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중순부터 유럽연합(EU) 내 모든 산업계에 단계적으로 ‘디지털제품여권(DPP)’이 도입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때문에 디지털제품여권 개발과 관련 입법 동향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해 대응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습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발간한 ‘EU, 디지털제품여권 도입 및 개발 동향’ 보고서에 담긴 내용입니다.
디지털제품여권은 QR코드나 바코드를 통해 제품의 지속가능성 정보와 사후관리 지침을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지속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안(ESPR)’이 지난 7월 18일(이하 현지시각) 본격 발효됨에 따라 디지털제품여권 도입 시기 역시 확실해졌습니다.
EU 역내에서 판매되는 제품에 디지털제품여권을 부착하지 않을 경우 과징금이나 퇴출 등의 제재를 받습니다. 제품의 지속가능성 정보를 더 투명하게 밝힘으로써 순환경제 사회로의 전환을 더 가속화한다는 것이 EU의 목표입니다.
다만, 디지털제품여권 내 포함정보와 구현방식이 아직 구체화된 것은 아닙니다. 현재 EU 집행위원회는 품목별 세부이행 규칙을 마련 중입니다.
14일 자료를 살펴본 결과, 이지민 KOTRA 브뤼셀무역관은 “현재 EU는 각종 협회·단체·기관들과 디지털제품여권 도입을 두고 활발히 논의 중”이라며 “디지털제품여권 개발 동향과 관련 법안 입법 동향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섬유 시작으로 디지털제품여권 2027년부터 단계 도입 🎫
현재 디지털제품여권에 포함될 정보로는 ▲제품 식별 정보 ▲에코디자인 요건 정보(수리성·내구성·탄소발자국 등) ▲소재 ▲공급망 정보 ▲우려물질 정보 ▲안전 정보 ▲재활용 및 폐기 방법 등이 거론됩니다.
해당 정보는 언제나 명확하고 최신이어야 합니다. 또 다른 디지털제품여권과 상호운용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지적재산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사용자별로 사용할 수 있는 정보 범위도 달라야 합니다.
식료품·의약품·사료 등을 제외한 EU 내 모든 물리적 제품이 순차적으로 디지털제품여권을 적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디지털제품여권이 가장 먼저 적용될 품목군은 10개입니다. ①섬유(의류·신발) ②철강 ③알루미늄 ④가구(매트리스 등) ⑤타이어 ⑥세제 ⑦페인트 ⑧윤활유 ⑨화학물질 ⑩정보통신기술(ICT) 제품군 순입니다.
이중 섬유와 철강은 2025년 3~4분기에 위임법을 채택할 것으로 보입니다. 발효 후 전환기간까지 고려하면 2027년 중순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KOTRA의 설명입니다.
한국의 경우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의 대비가 시급합니다. LG전자와 삼성전자가 대표적입니다. LG전자의 경우 2023년 12조 1,293억 원으로 역대 최대 유럽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삼성전자 역시 23조 9,342억 원 규모의 매출을 보였습니다.
EU로 수출하는 중소기업들도 현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의하면, 작년 기준 EU로 수출하는 한국 중소기업은 1,358곳입니다. 이중 수출액이 1억 원 이상인 곳은 355곳으로 파악됐습니다.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은 EU의 디지털제품여권 제도가 한국 중소기업에 미칠 타격이 적지 않다는 점을 짚은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올해 1월 산업통상자원부는 디지털제품여권 관련 업종별 협회 및 단체와 관련 대응방향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단, 구체적인 대응책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디지털제품여권 내 필수정보·수집정보 연도별로 달라” 👕
관건은 품목별로 제각기 다른 지속가능성 정보를 어떻게 상호운영이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입니다.
일단 2027년 중순부터 먼저 시행될 우선품목군을 중심으로 디지털제품여권 양식 개발을 위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3월 유럽의회 과학기술평가국(STOA)은 섬유 산업에 적용 가능한 디지털제품여권 개발 관련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이곳은 과학기술과 관련된 정책이나 법안의 입법 과정에 필요한 자문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27명의 유럽의회 의원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STOA는 섬유 산업에 적용될 디지털제품여권에 ▲필수정보와 ▲수집정보를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연도별로 구분해 단계적으로 적용한다는 구상을 내놓았습니다.
①1단계: 간소화된 디지털제품여권 배포(2027~2029년) ②2단계: 고급 단계 디지털제품여권 배포(2030~2032년) ③3단계: 완전 순환형 디지털제품여권 배포(2033년 이후) 순입니다.
원단을 예로 들면 쉽습니다. 1단계에서 섬유 기업이 수집해야 할 정보는 크게 운송수단과 운송거리입니다. 원단이 어디서 어떻게 운송됐는지 알아야 한단 뜻입니다.
이후 2단계에는 제조사와 완제품 검수 인증서 그리고 폐기물 처리 방법과 관련된 정보까지 수집해야 합니다. 3단계에는 운송사와 유통망 구조를 날짜와 함께 명시해야 합니다. 원단이 무슨 업체를 통해 어느 시점에 어떻게 판매됐는지 수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연도별로 업체가 단계적으로 수집하고 공개해야 할 정보를 구분함으로써 업체가 느낄 부담을 일부 완화한다는 구상입니다.
CIRPASS, EU 디지털제품여권 공통 기준 제작 중 🗺️
섬유 이외 다른 품목들도 구상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국제배터리연맹 등 31개 기관으로 구성된 다자협력단체 ‘CIRPASS’가 현재 상호운용 가능한 디지털제품여권의 공통 기준을 만들고 있습니다.
CIRPASS는 EU 집행위의 요청으로 2023년부터 디지털제품여권 시스템과 로드맵을 구축 중입니다. 제도 시행 시 중소기업에게 미칠 영향 역시 분석 중입니다.
추후 결과는 EU 집행위가 산업군별 디지털제품여권 관련 위임법을 제정할 때 활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핀란드 혁신기금 시트라는 디지털제품여권 개발 과정에서 EU 차원의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권고했습니다. 산업계가 제도를 선제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선 EU 27개 회원국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입니다.
시트라는 또 공공조달 참여 자격에 디지털제품여권 도입과 사용 내용을 포함할 것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디지털제품여권 선제 도입…“기업 혼자 대응 어려워” 🤔
KOTRA는 핵심원자재법(CRMA)이나 배터리법 등 EU의 다른 법안들에서도 디지털제품여권 도입을 언급하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EU의 주요 법안들이 ‘그린딜’이란 기조 아래 진행되는 만큼 디지털제품여권 도입은 기정사실이란 뜻입니다.
유관기관 그리고 주요 법안들과 긴밀하게 얽혀 있는 만큼, 디지털제품여권 도입 과정에서 세부사항이 무엇인지 면밀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KOTRA는 재차 강조했습니다.
기업들에게 단기적으로는 디지털제품여권 도입이 부담인 것은 사실입니다. 역으로 디지털제품여권을 선제적으로 도입하면 유럽 시장 진출 전략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기관의 말입니다.
이 무역관은 “디지털제품여권 도입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수단으로 인지하고 선제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며 “녹색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이미지를 제고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중소기업을 포함한 개별 기업이 단독으로 공급망 내에서 생성되는 막대한 데이터를 수집·처리·저장하기 쉽지 않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진흥원은 정부의 정책·기술 지원 없이는 디지털제품여권의 대비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