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8일(이하 현지시각)부터 유럽연합(EU)의 ‘지속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안(ESPR)’이 본격 발효됩니다. 지난 6월 EU 차원의 모든 입법 절차가 완료됐습니다.
에코디자인 규정안은 EU 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의 지속가능성 향상을 골자로 합니다. 제품 설계부터 생산 그리고 폐기에 이르는 전(全)주기에 적용됩니다.
이를 위해 모든 제품에 ▲내구성 ▲재사용·재활용 가능성 ▲수리용이성 ▲환경발자국 등의 정보가 공개돼야 합니다.
EU 역내에서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인증’의 일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장 2026년부터 의류·신발 같은 품목은 판매가 안 되도 재고를 폐기할 수 없습니다. 추후 폐기 금지 품목에는 전기·전자제품도 포함될 가능성이 큽니다.
최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EU 에코디자인 규정 발효에 따른 시사점 및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에코디자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품과 서비스는 EU 역내에서 유통이 불가능하다”며 “대(對) EU 수출기업과 공급망 연관 기업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에코디자인 규정안, 우선 적용 우선순위 품목군은? 🤔
에코디자인 규정안은 EU에서 판매되는 모든 ‘물리적 형태’의 상품에 적용됩니다.
당초 에너지효율 관련 제품만 대상으로 하던 기존 지침에서 제품군이 대폭 확대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부품인 디지털 콘텐츠 역시 포함됩니다.
단, 의약품이나 식품 같은 일부 품목은 제외입니다. 정보보호가 중요한 국방안보와 관련된 품목 역시 규정안 적용에서 제외됐습니다.
EU 집행위는 규정 발효 후 9개월 이내에 우선순위 품목군을 설정할 계획입니다. 또 품목별 이행규정 제정을 시작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우선순위 품목군으로는 10개가 거론됩니다. ①섬유(의류·신발) ②철강 ③알루미늄 ④가구(매트리스 등) ⑤타이어 ⑥세제 ⑦페인트 ⑧윤활유 ⑨화학물질 ⑩정보통신기술(ICT) 제품군 순입니다.
탄소배출량이 높은 시멘트와 건축자재의 경우 에코디자인 요건을 확립하는 별도의 위임법률이 늦어도 2030년까지 채택될 계획입니다.

미판매 의류·신발 폐기 2027년부터 원천 금지 🔥
이르면 2027년부터 섬유산업을 시작으로 에코디자인 규정에 기반한 품목별 이행규정이 시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섬유산업은 2022년 EU의 ‘지속가능한 순환 섬유 전략’에 기반해 사전 작업에 어느 정도 이뤄진 상태입니다.
섬유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점은 단연 미판매 제품 폐기입니다. 규정안에 의하면, 섬유산업은 미판매 제품 폐기 시 제품 수와 무게 그리고 사유 등을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해야 합니다.
특히, 미판매 제품 중에서도 의류와 신발은 아예 폐기가 원천 금지됩니다. 일부 액세서리 역시 폐기가 금지됩니다. 이는 패스트패션 문화를 근절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대기업은 발효 2년 후부터 곧장 시행됩니다. 중견기업은 발효 6년 후부터 적용되며, 중소기업은 예외입니다.
“폐기 금지 품목, 전기·전자제품까지 확대 가능성 거론” 📺
주목해야 할 점은 미판매 제품 폐기금지 품목이 추가될 가능성이 있단 점입니다. 보고서는 현재 “검토 품목으로는 전기·전자제품이 언급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EU 집행위는 “늘어나는 전자폐기물의 재사용률을 높여야 한다”며 “(에코디자인 규정안에) 폐기 금지 추가 품목으로 전기·전자제품이 실무계획에 포함돼 검토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탁기나 냉장고 같은 가전기기, 노트북 같은 정보기술(IT) 기기, 태양광 패널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이는 EU로 가전제품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이 영향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LG전자와 삼성전자가 대표적입니다. LG전자의 경우 지난해 12조 1,293억 원으로 역대 최대 유럽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삼성전자 역시 23조 9,342억 원 규모의 매출을 보였습니다.

EU, 역내 제품 지속가능성 ‘디지털제품여권’으로 관리 🎫
그렇다면 EU는 역내 판매되는 제품의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관리한단 걸까요?
핵심은 ‘디지털제품여권(DPP)’에 있습니다. QR코드나 바코드를 통해 규정안이 요구하는 제품의 모든 세부정보와 사후관리 지침을 대중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현재 디지털제품여권의 포함정보와 구현방식이 구체화된 것은 아닙니다.
이는 품목별 이행규정을 통해 구체화됩니다. 품목별 이행규정을 통해 디지털제품여권 표시 위치와 사용될 데이터 유형 등이 추후 규정됩니다.
현재 디지털제품여권에 포함될 정보로는 ▲제품 식별 정보 ▲에코디자인 요건 정보(수리성·내구성·탄소발자국 등) ▲소재 ▲공급망 정보 ▲우려물질 정보 ▲안전 정보 ▲재활용 및 폐기 방법 등이 거론됐습니다.
해당 정보는 언제나 명확하고 최신이어야 합니다. 또 타 품목의 디지털제품여권과 상호운용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합니다.
이는 소비자가 제품을 효과적으로 비교할 수 있기 위한 조치입니다. EU는 디지털제품여권을 통해 제품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단, 디지털제품여권은 기존 제품 라벨이나 설명서를 대체한 것이 아닌 ‘보완적’인 성격이라고 EU는 밝혔습니다. 또 기업의 지식재산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사용자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정보 범위가 다르게 설정해야 합니다.

27개 회원국별 과징금 등 상이…“면밀한 모니터링 필요” 🔍
에코디자인 규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과징금이 부과됩니다.
과징금 규모는 EU 27개 회원국별로 상이합니다. 규정 위반 시 역내에서 제품 판매가 더는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27개국의 입법 현황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EU에 직접 수출하지 않는 한국 기업이라도 간접적으로 영향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럽 고객이나 투자자로부터 관련 정보를 요구받을 수 있어 정보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단 것이 무협의 말입니다.
보고서는 품목별 이행규정에 근거해 제품 설계를 제조하고, 공급망 내 정보를 디지털제품여권에 담아 제공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재활용 소재 비율, 탄소발자국 파악 등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견기업들이 애로사항을 겪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무협은 “공급망 내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선 디지털제품여권 초기 시스템 구축을 위한 범정부적 차원의 지원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이웃나라 일본은 민간기업과 기관 그리고 학계가 모두 참여하는 ‘J-CEP’란 순환경제 파트너십을 통해 플라스틱 디지털제품여권 개발에 나섰습니다.
중국 역시 섬유 등 품목별 공급망 단계별 탄소발자국 플랫폼을 개발해 대응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또 “판매되지 않은 제품의 폐기가 불가능하다”며 “업계의 재고 관리 방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고 짚었습니다. 수선·재활용·폐기에 대한 전반적인 체계를 구축해 제품 생산 단계부터 미판매 제품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단 것.
황준석 무협 그린전환팀 연구원은 “지속가능성 기준은 EU 역내에 제품과 서비스 출시를 위한 필수요소가 됐다”며 “선제적으로 대응해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재제조·재활용 등에 한국 기업이 빠르게 대응한다면 경쟁 기업보다 유리하게 시장 선점이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현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상품무역위원회 등 계기에 관련 동향과 업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