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 세계 벤처캐피털(VC)이 기후테크 산업에 411억 달러(약 56조원)를 투자했다고 시장조사기관 피치북이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각) 밝혔습니다. VC들의 투자 건수만 2,312건에 달합니다.
피치북은 “(기후테크) 스타트업이 기후위기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VC들이 확신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기후테크에 진심인 VC들은 누구일까요?
27일 그리니엄이 확인한 결과, 최근 피치북은 자체 데이터 집계를 통해 기후테크 산업 내에서 가장 투자가 활발한 VC 상위 10곳을 선정했습니다.
최근 4년간(2019~2024년 1분기) 투자 건수를 기준으로 집계됐습니다. 액셀러레이터나 엔젤투자자 등 VC가 아닌 투자자는 집계에서 제외됐습니다.
이들 10개 VC가 기후테크 산업에 투자한 건수만 총 729건입니다.
10곳 중 2곳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미국에 소재한 VC였습니다. 남은 2곳은 각각 영국과 노르웨이에 소재한 기업형벤처캐피털(CVC)였습니다.
트웰브·리빙카본 등 139개 기후테크 스타트업 투자한 美 클라이밋캐피털 💰
투자 건수 기준 1위를 차지한 VC는 미국 ‘클라이밋캐피털’이었습니다.
2015년 미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VC입니다. 주로 초기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투자를 전문으로 하며, 실질적인 투자는 2018년부터 시작했습니다.
회사 설립자 겸 투자자인 선딥 아후자는 “기후변화가 빈곤부터 지정학 갈등·교육·질병·식량 공급 등 수많은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기에 집중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받아들였다”고 소개합니다.
설립 후 투자 건수만 441개에 이릅니다.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 4년간 클라이밋캐피털은 총 139개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클라이밋캐피털은 올해 1분기에만 94개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투자를 단행해 가장 많은 거래를 성사한 VC 1위로 꼽힌 바 있습니다. 단, 아직 한국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한 적은 없습니다.
대표적인 투자 스타트업으로는 ▲지속가능 항공유(SAF) 생산 기업 ‘트웰브’ ▲탄소격리 효율성 높인 유전자변형 나무 개발한 ‘리빙카본’ ▲건물 냉난방 친환경 전환 선도 기업 ‘블록파워’ 등이 있습니다.
지난 16일 클라이밋캐피털은 ‘베드록메테리얼스’란 미국 스타트업에 900만 달러(약 123억원) 규모의 시드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미 스탠포드대 출신 동문들이 2023년 설립한 스타트업입니다. 나트륨이온배터리를 미 역내에서 저가로 제조하는 것을 목표로 소재 개발에 집중을 두고 있습니다.
“푸드테크 투자에 진심”…SOSV, 기후테크 스타트업 120곳 투자 💸
2위는 1995년 설립된 SOSV에게 돌아갔습니다. 이곳 역시 미국에 소재한 VC입니다. 클라이밋캐피털과 함께 기후테크 투자에 진심인 VC 중 한 곳으로 불립니다. 마찬가지로 초기 기후테크 스타트업을 전문으로 투자합니다.
설립 후 현재까지 투자 건수만 2,487건에 이릅니다. SOSV가 지난 4년간 투자한 기후테크 스타트업은 120곳에 이릅니다. 스타트업 1곳당 평균 투자액은 400만 달러(약 54억원)입니다.
션 오설리반 SOSV 파트너는 “(기후문제는) 더는 미래세대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기후테크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SOSV는 기후테크 산업 내에서도 푸드테크를 집중적으로 투자합니다. SOSV가 투자한 기업 중 4곳이 유니콘 기업입니다. 이중 3곳이 농식품 분야 스타트업입니다.
농식품 분야 유니콘 기업 3곳은 ▲정밀발효 기술로 대체유 생산하는 ‘퍼펙트데이’ ▲인공지능(AI) 기반 대체유 개발 스타트업 ‘낫코’ ▲배양육 생산 스타트업 ‘업사이드푸드’ 순입니다.
피치북 역시 SOSV를 “2018년 이후 기후테크와 애그테크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그리니엄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확인한 결과, SOSV가 현재까지 투자한 한국 스타트업은 총 3곳입니다.
