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ESG 공시기준, 투자기관 94곳 의견은? “기업 의견 대비 입장차 확인”

금융권, 기후공시 역할 강조…“기업 참여 유인 제공 필요”

“(ESG 공시기준에 대해) 기업 의견과 굉장히 차이가 나는 연구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관련 투자자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손혁 계명대학교 회계세무학 교수가 한 말입니다.

그는 지난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협회에서 개최된 ‘자본시장 가치 제고를 위한 지속가능성 의무공시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토론회는 한국회계기준원·금융투자협회·자본시장연구원·한국은행·한국회계학회가 공동주최하고,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 FI) 후원으로 개최됐습니다. 현장에는 각계각층 이해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토론회의 주요 의제는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의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공개초안이었습니다. 특히, 투자자 등 정보 이용자의 관점에 대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이뤄졌습니다.

KSSB는 지난 4월 공개초안을 발표하고 오는 31일까지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 중입니다.

이후 9월부터 의견 분석과 추가 논의를 진행한 뒤 올해 하반기 최종기준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투자자 설문조사 결과 “기업 의견과 상당한 입장차 확인” 📊

이날 발제를 맡은 손 교수는 그간의 ESG 공시 설문조사 연구를 언급했습니다.

기존 설문조사는 주로 ESG 공시 작성자인 기업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이 손 교수의 설명입니다. 그 때문에 의무공시 도입에 대한 부담을 호소하는 내용이 주로 나왔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그러나 투자자 등 정보 이용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연구한 결과, 기업 측 설문 결과와 상당한 차이가 드러난 것이 확인됐습니다.

설문조사는 자산운용사·증권사 등 투자기관과 학계 등 94곳을 대상으로 진행됐습니다. 설문조사는 지난 6월 11일부터 8월 2일까지 이뤄졌습니다.

조사 결과, 투자자와 기업 입장 간의 가장 큰 차이점이 드러난 항목은 3가지였습니다. ①스코프3 공시 ②재무제표 연결기준 적용 ③공시 위치 등입니다.

 

 

먼저 스코프3 공시에 대해선 투자자의 82%가 유용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또 응답자의 73%는 스코프3 의무공시에 동의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 설문조사에서 국내 상장사 125곳 중 56%가 반대한 것과 대비됩니다.

다만, 스코프3 공시 의무화 유예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투자자 중 62%가 1년 이상 유예가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ESG 공시 의무화와 동시에 스코프3 공시를 의무 적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10%에 그쳤습니다.

재무제표 연결기준에 대한 응답도 투자자와 기업 간 입장 차이가 컸습니다. KSSB 초안은 연결기준 적용, 즉 ESG 공시에 종속기업을 포함할 것을 요구합니다. 투자자의 89%는 연결기준 적용에 동의한다고 답변했습니다.

반면, 대한상의가 실시한 설문에서 기업의 약 60%가 유예기간 적용을 요구했습니다. 33%가량은 적용 자체를 반대했습니다.

공시 위치에 대해서도 투자자의 절반 이상인 58%가 사업보고서에 포함해 공시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법정공시를 말합니다. 기업들이 거래소 공시, 즉 자율공시를 요구하는 것과 상반됩니다.

따라서 손 교수는 금융위원회 등 금융기관이 투자자·학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이어 그는 2011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을 언급하며 금융당국에 더 적극적인 태도를 주문했습니다.

손 교수는 2011년 당시에도 기업들이 비용 부담을 호소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IFRS 도입에 성공했고 글로벌 기준을 선도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ESG 공시 또한 입법·행정 기관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제언입니다.

다만, IFRS 도입을 성과로 볼 수 있는지는 금융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KSSB “의견서 167건, 기업-투자자 간극 재확인” 📝

김은경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실 실장도 ESG 공시 관련 의견수렴 과정에서 기업과 투자자 간 일부 상이한 의견이 제출됐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지난 11일 기준 KSSB에는 총 167건의 의견이 제출됐습니다. ▲기업 39% ▲투자자 14% ▲학계 36% ▲기타 11% 순으로 의견이 제출됐습니다.

종합하면 ‘기후공시 우선 도입’에 대해서는 의견 제출자의 79%가 동의했습니다. 지속가능성 공시 중 기후공시를 먼저 도입하는 것에 대부분 찬성했다는 뜻입니다.

단, 투자자의 경우 동의가 83%로 기업 92%보다 동의 정도가 소폭 낮았습니다.

이는 사회(S)·지배구조(G) 공시까지 포함해 더 강력한 공시를 요구하는 측면에서 반대 의견이 일부 제출됐기 때문이라고 김 실장은 설명했습니다.

기업과 투자자 간 입장 격차가 확인된 지점은 스코프3 의무화 시기입니다.

기업은 63%가 1~3년 유예를 요구했습니다. 그중에서도 3년 유예가 71%를 차지했습니다. 5년 이상 유예기간을 요구한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와 달리 투자자 의견은 ▲0년 13% ▲1년 33% ▲2년 27% ▲3년 27%으로 제시됐습니다. 0년은 ESG 공시 의무화와 스코프3 의무화를 동시에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3년 이상 유예기간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은 전혀 없었습니다.

재무재표 연결기준 동의 관련 의견에서도 기업과 투자자 사이 간극이 상당했습니다. 기업은 52%만 동의한 반면, 투자자는 87%가 동의했습니다.

 

금융계 ‘전환금융’ 활성화 위해 기후공시 강조 💰

한편, 금융기관 발제자들은 한목소리로 기후공시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전윤재 KB금융지주 ESG사업부 부장은 금융회사의 포트폴리오 관리에 있어 지속가능성 정보가 절실하다는 점을 역설했습니다.

KB금융그룹의 ‘환경·사회 리스크 관리 모범규준(ESRM)’ 정책이 사례로 소개됐습니다. 리스크를 ▲배제영역 ▲기후변화 관심영역 ▲녹색산업 지원영역으로 구분해 관리 원칙을 제시·적용하고 있습니다.

전 부장은 산업·업종별 산업등급 산정과 신용등급 책정 과정에 지속가능성 정보를 반영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의무공시로 신뢰성과 비교가능성이 확보되면 지속가능성 정보가 사용되는 범위와 수준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표적인 부문으로 전환금융이 꼽혔습니다.

전환금융은 철강·석유화학 등 탄소고배출 기업에 저탄소 전환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기후금융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전환금융 수요는 2030년까지 1,000조 원 규모 정도로 추정됩니다.

전 부장은 그동안 금융사가 데이터 신뢰성 문제로 인해 전환금융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최종원 NH아문디자산운용 채권리서치실 실장도 같은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그는 “갈색산업을 지원하기에는 현재 (정보) 불확실성이 너무 높다”고 꼬집었습니다. 여기서 갈색산업은 탄소고배출 산업을 뜻합니다.

최 실장은 투자자 입장에서 해당 투자의 전환금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기후공시가 필수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 분류 내용 ▲관련 공시 ▲투자 기업의 매출 구성 등이 기반이 돼야 지속가능한 투자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ESG 공시-기업 가치 제고 선순환 구축 필요 ♻️

기업의 ESG 공시를 독려하기 위해서는 금융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습니다.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택소노미 적합도가 자금조달 경쟁력으로 작용할 경우 기업들이 기후공시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SG 공시가 기업 가치 제고와 연계되고 투자 유발로 이어지면 기업의 참여 동기가 유발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이 위원은 이를 ‘유인부합적 공시’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야만이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지속가능성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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