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지속가능한 공급망 실사지침(CSDDD)’ 등 유럽연합(EU)의 주요 환경 규제 상당수가 역내 최종 문턱을 넘었습니다. EU 차원의 모든 입법 절차가 마무리된 것입니다.
3일 그리니엄이 확인한 결과, EU 이사회 문턱을 넘은 기후통상 관련 법안만 5건입니다.
①기업 지속가능한 공급망 실사지침(CSDDD) ②에코디자인 규정안(ESPR) ③소비자 수리권 보장 지침 ④메탄 배출 추적 및 감축 규정 ⑤탄소중립산업법(NZIA) 등입니다.
이들 법은 지난달 24일부터 30일(이하 현지시각)까지, 일주일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이사회 27개국 장관급 회의에서 모두 가결됐습니다.
5개 법안 모두 EU 관보 게재 후 20일 내로 발효됩니다. 당장 리튬·마그네슘 등 핵심원자재의 제3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핵심원자재법(CRMA)은 지난달 23일 발효됐습니다.
이 가운데 CSDDD·ESPR·수리 지침 등 3개 법안은 한국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1️⃣ 공급망실사법|“대기업 외 공급망 내 중소기업도 실사 간접적 영향”
⚖️ 입법 단계: EU 집행위, 유럽의회, EU 이사회(5.24) 모두 통과. 2년 이내 자국법 전환
🔻 핵심: 공급망 내 환경·인권 문제 식별, 예방·완화·제거
🔻 적용 대상: 한국 등 역외 기업 EU 내 순매출액 4억 5,000만 유로 초과, 직원수 무관
🔻 과징금 여부: 연매출 5% 이상 과징금 부과 (최소 기준)
‘기업 지속가능한 공급망 실사지침(CSDDD)’은 EU의 여러 규제 중에서도 한국 기업에게 미칠 영향이 가장 큰 법입니다.
CSDDD는 기업 공급망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경과 인권 문제를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업이 공급망과 협력사에게 실사를 진행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컨대 협력사 내에서 강제노동이나 불법 삼림벌채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업이 조처를 해야 한단 것. 관련 내용은 모두 투명하고 정기적으로 공개돼야 합니다.
이에 국내에서는 ‘공급망실사법’으로 불립니다.
27개 EU 회원국은 2년 안에 CSDDD를 가이드라인 삼아 자국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기업 규모에 따라 공급망 실사 의무는 2027년부터 2029년까지 순차적으로 시행됩니다.
법 위반 시에는 연매출액의 최소 5% 이상에 해당하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이는 최소한의 지침입니다. 달리 말하면 일부 회원국에서는 과징금 상한이 더 높게 책정된단 뜻입니다.
EU 역내 기업은 직원수 1,000명, 세계 순매출액이 4억 5,000만 유로(약 6,600억원) 이상부터 적용 대상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역외 기업은 EU 내 순매출액이 4억 5,000만 유로를 초과하면 해당됩니다. 역외 기업에는 직원수 기준이 없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 CSDDD에 영향을 받을 기업 목록을 작성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달 9일 열린 ‘EU CSDDD 대응 설명회’에 참석한 정인교 산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대기업 외에 공급망 내에 중소기업도 실사의 간접적 영향권에 포함될 수 있다”며 “실사 의무는 역내외 모든 기업에 무차별하게 적용된다”고 피력했습니다.
CSDDD 적용 대상 기업은 경영 전반에 걸쳐 실사 계획을 새롭게 수립해야 합니다. 공급망 내 인권·환경 관련 실제적·잠재적 부정 영향 요인을 평가해야 하고, 위험도 순에 따라 예방·완화·제거 조처를 이행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고충처리절차도 구축해야 합니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는 그리니엄에 “(CSDDD 대응의 핵심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지 변호사는 “(공급망 전반에 걸쳐) 인권과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중요한 우선순위를 살펴봐야 한다”며 “우선순위를 어떤 식으로 관리할 것인지 공개하고 담당자를 정해놓는 등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어 “(기업 입장에서) 재무나 사업적으로 덜 중요한 문제가 인권이나 환경에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미친다면 그걸 우선적으로 잡아줘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2️⃣ 에코디자인 규정안|디지털제품여권 없이 EU 역내 제품 판매 금지
⚖️ 입법 단계: EU 집행위, 유럽의회, EU 이사회(5.27) 모두 통과. 2년 이내 자국법 전환
🔻 핵심: EU 역내 판매 제품에 지속가능성 정보 추가 후 공개
🔻 적용 대상: 한국 수출 기업 적용
🔻 과징금 여부: 회원국별로 상이
역내 판매되는 제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안(ESPR)’ 역시 EU 최종 문턱을 넘었습니다. ESPR은 2009년부터 시행된 기존 에코디자인 지침을 대체한 것입니다.
