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주요 환경 규제 법안이 잇따라 유럽의회를 통과했습니다.
29일 그리니엄이 확인한 결과,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열린 마지막 본회의(4월 22일~25일)에서 통과된 기후환경 법안만 5건에 이릅니다.
5개 법안 모두 EU 이사회의 승인만 남겨둔 상황입니다.
①에코디자인 규정안(ESPR) ②소비자 수리권 보장 지침 ③기업 지속가능한 공급망 실사지침(CSDDD) ④포장 및 포장재 폐기물 규정 합의안(PPWR) ⑤넷제로산업법(NZIA) 등입니다.
유로뉴스 등 주요 현지매체들은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 상당수가 밀실 회담을 통해 잠정적으로 합의됐다고 전했습니다.
이중 EU 역내 탄소중립 산업 육성을 골자로 한 넷제로산업법을 제외한 다른 4개 법안 모두 한국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와 기업이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단 제언이 나옵니다.
1️⃣ 에코디자인 규정안|디지털제품여권 통해 역내 모든 제품 지속가능성 ↑
🔻 2022년 3월 | EU 집행위, 에코디자인 규정 개정안 발표
🔻 2023년 12월 | EU 집행위·EU 이사회·유럽의회 3자간 잠정 타결
🔻 2024년 4월 | 유럽의회 본회의 투표 통과
🔻 미정 | EU 이사회 승인 남아
지난 23일(이하 현지시각)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 투표 결과, ‘에코디자인 규정안(ESPR)’은 찬성 455표·반대 99표·기권 54표로 최종 승인됐습니다.
ESPR는 2022년 3월 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것입니다. ESPR이 도입될 시 EU 역내 판매되는 모든 제품에는 ▲내구성 ▲재사용·재활용 가능성 ▲수리용이성 ▲환경발자국 등의 정보가 추가돼 공개돼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투명성 확보를 위해 ‘디지털제품여권(DPP)’을 도입해야 한단 것입니다.
이는 상품의 생산부터 유통과 소비, 재활용 등 제품 전생애주기 정보를 디지털로 수집하여 제품에 부착하는 표식입니다. 제품별로 여권과 유사한 번호를 부여받습니다. 소비자는 제품에 인쇄된 QR코드나 바코드 등을 통해 지속가능성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ESPR은 향후 EU 이사회의 공식 승인과 관보 게재 절차를 걸쳐 발효될 예정입니다. 대상품목 선정과 세부규정 마련 나아가 디지털제품여권 형태와 포함될 정보 범위를 확정하는 일에만 최소 1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한국무역협회는 ESPR와 관련해 국내 기업에 끼칠 영향이 “매우 높다”고 내다본 바 있습니다.
2️⃣ 소비자 수리권 보장 지침|韓 업체 영향 불가피
🔻 2023년 4월 | EU 집행위, 수리 지침 제안
🔻 2024년 2월 | EU 집행위·EU 이사회·유럽의회 3자간 잠정 타결
🔻 2024년 4월 | 유럽의회 본회의 투표 통과
🔻 미정 | EU 이사회 승인 남아
같은날(23일) 본회의에서는 소비자 수리권 보장을 골자로 한 ‘제품 수리 촉진 공동 규칙에 관한 지침(이하 수리 지침)’이 통과됐습니다.
해당 지침은 표결에서 찬성 584표로 압도적 찬성표를 받았습니다. 반대와 기권은 각각 3표와 14표에 그쳤습니다.
수리 지침은 소비자에게 제품을 수리할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EU 역내 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동시에 제품 수리 시장 활성화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구체적으로 제품 수리를 위한 부품과 수리 도구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해야 합니다. 수리를 어렵게 만드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사용 등은 금지됩니다.
법 시행 시 삼성전자·LG전자 등 대유럽 수출이 많은 국내 업체들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3️⃣ 공급망실사법|기업에 환경·인권 보호 의무 부여…韓 기업 대다수 영향
🔻 2022년 2월 | EU 집행위, 공급망실사법 초안 발표
🔻 2023년 12월 | 5차 협상 끝에 EU 집행위·EU 이사회·유럽의회 3자간 잠정 타결
🔻 2024년 2월 | EU 이사회, 공급망실사법 합의안 통과 불발
🔻 2024년 3월 | 이후 수정안 EU 이사회 내 상주대표회의에서 제안 후 통과
🔻 2024년 3월 | 유럽의회 상임위 투표 통과
🔻 2024년 4월 | 유럽의회 본회의 투표 통과
🔻 미정 | EU 이사회 승인 남아 (5월 15일 표결 예정)
한국에서는 ‘공급망실사법’으로 불리는 ‘기업의 지속가능한 공급망 실사지침(CSDDD)’ 또한 유럽의회를 통과했습니다.
