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산업계, EU 배출권거래제 통합 촉구 “독립 유지 시 최대 80억 파운드 손해 전망”

배출권 가격 격차에 英 CBAM 부담금 과다 우려

영국과 유럽연합(EU)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ETS) 간의 단절이 계속될 경우 영국 정부가 향후 5년 간 최대 80억 파운드(약 14조원)의 수익을 놓칠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2030년까지 영국 기업들이 탄소세로 EU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최대 8억 파운드(약 1조 4,000억원)로 추산됐습니다.

컨설팅 기업 ‘프런티어 이코노믹스’가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각) 공개한 ‘영국과 EU 탄소시장 연결’ 보고서에 담긴 내용입니다.

이 보고서는 내셔널그리드·센트리카·드랙스 등 영국 주요 유틸리티·에너지 기업들의 의뢰로 작성됐습니다.

영국 에너지 기업들이 영국-EU 배출권거래제 연계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인 것입니다.

영국 노동당이 지난 7월 정권 교체에 성공한 것도 이같은 정책 추진에 기대를 높입니다. 노동당은 브렉시트 협정 개정 등 EU와의 관계 강화를 거듭 피력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13일 그리니엄이 확인한 결과, 영국-EU 배출권거래제 연계에 있어 걸림돌도 여럿 발견됐습니다.

 

英-EU ETS 연계 아이디어, 배출권 가격 급락에 부상 💡

영국은 당초 2005년부터 EU 배출권거래제 가입국이었습니다. 2020년 공식적으로 브렉시트(EU 탈퇴)하며 EU 배출권거래제도 탈퇴합니다. 이후 2021년부터 독자적인 영국 배출권거래제를 출범해 운영 중입니다.

지난해 12월에는 2027년부터 독자적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U CBAM과 내용은 같지만 별개의 제도로 운영됩니다.

이처럼 영국은 탄소거래제 정책에 있어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영국 산업계는 일찍이 우려를 표했습니다.

영국 탄소배출권의 시장 가격은 EU 대비 10%가량 낮게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영국 기업이 제품을 EU에 수출하려면 EU CBAM에 따라 EU의 배출권 가격 차이만큼의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이는 작년 5월 영국 내 배출권 가격이 급락하며 더욱 커졌습니다.

지난 7월 영국 배출권 가격은 톤당 45파운드(약 8만원)를 넘지 못했습니다. 같은기간 EU 배출권 가격이 톤당 67유로(10만원)에 달한 것과 비교됩니다.

즉, 현재의 가격 격차가 유지될 경우 배출권 1톤당 2만 원 상당의 비용을 영국 수출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수 있습니다.

 

EU 배출권거래제
▲ 프런티어 이코노믹스는 영국 탄소배출권 가격이 급락함에 따라 향후 EU CBAM으로 인한 영국 정부 및 산업계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니엄

산업계 “현황 유지 시 CBAM 부담금 최대 8억 파운드” 💰

배출권거래제가 현재처럼 독자적으로 운영된다면 영국 정부와 산업계의 손실이 막대할 것이란 분석이 담겼습니다.

보고서는 영국과 EU 배출권거래제가 연계될 시 영국 배출권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가 얻을 수 있는 추가 수익은 최소 35억 파운드(약 6조원)에서 최대 80억 파운드로 추산됩니다. 이는 곧 영국 정부가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치르게 되는 기회비용이라는 것이 보고서의 지적입니다.

보고서는 영국 정부가 에너지전환에 대한 공공투자 자금을 마련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2030년까지 향후 5년간 산업계가 EU CBAM으로 인해 치러야 하는 비용은 2억~8억 파운드(약 3,500억~1조 4,000억원)로 추정됐습니다.

문제는 비용만이 아닙니다.

그간 영국 에너지 기업은 풍력발전을 기반으로 EU에 재생에너지 수출을 늘려왔습니다. 덕분에 2023년 영국은 10년만에 대(對)유럽 전력 수출이 수입을 능가했습니다.

그러나 EU CBAM이 시되면 영국산 청정에너지 또한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비용경쟁력이 약화하며 산업계의 추가투자를 억제하는 연쇄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영국과 EU 모두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습니다.