이중 ‘세레스웨이브’란 애그테크 스타사전 시드투자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농업 기술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으로 현재 농산물 수확량 극대화를 위한 장비를 실험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SS·전기항공기 등 산업계 탈탄소화 전문 투자사 로워카본캐피털 🔋
3위는 로워카본캐피털에게 돌아갔습니다.
2018년 설립된 VC입니다. 앞서 살펴본 VC들과 마찬가지로 로워카본캐피털 또한 초기 기후테크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입니다.
설립 후 현재까지 158곳에 투자했습니다. 지난 4년간 기후테크 스타트업 투자 수만 93건에 이릅니다. 평균 투자액은 1,440만 달러(약 196억원)입니다. 단,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된 사례는 아직 없습니다.
로워카본캐피털은 주로 산업 부문 탈탄소화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직접리튬추출기술(DLE)을 보유한 ‘라일락솔루션’이 대표적입니다. 소금 호수에서 리튬만 흡착하는 기술을 보유했습니다.
또 미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분사한 ‘서브라임시스템’에도 투자한 바 있습니다. 2020년 설립된 스타트업입니다. 전기화학 공정을 사용해 저탄소 시멘트를 만드는 곳입니다.
이밖에도 ▲전기항공기 개발 스타트업 ‘하트에어로스페이스’ ▲에너지저장장치(ESS) 개발 기업 ‘안토라에너지’ ▲핵융합 개발 기업 ‘커먼웰스퓨전시스템스’ 등에 투자했습니다.
이와 별개로 로워카본캐피털은 탄소제거 기술개발에도 관심을 두고 스타트업이나 비영리 싱크탱크에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탄소제거 기술개발 촉진을 목표로 한 비영리 싱크탱크 ‘카본180’이 대표적입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는 파리협정 목표 달성을 위해선 대기 중에서 최대 1조 톤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제거돼야 할 것으로 추정합니다.
피치북 “거대 석유 기업, 기후테크 산업 내 전략적 투자 진행” 🤔
이어 지난 4년간 에너지임팩트파트너스가 기후테크 스타트업 80곳에 투자해 4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어 알루미니벤처스(64곳), MCJ콜렉티브(54곳), 프레루드벤처스(48곳), 콜라보레이티브펀드(46곳) 순이었습니다.
6곳 모두 미국에 기반한 VC입니다.
여기서는 2010년 설립된 콜라보레이티브펀드의 성장세가 두드러집니다. 벤처투자업계 거물 크레이그 샤피로가 설립한 VC입니다. ‘임파서블푸드’나 ‘비욘드미트’ 같은 대체육이나 AI 재활용 로봇 스타트업 ‘AMP 로보틱스’ 등에 투자한 바 있습니다.
한편, 9위와 10위는 영국 쉘벤처스(43곳)와 노르웨이 에퀴노르벤처스(42곳)에게 각각 돌아갔습니다.
두 기업 모두 에너지 대기업 로열더치쉘과 에퀴노르 산하 CVC입니다.
이에 대해 피치북은 “거대 석유 기업이 기후테크 산업에 전략적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준비가 돼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5대 석유 대기업(셰브론·쉘·브리티시페트롤리엄·토탈에너지·엑손모빌 등) 모두 기후테크 산업에 집중 투자할 준비를 하고 있단 것이 기관의 설명입니다.
기후테크 스타트업을 인수합병(M&A)이나 투자를 단행함으로써, 자사의 배출량 감축에 활용하겠단 분석이 깔려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4월 셰브론 산하 셰브론테크놀로지벤처스(CTV)는 5억 달러(약 6,9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출범했습니다. 청정에너지 중에서도 저탄소 에너지 기술 산업에 집중 투자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들 화석연료 업계의 기후테크 산업 투자를 놓고는 시선이 엇갈린 상황입니다. 화석연료 업계가 이익 보호를 위해 기후테크를 악용하려는 속셈이 아니냔 지적이 나오는 반면, 일각에서는 그럼에도 투자가 필요하단 입장입니다.
👉 화석연료 기업, 기후테크 기업 인수합병 두고 전문가 시선 엇갈린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