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8년까지의 국내 발전설비 계획을 담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 실무안이 공개됐습니다.
차세대 원전인 소형모듈원전(SMR)도 전기본 역사상 처음으로 포함됐습니다. 대형 원자력발전소 3기도 2038년까지 추가로 필요하다고 권고했습니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역시 2038년까지 119.5GW(기가와트)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31일 11차 전기본 총괄위원회는 서울 영등포구 한국경제인협회(FKI)타워 콘퍼런스센터에서 11차 전기본 실무안을 발표했습니다.
총괄위는 “(11차 전기본은) 무탄소전원을 우선했다”며 “2038년 발전량 중 무탄소에너지 비중이 70%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공개된 실무안은 관계부처 협의와 공청회, 국회 상임위원회 보고 등을 순차적으로 거쳐야 합니다. 이후 전력정책심의회의를 통해 최종 확정됩니다.
“韓 전력수요, 2023년 98.3GW → 2038년 129.3GW 전망” ⚡
전기본은 향후 15년간의 국가 전력수급의 기본방향과 장기 전망을 담는 계획입니다.
2년 주기로 수립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11차 전기본 초안은 당초 지난해 말 공개됐어야 했으나, 초안 마련에 난항을 겪으며 발표가 계속 미뤄졌습니다.
이번 전기본에 의하면, 2038년 우리나라 최대 전력수요는 129.3GW로 전망됩니다.
지난해 최대수요(98.3GW)보다 131.5%(30.6GW) 늘어난 것입니다. 경제성장률·기후변화·인구 전망을 기반으로 한 모형수요 전망치에 추가수요를 합산한 후 에너지 절약분을 차감해 산출됐습니다.
총괄위는 2030년까지는 현재 건설 중인 원전 등 기존 계획에 포함된 설비로 전력수요를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그러나 2031년부터는 설비가 전력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반도체 클러스터(산업단지) 조성, 데이터센터 등으로 산업계 전력수요가 큰 폭으로 늘어난단 것이 총괄위의 설명입니다.
특히, 인공지능(AI) 수요 증가의 영향으로 국내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의 2030년 전력수요는 지난해 수요의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 원자력|대형 원전·SMR 1기 2038년까지 건설 추진, 기존 원전 수명 연장
그 결과, 총괄위는 2038년까지 10.6GW 규모의 추가 설비가 필요하단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를 충족하고자 우선 4.4GW를 대형 원전에 할당했습니다.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포함된 것은 지난 2015년 제7차 전기본 이후 약 9년만입니다. 총괄위는 발전량이 1기당 1.4GW인 원전 ‘APR1400’을 건설한다고 가정하면 최대 3기 건설이 가능한 물량이라고 밝혔습니다.
총괄위는 구체적으로 원전 몇 기를 건설해야 하는지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건설 부지 확보와 경제성 등도 고려돼야 한단 것이 총괄위의 말입니다. 이에 총괄위는 “정부가 사업자와의 협의를 통해 최적안을 도출할 것을 권고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총괄위의 말을 종합하면 2038년까지 대형 원전 3기 추가를 확정한 것이나 다름 없단 평가가 나옵니다. 보통 짝수로 짓는 원전을 홀수인 3기 짓는 것을 권고한 이유에 대해선 주민 수용성 등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총괄위는 밝혔습니다.
대형 원전의 경우 대지 확보부터 시작해 준공까지 약 167개월(13년 11개월)이 소요됩니다. 전기본 실무안대로 2037년까지 4.4GW 규모의 전력을 공급하려면 올해부터 바로 대지 확보에 착수해야 합니다.
현재 운영 중인 원전도 수명을 10년씩 연장한단 내용이 담겼습니다. 총괄위는 지난 국회에서 폐기된 고준위방폐물특별법(고준위법)이 새롭게 시작한 22대 국회에서 신속히 통과돼야 한단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번 실무안에는 사상 처음으로 SMR이 포함됐습니다.
SMR은 대형 원전 100분의 1 크기 이하로 축소한 원자로를 말합니다. 총괄위는 추가 설비 중 원전 할당량(4.4GW)을 제외한 나머지(6.2GW) 중 0.7GW는 SMR로 충당할 계획입니다.
SMR은 아직 개발 중인 단계입니다. 그럼에도 총괄위는 SMR 상용화 실증을 위해 2034~2035년 SMR 건설을 마치고 운영을 시작하겠다고 시점을 못 박았습니다. 해당 SMR은 한국수력원자력이 개발 중인 ‘혁신형 SMR(i-SMR)’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2028년 표준설계인가를 받고, 2031년 실제 건설을 위한 건설 허가를 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2034년 하반기 첫 모듈을 설치한 후 순차적으로 반영한단 구상입니다. SMR 1기는 통상 4개 모듈로 구성됩니다.
