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주의와 경제적 경쟁이 (기후대응을 방해하는) 또 다른 문제가 되고 있다.”
류전민(劉振民) 신임 중국 기후특사는 지난달 28일(이하 현지시각) ‘보아오 아시아 포럼(BFA)’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류 특사는 지난 1월, 셰전화 전(前) 기후특사의 후임으로 임명됐습니다.
보아오 아시아 포럼은 아시아 국가 간의 협력과 교류를 통한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창설된 비정부·비영리 지역경제 포럼입니다. 일명 ‘아시아의 다보스포럼’으로 불립니다. 포럼은 지난달 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간 중국 하이난성에서 개최됐습니다.
포럼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일본·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29개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류 특사는 이번 포럼에서 국가 간의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기후특사로서 대외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중국 신임 기후특사의 발언을 통해 중국 기후외교의 기조를 살펴봤습니다.
中 신임 기후특사 “보호주의, 탈탄소화 노력 방해해” 🇨🇳
이번 포럼은 ‘아시아와 세계: 공동의 도전, 공유된 책임’을 주제로 열렸습니다.
문제의 발언은 ‘기후변화 대응 가속화’를 주제로 지난달 28일 열린 패널 토론에서 나왔습니다.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추세가 기후대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류 대사는 경고했습니다. 이는 세계 각국이 중국 중심의 청정에너지 공급망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흐름을 지적한 것입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유럽연합(EU)의 넷제로산업법(NZIA)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미국은 IRA의 ‘해외우려기업(FEOC) 세부규정안’을 통해 중국을 직접적으로 견제하고 있습니다.
이에 류 특사는 “서방국들이 중국의 청정에너지 제품에서 디커플링할 경우 세계 재생에너지 비용이 20% 급등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청정에너지의 비용 증가로 채택이 둔화될 경우 기후대응을 방해할 수 있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따라서 기후대응에 있어 기술과 자금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국가 간의 효과적인 협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후’특사가 남중국해 평화 강조한 까닭은? 🤔
한편, 다음날(29일) 패널 토론에서 류 특사는 중국·필리핀 간 남중국해 갈등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그는 패널 토론에서 “지난 1년 간 남중국해에서 긴장이 고조된 것을 목격한 것은 유감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같은달 23일 중국 해경선과 필리핀 선박 간 충돌로 남중국해 갈등이 고조된 사태를 말한 것입니다.
류 특사는 “지난해 미국, 일본, 필리핀 간의 군사협력이 더욱 긴밀해졌다”며 “동남아시아에서 또 다른 갈등을 촉발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이어 “(동남아 국가는) 냉전 종식 이후 30년 동안 지역 평화를 소중히 여겨야 하며 남중국해에서 새로운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기후특사가 외교적 문제인 남중국해 평화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직접적인 답은 류 특사의 배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전직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급)으로 남중국해 문제를 담당한 이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국가 간 외교적 갈등이 기후협력을 방해할 수 있단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은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기후협력이 중단된 바 있습니다. 2022년 미국 낸시 펠로시 당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과 2023년 중국 정찰풍선 논란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또한 러시아와의 기후협력 중단으로 이어졌습니다.
기후특사에 외교관 출신 임명한 中…“기후대응 핵심은 지정학” 🗺️
류 특사의 인선(人選) 자체가 중국 기후외교의 기조 변화를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류 특사는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급)과 유엔 경제사회처(DESA) 사무차장으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1997년 교토의정서와 2015년 파리협정 등 기후협상에도 다수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 1월 중국 생태환경부는 셰전화 특사가 건강상 이유로 사임하면서 당시 전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급)이었던 류 특사를 후임으로 임명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류 특사가 외교부 출신이란 점입니다. 셰전화 전 특사가 국가환경보호국(現 생태환경부) 국장 출신으로 환경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한 것과 비교됩니다.
각 부처의 기후변화에 대한 시각도 다릅니다.
생태환경부는 기후변화를 독립적인 문제로 보는 반면, 외교부는 여러 외교적 사안 중 하나로 다룹니다.
미국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은 류 특사가 임명된 이유로 기후대응에 있어 지정학적 갈등 해소가 중요해지고 있단 점을 꼽았습니다. 미국 IRA와 EU의 NZIA에서 볼 수 있듯, 주요국의 기후정책은 경제·산업정책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여기에 올해는 전 세계 64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슈퍼 선거의 해’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각국에서는 중국 산업에 대한 견제 요구가 거셉니다.
이에 더디플로맷은 “중국 지도자들이 기후변화와 지정학이 점점 더 얽히는 시대에 기후정책과 외교정책을 더 잘 통합하기를 원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보호무역 강화에 비판 목소리도 “진짜 기후대응 위한 길은?” 📣
한편, 각국의 보호무역 정책이 기후대응을 방해할 수 있단 비판은 중국 바깥에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포럼에 참석한 호주 유명 사업가 앤드류 포레스트의 연설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호주 대표 철광산 기업 포테스큐메탈의 전(前) 최고경영자(CEO)입니다.
포레스트 전 CEO는 28일 연설에서 “지구상 대부분의 소비자가 (중국의 청정에너지 공급에) 불만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중국의 재생에너지 과잉 공급이 우리를 구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덧붙였습니다.
중국의 저렴한 청정에너지 산업이 세계 탈탄소화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지적입니다.
앞서 미국 뉴미디어 복스(VOX) 또한 미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중국 전기자동차를 견제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지난달 매체는 중국 BYD(비야디)의 초저가 전기차 모델 ‘시걸’ 출시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와 함께 “미국 정책은 값싼 중국 전기차에 너무 적대적”이라서 미국에서는 구입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치뤄질 대통령 선거 승리를 위해 역내 자동차 산업과 노동조합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미 에너지부는 최근 러스트벨트 표심을 고려해 전기차 연비 계산법을 완화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에 복스는 “바이든은 중국을 이기는 것과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것 중에 결정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