지난 24일 유럽의회 본회의 투표 결과, CSDDD는 찬성 374표·반대 235표·기권 19표로 가결됐습니다.
법안은 다음달 EU 장관급 이사회 승인을 거쳐 관보에 게재되면 효력을 발휘합니다. 이후 EU 27개 회원국은 2년 이내에 공급망 실사와 관련해 국내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CSDDD는 EU의 주요 환경 규제 중에서도 한국 기업에게 미칠 영향이 가장 클 것으로 보입니다. 법안은 세계 순매출액이 4억 5,000만 유로(약 6,635억원)를 초과하는 역외 기업, 즉 한국 기업들도 적용 대상입니다.
공급망 내 환경과 인권 문제 등을 예방해야 할뿐더러, 실사 내용은 모두 기업 홈페이지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합니다. 규정 위반 시에는 연매출액의 최소 5% 이상에 해당하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또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 등이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고충처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한국 기업 중에는 삼성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 등 거의 모든 대기업이 CSDDD를 적용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 공시 자료 등을 분석해 CSDDD에 적용받을 국내 기업 목록을 작성 중입니다.
실사 의무를 가진 대기업 외에도 해당 기업의 공급망에 포함된 국내 중소기업들 역시 CSDDD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단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EU 이사회 표결은 다음달 15일 예정돼 있습니다. 이르면 오는 7월 발효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4️⃣ 포장재 폐기물 규정안|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일회용 소스 포장 금지
🔻 2022년 11월 | EU 집행위, 포장 및 포장재 ‘지침 → 규정’ 강화 개정안 제안
🔻 2024년 3월 | EU 이사회, 유럽의회 개정안 잠정 합의
🔻 2024년 4월 | 유럽의회 본회의 투표 통과
🔻 미정 | EU 이사회 승인 남아
같은날(24일) ‘포장 및 포장재 폐기물 규정 합의안(PPWR)’ 역시 통과했습니다.
당초 난항을 겪을 것이란 예상에도 불구하고 해당 법안은 투표에서 찬성 476표·반대 129표·기권 24표로 가결됐습니다.
PPWR은 플라스틱 포장 폐기물을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구체적으로 EU 시민 1명당 발생하는 포장 폐기물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5%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감축목표는 2035년 10%, 2040년 15% 등 단계적으로 상향됩니다.
이를 위해 2030년부터 과일과 채소 포장 등에 사용되는 일회용 플라스틱이 금지됩니다. 케첩·설탕 등 일회용 개별 포장 역시 불가능합니다. 호텔 같은 숙박업소에서는 더는 일회용 세면용품을 제공해선 안 됩니다.
음료 제조업체들은 2030년부터 제품의 10%를 재사용 포장재에 담아 판매해야 합니다. 단, 와인과 우유 등 일부는 예외일뿐더러, 일정 조건 하에서는 포장재 재사용 의무를 최대 5년간 유예할 수 있습니다.
또 EU 회원국들은 2029년부터 빈병 보증금 환불제도를 활용해 페트병과 알루미늄캔을 최소 90% 이상 수거해야 합니다.
PPWR은 이제 EU 이사회의 승인만 남긴 상황입니다. 앞서 올해 3월 EU 이사회와 유럽의회는 PPWR에 잠정 합의한 만큼, EU 이사회 승인은 거의 기정사실로 여겨집니다.
이와 관련해 대한투자무역진흥공사(KOTRA)는 “유럽 내 K-식품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향후 정책 및 규정 동향을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습니다.
국내 기업이 만든 음료병이나 캔 등은 유럽과 규격이 달라 수거 및 재사용이 어려울 수 있단 것이 KOTRA의 지적입니다. 해당 법안에는 식품 포장재에 과불화화합물(PFAS) 같은 화학물질 사용을 금지해야 한단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법안에서 제시된 기준에 따라 재사용 용기 제작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기관은 조언했습니다.
