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패션의 도시, 프랑스 파리. 최근 파리에서 바이오소재 분야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이 한데 모인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지난 10일부터 12일(이하 현지시각)까지 사흘간 열린 ‘바이오패브리케이트 파리 서밋(이하 바이오 서밋)’의 이야기입니다. 바이오 서밋은 미국 바이오소재 컨설팅 기업 바이오패브리케이트(Biofabricate)가 주관했습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케링, 버섯가죽 스타트업 마이코웍스 등은 후원사로도 참여했습니다.
바이오 서밋은 2014년부터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서 개최됐습니다. 파리에서 개최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서밋에는 LVMH·샤넬 등 패션 대기업뿐만 아니라, 바이오소재 혁신가와 브랜드와 투자자 등이 한데 모여 새로운 바이오소재 혁신과 업계 내 지속가능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바이오 서밋에 어떤 바이오소재들이 등장했는지, 3가지 테마로 정리했습니다.
첫 번째 테마는 ‘식물성’입니다.
바이오소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아주 화려하고 인공적인 색상의 반짝이 소재가 이번 서밋에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영국 바이오소재 스타트업 스팍셀(Sparxell)이 식물성 셀룰로오스로 개발한 대체 반짝이 염료입니다.
반짝이 염료는 대개 플라스틱 또는 광물성 원료로 생산됩니다. 플라스틱도 지속가능하지 않을뿐더러 광물성 원료도 자원 고갈과 아동노동 문제로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이에 스팍셀이 주목한 것은 천연소재입니다. 스팍셀은 나비 날개와 공작 깃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나비 날개와 공작 깃털은 그 자체에는 색소가 없지만 나노 구조 덕분에 반사광을 이용해 색깔과 반짝임을 냅니다.
이 원리에 기반해 스팍셀은 목재 펄프 등의 원료에서 셀룰로오스 결정을 추출하고 특허기술을 통해 결정 구조를 제어합니다. 촘촘하게 쌓인 결정이 빛과 색상을 반사하는 필름을 형성해 반짝임을 냅니다. 해당 소재는 화장품 안료부터 포장지, 의류용 직물과 스팽글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바나나 사촌격 식물로 섬유를 만드는 스위스 패션스타트업 바나나텍스(Bananatex), 거미줄 원리를 응용해 농업폐기물로 대체 실크를 개발한 일본 바이오테크 기업 스파이버(Spiber) 등도 올해 바이오 서밋에 참가했습니다.
두 번째 테마는 ‘해조류’입니다.
해조류는 플라스틱·식품·화장품·비료 등 다양한 산업에서 지속가능한 원료로 각광받습니다. 이번 서밋에서도 여러 기업이 해조류를 원료로 한 대체소재를 선보였습니다.
미국 플로리다주 기반 순환소재 기업 소어스(Soarce)는 해조류 기반 대체가죽을 생산합니다.
해조류와 세라믹에서 추출한 나노 물질을 활용해 난연성이 높은 대체가죽 ‘시라믹(Searamic)’을 개발했습니다.
바이오소재 기업 뉴마(Pneuma)는 미세조류 기반의 옥시야(Oxya) 섬유를 개발했습니다. 뉴마는 이를 ‘살아 숨쉬는 섬유’라고 설명합니다. 섬유에 포함된 미세조류 세포는 여전히 활성 상태이며 이산화탄소(CO2)를 포집하기 때문입니다.
가로 세로 10㎝ 크기의 옥시야 직물 조각이 하루 2.4㎖의 CO2를 포집할 수 있습니다. 단, 현재는 제품의 가장 초기 단계인 최소기능단계(MVP)에 있습니다.
마지막 테마는 ‘균사체’입니다. 즉, 버섯 기반 소재입니다.
2015년 설립된 스큄(Sqim)은 균사체 기반 대체가죽 에페아(EPHEA)와 인테리어 소재 모구(MOGU)를 개발했습니다. 이 기업은 2021년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와 협력해 에페아를 사용한 코트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올해 바이오 서밋에서는 또 다른 명품 브랜드 케링으로부터 1,100만 유로(약 160억원)의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고 스큄은 발표했습니다.
서밋의 후원 기업으로 이름을 올린 마이코웍스도 프랑스의 고급가구 제조 기업 라인 로제트와 협업해 만든 쇼파를 선보였습니다.
쇼파 전체에 버섯기반 대체가죽 ‘레이시’가 사용됐습니다.
마이코웍스는 라인 로제트가 해당 쇼파를 대량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요. 생산에 필요한 가죽은 지난해 가동을 시작한 세계 최초의 상업화 규모 버섯공장에서 조달됩니다.
이외에도 박테리아를 활용해 지속가능한 바이오 염료를 만드는 컬러리픽스(Colorifix), 화석연료 기반 검정 염료를 대체하는 폐기물 기반 염료를 만드는 아워카본(OurCarbon) 등이 서밋에 참여했습니다.
이번 서밋은 바이오소재 업계의 어려운 상황에서 열렸단 점에서 더욱 의미 있습니다. 2023년 유독 바이오소재 스타트업의 악재가 연이었기 때문인데요.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7월 버섯가죽 사업 중단을 선언한 볼트스레드(Bolt Threads)입니다. 마이코웍스와 최초의 버섯가죽 의류 타이틀을 놓고 경쟁해왔지만 시간과 투자 자본 부족을 이유로 사업을 중단한 것. 현재는 실크 대체품에 매진 중입니다.
볼트스레드의 버섯가죽 사업 중단 직후인 작년 8월 미 바이오소재 기업 아미리스(Amyris)는 돌연 파산했습니다. 아미리스는 상어 간에서 추출하는 미용 성분인 스쿠알렌을 사탕수수 기반으로 대체하는데 성공하며 주목을 받은 기업입니다. 나스닥 상장 기업이었던만큼 아미리스의 파산 소식은 업계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서밋 주최사인 바이오패브리케이트를 설립한 수잔 리 디자이너는 “10년전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일정을 약속하며 많은 관계를 망쳐버렸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럼에도 “과대광고와 조정의 물결을 겪었지만 기회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강조했는데요.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스대 출신 디자이너인 그는 바이오소재 개척자로 유명합니다.
기조연설에 참여한 매튜 스컬린 마이코웍스 최고경영자(CEO) 또한 “2023년 이 분야는 과대광고에서 현실로 성숙해졌다”며 업계의 변화를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