 

英-EU ETS 연계, 3가지 긍정적 효과 기대 👍

보고서는 배출권거래제를 연계하면 영국과 EU 간의 효율적인 무역을 지원할 수 있을뿐더러, 양측의 탈탄소화 목표 달성 비용을 줄이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배출권 시장의 관리를 도와 산업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특히, 영국 정부와 기업이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영국과 EU 배출권 가격 변동성 관리가 더 용이해집니다. 단일시장의 경우 시장이나 정책의 신호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쉽습니다.

이와 달리 시장이 연결되면 충격이 분산돼 가격 영향을 덜 받는다는 설명입니다. 가격 변동성 완화는 시장 및 기업의 장기적이고 효율적인 탈탄소 정책 운영을 도울 수 있습니다.

둘째, 배출권 유동성을 강화함으로써 기업의 탈탄소화 비용 절감과 시장의 회복탄력성 강화가 동시에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영국 기업의 EU CBAM 보고 면제가 가능합니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양측의 배출권거래제 연계로 영국 내 배출권 가격이 상승합니다. 이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배출권 수요 기업의 부담이 증가합니다. 발전사의 비용 부담이 증가하며 소비자들의 전력 비용 부담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 2019년 제2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핀란드·EU 집행위원회·스위스 정부 관계자가 스위스와 EU 배출권거래제 연계를 확정 발표한 모습. ©EP

“스위스 ETS 연계 7년 걸려…차이점 해결해야” ⏰

한편, 보고서는 영국 배출권거래제가 EU와 유사하기 때문에 수월하게 연계가 가능하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그러나 연계 작업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옵니다. 앞서 EU 비회원국인 스위스는 2020년 EU 배출권거래제와 연계를 마무리하기까지 무려 7년이 걸렸습니다. 영국의 배출권거래제 규모는 스위스의 25배에 달합니다.

영국과 EU의 배출권거래제 간의 차이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선 배출권거래제 적용 범위가 다릅니다. 현재 EU 배출권거래제제는 산업·전력·역내 항공·해운 등에 적용됩니다. 영국은 산업·전력·국내 항공에만 적용됩니다. 해운 부문은 2026년부터 적용될 계획입니다.

경제적 이유 또한 배출권거래제 연계에서 해결해야 할 주요 걸림돌입니다.

우선 EU에는 ‘시장안정준비금’이 있지만 영국에는 없습니다. 가격 안정화에 사용할 수 있는 기금을 뜻합니다.배출권거래제 연계 시 가격 안정화가 필요할 경우 어떤 기금을 어떻게 사용할지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英 적극 추진 나설 듯…FT “EU 생각도 같을까?” 🤔

배출권거래제 연계와 관련해 영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직 나온 바 없습니다.

노동당 정부가 EU 연계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단 점에서 업계의 기대는 높은 상황입니다.

지난 6월 노동당 고위 인사가 총선 승리 시 EU와의 탄소규제 재조정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보도에는 영국 산업계 한 대표가 노동당 유력 장관 후보들로부터 집권 시 ETS 및 CBAM의 EU 연계를 추진하겠다는 확약을 이미 받았다는 전언도 담겼습니다.

당시 노동당의 산업통상부 장관 후보였던 조나단 레이놀즈 하원의원(스탤브리지·하이드)도 많은 영국 기업이 EU CBAM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지난달 총선 승리 이후 영국 산업통상부 장관에 임명된 상황입니다.

영국 정부의 의지는 강력합니다. 그런 FT는 EU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EU에게 영국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수출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영국과 EU 간의 배출권거래제 연계 논의는 다른 국가들에게 중요한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CBAM 도입으로 향후 여러 국가와 탄소가격을 둘러싼 협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EU가 CBAM 대응책으로 각국의 배출권거래제 도입·개편을 장려하고 있단 점도 관련됩니다. 지난달 피유시 고얄 인도 통상산업부 장관은 EU로부터 CBAM 비용 부담 대신 인도 자체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제안받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단, 이 경우 CBAM 적용을 면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에 따라 각국의 이목이 영국과 EU 간 협상 과정에 쏠릴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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