5️⃣ 넷제로산업법|2030년까지 탄소중립 관련 역내 제조 역량 40% ↑
🔻 2023년 1월 |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넷제로산업법 추진 발표
🔻 2023년 3월 | EU 집행위, 넷제로산업법 초안 공개
🔻 2024년 2월 | EU 집행위·EU 이사회·유럽의회 3자간 잠정 타결
🔻 2024년 4월 | 유럽의회 본회의 투표 통과
🔻 미정 | EU 이사회 승인 남아
EU 역내 기후테크 산업 육성을 골자로 한 ‘넷제로산업법(NZIA)’이 지난 25일 유럽의회를 통과했습니다. 앞서 올해 2월 EU 집행위원회와 EU 이사회 그리고 유럽의회는 NZIA 통과를 위한 3자간 협상을 타결한 바 있습니다.
이날 유럽의회 투표 결과, NZIA는 찬성 361표·반대 121표·기권 45표로 가결됐습니다. EU 이사회의 최종 승인을 받으면 관보 게재를 거쳐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 발효·시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2023년 3월 EU 집행위가 발효한 NZIA는 탄소중립과 관련된 역내 산업 제조 역량을 2030년까지 40%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중에서도 ‘전략적 탄소중립 기술’을 지정해 관련 신규 사업의 승인을 6~9개월 안으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해당 목록에는 태양광, 배터리, CCS(탄소포집·저장), 원자력발전 관련 기술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관련해 보조금 지급 요건도 완화됩니다.
또 공공 조달 입찰 시에는 특정한 EU 역외 국가 제품이 50%를 넘어선 안 되며, 환경 기준 준수 여부도 따져야 합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달리 금전적 혜택은 없습니다. 단, 유럽 밖으로 시설을 이전하거나 엄격한 보조금 규제 탓에 유럽 투자를 꺼렸던 기업을 유인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EU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IBK기업은행 산하 경제연구소는 “향후 법안 세부내용 변화에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면서도 “EU 진출이 가능한 전략 분야를 선정해 연구개발(R&D) 지원 확대 및 유관기관을 통한 해외진출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언한 바 있습니다.
6월 유럽의회 선거 향방 EU 그린딜 향방 정해 ⚖️
이밖에도 환경대기질지침(AAQD) 개정안 통과, 에너지헌장조약 조약 탈퇴 등 여러 법안이 이번 유럽의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한편,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의회 내부에서는 EU의 대표 이니셔티브인 ‘그린딜(Green Deal)’의 방향성을 놓고 충돌하는 모양새입니다.
720명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는 2020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이후 처음 치러지는 만큼 세간의 관심이 높은 상태입니다.
그린딜은 EU가 파리협정을 준수하기 위해 마련한 입법 패키지입니다. 기후위기 완화와 생물다양성 복원 등을 골자로 여러 법안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선거에서 반(反) 기후·환경정책을 내세우는 극우 또는 우파정당의 의석수가 증가할 것이란 여론조사가 나온 바 있습니다. 여기에 농민들의 시위 확산 역시 한몫했단 평가가 나옵니다.
이사회 상반기 의장국인 벨기에는 자연복원법 표결에서 기권했을뿐더러, 총리가 직접 도입이 어렵단 뜻을 내비쳤습니다.
이와 관련해 벨기에 녹색당 공동대표 겸 유럽의회 의원인 필립 랩버트는 지난 23일 연설에서 “6월 선거에서 극우가 승리할 시 자연과 생물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한 협약이 폐기될 수 있다”며 “(극우정당이) 그린딜을 망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습니다.
반면, 우익 성향이 짙은 유럽보수개혁연합(ECR) 소속 비타 시드로(폴란드) 의원은 “그린딜로 인해 시민들에게 청구서를 지불할 수 없다”며 “(환경 및 기후대응을 위해) 유럽 안보나 산업을 희생시켜선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이번 선거에 따라 새로 꾸려질 EU 집행위 역시 경제안보와 녹색산업 정책을 강조하는 기존 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폰데어라이엔 현 EU 집행위원장이 연임 도전에 공식적으로 나선 상황입니다.
경쟁후보로는 유럽의회 내 좌파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이자 EU 일자리 및 사회권리 담당 집행위원인 니콜라스 슈미트(룩셈부르크 사회주의 노동자당)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 유로뉴스 모두 현 지지도 측면에서 폰데어라이엔의 재선 가능성이 대체적으로 크단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단, 극우세력을 경계한 목소리가 얼마나 표출되느냐에 따라 이번 선거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