ESPR 도입 시 EU 역내에 판매되는 모든 제품에는 ▲내구성 ▲재사용·재활용 가능성 ▲수리용이성 ▲환경발자국 등의 정보가 추가돼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정보는 대중에게 공개돼야 합니다. ESPR의 핵심은 투명성 확보를 위해 ‘디지털제품여권(DPP)’을 도입한단 것입니다.
제품 전생애주기 정보를 디지털화하여 제품에 부착하는 것입니다. 제품별로 여권과 유사한 번호를 부여받습니다. 디지털제품여권 없이는 제품을 EU 역내 시장에서 판매할 수 없단 내용이 담긴 만큼 대비가 필요합니다.
나아가 소비자들이 제품별 지속가능성 정보를 검색하고 비교할 수 있도록 공공 홈페이지 만들고 관리하도록 한단 내용도 담겼습니다.
또 미판매 의류(직물) 폐기를 금지하는 조항도 ESPR 최종안에 포함됐습니다. 이 조항은 패션업계를 겨냥한 조항입니다. 법안 발효 후 중견기업은 6년간 면제됩니다. 중소기업은 법안 적용에서 제외됩니다.
법안 발효 후 27개 EU 회원국은 규정안 위반에 대한 제재 규정을 마련해야 합니다. 회원국별로 과징금 수위가 다를 수 있으므로,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단 뜻입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 3월 법무법인 세종은 “이미 유럽 시장에 진출했거나 향후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로서는 초기 제품 디자인 단계부터 ESPR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무엇보다 ESPR 규정안 우선 적용 품목으로 명시된 사업자는 하위 규정의 제정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법인은 덧붙였습니다. ESPR 우선 적용 품목은 ▲섬유 ▲가구 ▲타이어 ▲철 ▲플라스틱 ▲알루미늄 등입니다. 철·플라스틱·알루미늄 등은 가전제품 원료이기 때문에 우선 적용 품목에 포함습니다.
3️⃣ 소비자 수리권 보장 지침|LG전자, 삼성전자 등 가전제품 수출 기업 영향
⚖️ 입법 단계: EU 집행위, 유럽의회, EU 이사회(5.30) 모두 통과. 2년 이내 자국법 전환.
🔻 핵심: 소비자 수리권 보장 위해 제품 설계 변경, 수리용이성 정보 모두 공개
🔻 적용 대상: 한국 수출 기업 적용
🔻 과징금 여부: 회원국별로 상이
EU 이사회 회의 마지막날(30일) 소비자 수리권 보장을 골자로 한 ‘제품 수리 촉진 공동 규칙에 관한 지침(이하 수리 지침)’도 통과됐습니다.
각 회원국은 법안 발효 후 24개월 이내에 자국법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수리 지침은 소비자가 제품을 수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EU 역내 폐기물 감소를 목표로 합니다. 제품 수리 시장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도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해선 기업들은 제품 수리를 용이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제품 수리를 위한 부품과 수리 도구 역시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해야 합니다.
수리를 어렵게 만드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사용 등은 금지됩니다. 소비자가 교체가 아닌 수리를 선택할 시 제품 보증기간은 1년간 추가됩니다. 나아가 제품 수리와 가격 등 역내 모든 수리 정보가 담긴 공공 홈페이지도 운영됩니다.
EU 이사회는 “특정 제품에 대해 새로운 수리 가능성 요구사항을 도입할 때마다 제품 목록이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공개된 제품 목록에는 ▲세탁기 ▲건조기 ▲진공청소기 ▲스마트폰 등이 포함됐습니다.
EU로 가전제품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 대다수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LG전자와 삼성전자가 대표적입니다. LG전자의 경우 지난해 12조 1,293억 원으로 역대 최대 유럽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삼성전자 역시 23조 9,342억 원 규모의 매출을 보였습니다.
4️⃣ 메탄 배출 규정|대유럽 화석연료 수출 기업 영향
⚖️ 입법 단계: EU 집행위, 유럽의회, EU 이사회(5.27) 모두 통과. 관보 게재 후 20일 이내 발효
🔻 핵심: EU 기준 넘은 화석연료에 과징금 부과
EU 역내에 수입되는 화석연료가 일정 수준의 메탄을 배출하면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이르면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됩니다.
한국 기업에게 미칠 영향은 낮은 것으로 보입니다. 로이터통신은 이 제도가 미국과 알제리 등 주요 천연가스 기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허나,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연구센터(CSIS)는 EU의 규제가 추후 다른 국가들의 메탄 감축을 촉진할 잠재성이 클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CSIS는 EU가 메탄 감축을 위해 주요 천연가스 생산업체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는 단계에 있단 점을 언급했습니다. 한국과 일본 천연가스 업체가 거론됐습니다.