🏭 화력발전|노후석탄발전, 무탄소전원 전환…“총용량 늘지 않도록 권고”
2037~2038년 설계수명 30년이 도래한 석탄화력발전소 12기는 양수발전·수소발전 등 무탄소전원으로 전환하는 내용이 계획에 반영됐습니다.
불가피하게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등으로 전환하더라도 수소혼소 전환 조건부 LNG로 제한해 화력발전의 총용량이 늘어나지 않도록 권고됐습니다.
이밖에도 추가로 필요한 설비 중 2.5GW는 2032년까지 LNG를 활용한 열병합발전으로 충당한단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외 나머지는 차기 12차 전기본 등에서 결정하라고 총괄위는 덧붙였습니다.
⛅ 재생에너지|2030년 72GW → 2038년 119.5GW 확대
앞서 10차 전기본은 2030년 태양광·풍력 보급 전망을 65.8GW로 제시했습니다. 11차 전기본은 2030년 보급 목표를 72GW로 재조정됐습니다.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합의된 재생에너지 3배 확대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지가 반영됐단 것이 정부의 설명입니다.
나아가 2038년까지는 태양광과 풍력발전 설비 용량을 115.5GW까지 늘립니다. 수력발전과 바이오발전 등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전체 규모는 119.5GW까지 보급하겠단 목표입니다.
현재 계통여건과 추진환경을 고려할 경우 2030년 보급 가능한 재생에너지 규모는 61.1GW에 불과하단 것이 총괄위의 말입니다.
이에 정부는 ▲산업단지 내 태양광 활성화 ▲에너지저장장치(ESS) 조기보강 ▲이격거리 규제개선 등의 정책적 수단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내 기후환경단체, 11차 전기본 실무안 “기후대응 외면” 🚨
그러나 11차 전기본 실무안 공개 직후 국내 주요 기후환경단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향후 10년이 기후대응을 위한 골든타임임에도 재생에너지 확대가 아닌 SMR 등 불확실한 기술에 너무 의존하고 있단 것이 단체들의 지적입니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을 보면 2030년 발전원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21.6%로 제시됐습니다. 10차 전기본과 비교해 발전량 자체는 늘었으나 비중은 그대로입니다.
지난해 4월 정부는 제1차 탄소중립기본계획 발표 당시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을 ‘21.6%+α’로 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허나, ‘α’라는 영역은 끝내 반영되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은 입장문을 통해 “한국은 2030년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재생에너지 비중 최하위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국과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비슷한 멕시코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33%까지 높이기로 했단 것이 단체의 지적입니다.
11차 전기본 실무안 내 2030년 태양광·풍력발전 설비 보급 목표 72GW도 지적됐습니다. 단체는 “2030년 72GW는 어떤 연구기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도 부합하지 않는 적은 수치”라고 꼬집었습니다.

수소혼소를 전제로 한 LNG발전 전환 역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수소혼소는 사용하던 가스터빈에 LNG와 수소를 함께 혼소하여 전력을 생산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후솔루션은 “수소·암모니아 혼소는 화석발전의 생명유지 수단으로 활용된다”고 꼬집었습니다.
양연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상용화되지 않은 수소혼소 발전이란 기술을 전력수요 대응 방안으로 내세웠다”며 “정부의 탄소중립 의지가 의심된다”고 비난했습니다.
앞서 지난 4월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 역시 혼소발전에 대해 “상용화가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플랜 1.5 역시 이같은 주장에 목소리를 보탰습니다. 작년 COP28에서 나온 ‘재생에너지 용량 3배 확대’ 목표와 관련해 정부가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하고 있단 것이 단체의 지적입니다.
정부는 태양광·풍력발전 설비용량을 2022년 23GW에서 2030년 72GW로 증가해 해당 목표를 달성한단 구상입니다.
이에 대해 플랜 1.5는 “재생에너지에는 수력·바이오매스 등이 모두 포함돼야 한다”며 “(이번 발표는) 태양광·풍력만을 기준으로 삼아 발생한 ‘착시 효과’이다”라고 꼬집었습니다.
한국에너지공단에 의하면, 2022년 기준 수력발전 등 국내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32.5GW 규모입니다. 이를 3배 확대하면 97.5GW여야 합니다.
녹색연합과 환경운동연합 역시 11차 전기본 실무안이 원자력에 매몰됐단 점을 비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