른 자율공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정 교수는 기업 보호를 위해서라도 법정공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의도치 않은 부실공시나 미래 상황 전망에 대한 책임을 면제하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실제로 현재 재무공시의 경우 자본시장법에 따른 책임 면제 조항이 설정돼 있습니다. 이에 기업이 나서서 법정공시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정 교수는 피력했습니다.

 

▲ 자연자본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NFD)는 지난해 9월 자연자본 관련 공시 프레임워크 최종 초안을 공개했다. 지난 1월까지는 얼리어답터 조직 모집도 진행한 상황이다. ©TNFD

ESG 공시, 기후 넘어 지배구조·자연자본 확대 필요 🦜

한편, ESG 공시 도입이 기후공시 이상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습니다.

김이배 덕성여자대학교 회계학과 교수는 한국 자본시장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배구조(G) 공시 도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는 지배구조 공시의 필요성을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연계해 설명했습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저평가된 한국 증권 시장 상황(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지난 2월 발표된 정부 프로젝트입니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 수립·공시·이행 ▲스튜어드십 코드 반영 ▲코리아 밸류업 지수 개발 등을 골자로 합니다.

특히, 빠른 경제성장 과정에서 누적된 기업의 지배구조 모순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적 원인으로 꼽힙니다.

따라서 지배구조 공시가 이같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말입니다.

그는 “아직 우리 공시 기준은 ‘일반적 지속가능성 관련 공시 요구안(S1)’과 ‘기후 관련 공시안(S2)’에 머무르고 있다”면서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지배구조”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한은의 나 실장도 세계 금융계의 관심사가 이미 자연자본으로 넘어간지 오래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지난 6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녹색금융협의체(NGFS)’ 연차총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NGFS는 세계 중앙은행과 금융 감독기구들이 모인 기후대응 협의체입니다.

그는 “기후 관련 이슈는 진작 논의를 마쳤을뿐더러 자연자본 공시 프레임워크 마련도 거의 끝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글로벌 협의체 ‘자연자본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NFD)’는 지난해 9월에는 ‘자연자본 관련 공시 프레임워크 최종 초안’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2026년 최종 채택을 앞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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