👉 EU, 메탄 규제 시 세계 메탄배출량 ‘3분의 1가량’ 감축 전망
5️⃣ 탄소중립산업법|산자부 “역외 기업 차별요소 없을 것으로 판단”
⚖️ 입법 단계: EU 집행위, 유럽의회, EU 이사회(5.27) 모두 통과. 관보 게재 후 20일 이내 발효
🔻 핵심: EU 역내 녹색기술 자립 및 탄소중립 산업 육성
한편, 역내 녹색기술 자립 가속화를 목표로 하는 ‘탄소중립산업법(NZIA)’ 역시 EU 이사회를 통과했습니다.
탄소중립 기술과 관련된 EU 역내 산업 제조 역량을 2030년까지 4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세계 청정기술 시장에서 EU 기업의 점유율을 15%까지 높이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산자부는 NZIA가 “역외 기업 차별요소는 없을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습니다.
NZIA가 태양광이나 풍력 등 전략적 탄소중립 기술에 대한 허가 절차 간소화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2030년 세계 청정기술서 EU 점유율 15% 목표”
6️⃣ 핵심원자재법|5월 23일 발효…향후 이행계획·정책 따라 규제 우려도
⚖️ 입법 단계: EU 집행위, 유럽의회, EU 이사회 모두 통과. 5월 23일 발효
🔻 핵심: 리튬·마그네슘 등 핵심원자재 제3국 의존도 감소
지난달 23일 발효된 핵심원자재법(CRMA) 역시 당장은 국내에 미칠 영향은 낮을 것으로 보입니다.
CRMA는 2030년까지 EU 기업은 모든 가공 단계에서 역내 핵심원자재 소비량의 65% 이상을 EU 외 특정국에서 조달해선 안 된단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공정별로 채굴은 최소 10%, 가공은 40%, 재활용률은 15%가 EU 역내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또 EU 내 역내외 채굴 관련 신규 사업은 27개월 이내, 가공과 재활용 관련 사업 역시 15개월 이내로 허가가 단축됩니다.
EU는 탄소중립 관련 산업에 필수적인 핵심원자재는 총 34가지를 지정했습니다. 이 가운데 리튬 등 17가지는 전략원자재로 분류해 공급망 위험 평가를 일정 주기마다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NIZA와 CRMA 모두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법안입니다. 녹색기술과 핵심광물에 있어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국자동차연구원은 “향후 법에 근거한 구체적인 이행계획이나 정책이 수립되면 실질적인 규제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배터리 등 국내 전기자동차 산업 내 원자재의 가공과 정·제련 공정은 중국 의존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이후 CRMA에 근거한 세부 제도나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 영향을 받을 우려가 나옵니다.
이에 연구원은 향후 밸류체인(가치사슬) 내 투입되는 원자재의 수입 지역 등을 사전에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유럽의회 선거 D-7, 극우정당 약진…EU 기후대응 입법 영향은? 🤔
한편, 오는 6일부터 9일까지 나흘간 입법기관인 유럽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제10대 유럽의회 선거가 열립니다. 27개국 유권자 3억 7,000만 명이 투표로 의원 720명을 선출합니다.
선거 결과에 따라,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연임도 판가름날 전망입니다. 전체 720개 의석 중 절반 이상의 지지를 확보해야 합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이번 선거에 EU 회원국은 물론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극우 또는 강경우파의 약진 등 선거 결과에 따라 유럽의회 정치 지형이 재편되기 때문입니다.
당장 유럽의회 선거에 따라 ‘브뤼셀 효과(Brussels effect)’의 향방도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브뤼셀 효과란 EU가 소비자 보호와 환경 보호 등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규범을 만들면 다른 국가와 기업이 자발적으로 이를 따르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중도 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그룹(EPP)과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진보동맹(S&D) 모두 무역협정을 통해 기후대응 확대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의회 교섭단체인 극우 성향의 ‘정체성과 민주주의(ID)’는 기후 관련 규범 확대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극우 정당 대다수는 유럽 내 기후대응 정책이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불러왔단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트랙터 시위가 대표적입니다.
국방·안보,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문제, 경제침체 등 각 사안별로 정당이 취한 입장 역시 다릅니다.
이에 대해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는 “유럽 정치 우경화로 인해 ‘브뤼셀 효과’를 통한 EU의 진보적인 정책 확대는 어려워질 전망이다”라면서 “유럽 내 보수화 또는 우경화가 유럽의회 내 기후대응 법안들의 입법 수준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반대되는 시각도 있습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임태형 브뤼셀 무역관장은 최근 한국경제 기고문을 통해 “(EU는) 그린딜 정책을 통해서 주도권을 유지하려고 한다”며 “미국과 중국의 경쟁 속에서 앞으로 EU가 탄소중립을 위한 규범 제정자 역할을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유럽의회가 보수화 성향으로 우선순위가 바뀔지언정, EU 내 기후대응 정책이 바뀌지 않는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그러면서 임 관장은 EU에서 만드는 규정을 모니터링하고 대비하는 것을 멈춰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