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2030년 재생수소 목표가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담긴 유럽회계감사원(ECA)의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EU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해 2030년까지 재생수소 1,000만 톤을 생산하고, 1,000만 톤을 역외에서 수입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해 유럽 전역을 연결하는 수소 네트워크 건설도 추진 중입니다. 러시아산 화석연료로부터의 에너지 독립, 2050년까지 기후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가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현 단계로는 2030년 재생수소 목표 달성이 어렵단 것이 ECA의 말입니다.
17일 감사를 진행한 스테프 블록 ECA 위원은 “EU의 재생수소에 대한 산업 정책이 현실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꼬집었습니다.
기관은 2030년 재생수소 각각 1,000만 톤 생산·수입 목표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목표가 아닌 정치적 의지에 의해 설정된 점을 지적했습니다.
독일 제외 EU 회원국별 수소 생산 목표‧이행방안 부족 🤔
ECA가 재생수소의 필요성을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기관은 철강이나 석유화학, 비료 같이 에너지집약적인 산업의 탈탄소화를 위해선 수소가 매우 중요하단 점을 인정했습니다.
또 EU 집행위원회가 재생수소 생산과 투자에 필요한 법적 조치를 단기간에 만든 공로를 인정했습니다. 재생수소 시장 활성화를 위해 출범한 유럽수소은행(EHB)이 대표적입니다. 수소 시장 창출에 필요한 확실성을 제공했단 것이 ECA의 말입니다.
문제는 이행에 있습니다.
EU의 목표를 충족하기 위해 경제 탈탄소화 계획에 수소 수입 목표를 설정한 회원국은 독일이 유일했습니다. 최근 독일은 EU의 지원을 받아 수소 운송을 위한 파이프라인 건설에 나섰습니다. 길이만 9,700㎞에 달합니다. 지구 반지름의 약 1.5배에 이릅니다.
반면, 다른 회원국들은 국가 전략 차원에서 수소 생산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U 공통의 목표만 있을 뿐, 회원국별 목표나 이행방안이 부족하단 것이 기관의 지적입니다.
생산과 별개로 2030년까지 1,000톤 규모의 재생수소를 어디서 어떻게 수입할 것인지에 대한 전반적인 전략도 부재하단 점이 공통적으로 지적됐습니다.
“2024년 전해조 6GW? 2023년 324㎿ 그쳐” 🔔
재생수소 생산과 소비 역시 아직 기대에 못 미친다는 점도 지적됐습니다.
EU는 유럽청정수소연합을 통해 2024년까지 6GW, 2030년까지 40GW(기가와트) 규모의 전해조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내놓습니다. 기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수소 운송로로 전환할 수 있도록 용도 변경도 추진한단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러나 유럽수소협회에 의하면, 2023년 EU 내 전해조 설치 규모는 324㎿(메가와트)에 그칩니다.
같은기간 재생수소 소비량 역시 11만 톤에 그쳤습니다. EU가 제시한 목표치에 크게 못 미치는 것입니다.
ECA 역시 “2022년 수소는 유럽 전체 에너지소비량의 2% 미만을 차지했다”며 “이중 대다수는 정유산업에서 사용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재생수소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곳이 독일‧프랑스‧스페인‧네덜란드 등 일부 회원국에 집중된 점도 문제입니다.
EU는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남유럽에서 그린수소를 생산해 유럽 전역으로 옮기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ECA는 “(재생수소) 생산 잠재력이 높은 국가에서 산업적 수요가 높은 국가로 그린수소를 운송할 수 있단 보장이 어디에도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자금 부족 문제도 언급됐습니다. ECA는 향후 7년간(2021~2027년) 수소 프로젝트에 EU가 투자하기로 한 자금이 188억 유로(약 28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기관은 “이 자금이 여러 프로젝트에 분산돼 있다”며 “어떤 프로젝트가 가장 적합한지 알기 어렵다”고 꼬집었습니다.
재생수소 정의 두고 회원국 갈등…수소 투자 연기 ↑ 💸
재생수소 정의를 두고 27개 EU 회원국 간의 의견이 일치하지 못한 점도 지적됐습니다.
독일 등 7개국은 풍력·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로 만든 그린수소만 재생수소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와 달리 프랑스 등 9개국은 원자력발전으로 만든 수소 역시 재생수소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EU 집행위가 나서며 일단락됩니다. EU의 재생수소는 크게 ①그린수소 ②저탄소수소로 구분됩니다.
여기서 저탄소수소는 에너지 생산의 탄소집약도가 일정 수준 이하인 전력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덕분에 원자력으로 만든 수소 역시 재생수소로 인정받을 여지가 생겼습니다. EU 집행위는 저탄소수소의 정의를 올해 안으로 발표한단 계획입니다.
ECA는 “재생수소를 정의하는 규칙을 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여러 투자 결정이 연기됐다”고 꼬집었습니다.
EU 집행위, 유럽서 친환경수소 254개 프로젝트 진행 🌍
재생수소 생산과 소비 그리고 이행방안 등 전반에서 문제가 있단 것이 ECA의 결론입니다.
이에 기관은 EU 집행위에 수소 전략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①재생수소 생산‧소비 시 보조금 지급 방법 ②공공재원서 투자 우선순위 설정 ③재생수소 우선 투입 산업 및 가격 결정 등입니다.
특히, 재생수소 밸류체인(가치사슬) 전반에서 어느 부분에 집중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ECA는 밝혔습니다. 우선순위에 이에 따라 재생수소가 먼저 투입되는 산업군 역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EU 집행위는 “(2030년 재생수소) 목표에 대한 ECA의 비판적 평가를 주목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유럽 전체에서 친환경수소 프로젝트 254개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유럽 내 재생수소와 저탄소수소 배치‧도입을 가속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이번 감사 보고서 발표 이틀전(15일) EU 집행위는 이탈리아와 핀란드의 그린수소 프로젝트에 각각 4억 유로(약 6,025억원)와 2억 유로(약 3,010억원) 규모의 지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단, 최근 폴란드가 EU의 수소 자금 지원 계획에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원금 상당수가 남유럽이나 특정 국가에 몰리고 있단 것이 폴란드 측의 주장입니다.
한편, 지난 5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미국 블룸버그통신 역시 유럽의 청정수소 투자가 장애물을 마주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기술 발전 속도 저하 ▲보조금 연기 ▲비용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두 매체는 진단했습니다.
올해 초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향후 5년간 그린수소 생산 전망을 하향 조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