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다가온 기후공시·자연자본공시, 산업계 적응 방안은?

현실 논의 치열한 기후공시, 그 뒤 바짝 쫓는 자연자본공시

“이미 전 세계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공시돼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공개됐다. 이 기업이라면 어떤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는 시장의 기대도 이미 형성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사) 보호를 위해서라도 (지속가능성) 의무공시가 필요하다고 말해야 한다.”

김은경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실장의 말입니다.

그는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중구에서 열린 ‘2024 상반기 산업계 적응경쟁력 포럼’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습니다.

포럼은 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한국환경연구원·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한국에너지공단이 공동 주관했습니다. 포럼은 산업계의 기후적응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의제를 중심으로 개최됩니다.

이날 행사는 ‘기후공시의 시작, 대응을 위한 우리의 전략과 역할은’을 주제로 열렸습니다.

포럼에서는 기업이 지속가능성을 위해 스스로 의무공시를 요구해야 한단 주장과 기업별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부딪혔습니다.

 

기후공시
▲ 지난달 31일 행사에 발제자로 나선 김은경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실장은 ESG 공시는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가 아니라 회사의 위험 관리 시스템을 공개한다는데 핵심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니엄

“기후공시 핵심, 배출량 공개 아닌 ‘리스크’ 관리” 📢

김 실장은 발제에 앞서 “무엇보다 (ESG 공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하는 기준이 아니란 점을 말하고 싶다”고 서문을 열었습니다.

현재 한국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의무공시 도입을 추진 중입니다.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지난 4월 ESG 공시기준 공개초안을 발표한 상황입니다. 지속가능성 기준 중 온실가스 배출량을 골자로 하는 기후공시만 의무로 도입한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입니다.

▲공시 의무화 시기 ▲공시 대상 ▲스코프3 포함 여부 등은 쟁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기후공시의 핵심은 온실가스 배출량 공개가 아니라 회사의 위험 관리 시스템을 공개하는데 있다는 것이 김 실장의 설명입니다.

그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격언을 꺼내 들었습니다.

“기후 관련 기회와 위험을 어떻게 인식하고 전략을 세우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다른 위험에도 어떻게 대응할지 다 알 수 있다는 게 정말 무서운 점”이라는 것이 김 실장의 말입니다.

이로 인해 최근에는 의무공시를 요구하는 산업계의 목소리도 많다고 덧붙였습니다.

호주비즈니스협의회(BCA)가 사례로 언급됐습니다.호주 당국은 올해 8월 기후공시 기준을 확정할 전망입니다.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것이 목표인 가운데 현재 BCA는 1년 유예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산업계의 부담 때문이 아닙니다. 김 실장은 “(호주 정부는) 당초 기후공시만 요구했지만 모든 지속가능성 공시를 요구하라는 불만이 상당해 (BCA가) 연기를 요구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실장은 이어 “(한국 또한) 초반에는 자율공시(거래소 공시) 의견이 많았지만 지금은 법적 테두리 안에서 기업이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많은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해외 투자자 요구 빗발쳐 “자본시장 압박 거세” 💰

투자자 측의 ESG 공시 요구는 더욱 거센 상황입니다.

김 실장은 최근 투자자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 국제적으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글로벌리포팅이니셔티브(GRI) 등 국제 기관, 해외 투자자들이 의견을 보내겠다고 피력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내 투자자뿐만 아니라, 해외 투자자들도 한국의 ESG 공시 기준에 관심이 많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ESG 공시기준 공개초안과 관련해 지난 7월까지 130여개가 넘는 의견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패널로 참석한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 또한 비슷한 의견을 밝혔습니다.

박상민 IBK기업은행 ESG경영부 팀장은 “자본시장에서 압박을 많이 느낀다”고 토로했습니다. 무디스·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신용평가사와의 회의에서 기존에는 자금부서만 회의에 참석했다면 이제는 본인도 참석하는 상황이라고 박 팀장은 설명했습니다.

공병수 포스코홀딩스 기업윤리팀 차장 또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 부합 여부, 감축률 규모 등 투자자들의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왼쪽부터 패널로 참가한 이강 EY한영 ESG/CCaSS 팀장, 김범준 대한상공회의소 ESG경영실 과장, 공병수 포스코홀딩스 기업윤리팀 차장, 박상민 IBK기업은행 ESG경영부 팀장의 모습. ©그리니엄

대한상의 “내수기업 부담·소송 리스크 고려돼야” 💬

반면, 김범준 대한상공회의소 ESG경영실 과장은 기업들 간의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그는 “(ESG 공시를) 안 하겠다는 것도 중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도 아니다”라며 “방식과 소통에서 기업들의 불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괄적으로 ESG 의무공시를 도입하는 점이 지적됐습니다. 수출기업과 내수기업의 경우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김 과장은 수출기업은 국제사회의 규제로 인해 의무공시 준비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이와 달리 “내수 중심 기업은 필요성에서 체감 차이가 있다”며 “부담을 야기하는 규제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소송 위험에 대한 우려도 드러냈습니다.

그는 “(기업들이) 고의로 부실 공시한 게 아니더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면책 조항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밝혔습니다.

일각에서는 ESG 의무공시를 우선 도입하되 일정 기간 면책 기간을 두고 적응할 기회를 주자는 주장이 나옵니다. 김 과장은 이 또한 “신뢰 저하와 언론 기사화 등 리스크로 인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제시됐습니다. 김 실장은 현재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체제에서도 이미 소송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자발적 공시도 더 힘들어질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서 보호를 위해서라도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제도가 구축돼야 협력업체에서도 더 제대로 된 정보를 받는 등 위험 대응이 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 2023년 9월 ‘자연자본 재무정보공개 협의체’가 자연자본 관련 공시 프레임워크 최종 초안을 공개했다. 주우영 국립생태원 국제협력팀장은 논의를 거쳐 2026년경 최종 채택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TNFD, 그리니엄

자연자본공시 초안 공개 “어렵고 난해하지만 기회도 커” 🦜

나아가 이날 포럼에서는 글로벌 자연자본공시의 동향과 주요 내용도 소개됐습니다.

발제를 맡은 주우영 국립생태원 국제협력팀장은 “기업 활동은 생태계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자연과 관련된 정보 평가가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자연자본공시’라고 합니다.

2021년 ‘자연자본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NFD)’가 설립돼 주요 논의를 이끌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에는 ‘자연자본 관련 공시 프레임워크 최종 초안(이하 TNFD 초안)’이 공개된 상황입니다. 추가 논의를 거쳐 2026년경 채택될 전망입니다.

주 팀장은 “(자연자본공시가) 기후공시보다 더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세계 어디에서 기업 활동을 하든 전 세계 온실가스의 총량이 동일한 것과 달리, 생태계 다양성은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업장마다 지역별 특성을 반영해 평가해야 합니다.

또 국가·사업장 단위의 자연자본 의존성과 영향을 측정할 수 있는 데이터와 평가 방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주 팀장의 제언입니다.

그럼에도 자연자본공시 자체는 확대될 전망입니다.

이강 EY한영 ESG/CCaSS* 팀장은 패널토론에서 416곳의 기업이 2025년까지 자연자본공시를 선언한 상황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중 금융기관은 100곳 이상으로, 이들의 자산운용 규모는 14조 달러(약 2경원)에 달합니다.

따라서 이 팀장은 “기업이 자금 조달과 기업 경쟁력 확보에 있어 자연자본과 생물다양성이 중요한 이슈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국립생태원에서는 환경부와 협업해 국내 자연자본 평가체계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오는 11월부터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과 함께 국내 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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