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싱글맨>을 만든 감독이자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로 알려진 톰 포드. 1990년대 투자 악화와 경영난에 시달리던 명품 브랜드 구찌를 되살린 디자이너로 잘 알려진 인물인데요. 일찍이 패션업계도 지속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해온 패션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2020년 11월, 톰 포드는 비영리단체 론리 웨일(Lonely Whale)과 함께 플라스틱을 대체할 신소재를 찾기 위한 공모전을 개최합니다. 이른바 톰 포드 플라스틱 혁신상(Tom Ford Plastic Innovation Prize)의 시작인데요.

공모전 개최 소식에 신소재 연구에 내로라하는 기업과 연구기관은 다 몰리게 되는데요. 26개국에서 64개 팀이 지원했고, 지난 4월 최종 후보 8팀이 발표됐습니다.

결선 진출자에 오른 8팀은 나이키의 후원을 받아 1년간 신소재 실험에 착수한 상황. 최종 수상자 3인은 2023년 상반기에 발표되는데요.

최종 수상자들은 120만 달러(한화 약 14억 6,000만원)의 상금을 나누어 가질뿐더러, 주요 패션 브랜드를 비롯해 델 테크놀로지스(Dell), 휴렛팩커드(HP) 등 IT 기업의 지원을 받아 실제 신소재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플라스틱 혁신상 결선 진출자 8팀 중 5팀은 해초, 다시마 등 해조류를 이용해 기존 플라스틱을 대체하려 한단 것인데요. 어떤 팀들이 어떤 실험을 진행 중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가 진행한 플라스틱 혁신상 Plastic Innovation Prize 제공

‘톰 포드 플라스틱 혁신상 결선 후보자’에 오른 5팀의 공통점은? 해조류! 🏆

플라스틱 혁신상은 패션업계에서 사용 중인 박막 플라스틱(Thin-film plastic)을 대체할 소재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박막 플라스틱은 옷, 신발 등을 포장하는 얇은 비닐을 일컫는 말인데요. 쉽게 찢어지는 특성 탓에 재활용이 어렵습니다.

패션업계에서 연간 사용하는 박막 플라스틱은 약 1,800억 개로 알려졌는데요. 해양으로 흘러가는 플라스틱 폐기물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플라스틱 혁신상 결선 진출자 5팀은 한목소리로 해조류가 플라스틱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5팀이 해조류로 만든 플라스틱은 모두 생분해되는 것이 특징인데요.

가령 영국 스타트업 낫플라(Notpla)가 만든 플라스틱은 가정에서 버리면 약 10일 안에 퇴비로 분해됩니다. 이들이 만든 박막 플라스틱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데요. 물이나 음료를 담을 수 있는 식용 물캡슐 오호(Ooho)는 몇 년전 런던마라톤대회에서 실제로 사용된 바 있습니다.

 

© 해조류로 만든 식용 물캡슐 오호왼는 2019년 런던마라톤대회에서 사용된 바 있다오 Notpla 제공

낫플라 측은 오호 생산에 드는 비용은 하나당 불과 2센트에 불과할뿐더러, 캡슐은 먹어도 인체에 무해하고 버려도 4~6주 안에 완전히 분해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인도 스타트업 제로서클(Zerocircle)이 개발 중인 해조류 플라스틱은 수온 환경에 따라 몇 시간 안에 분해될 수 있습니다. 제로서클은 말린 해조류에서 젖산칼륨과 알긴산나트륨을 추출해 포장재를 만드는데요. 인도 내 해조류 농장으로부터 재료를 공급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소재한 스웨이(Sway) 또한 해조류로 플라스틱 개발에 나선 스타트업입니다. 스웨이의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줄리아 마쉬는 “지난 10년간 포장재 디자이너로 일하며 플라스틱을 주원료로 사용해왔던 점에 책임감을 느꼈다”며 신소재 개발 연구에 나선 계기를 설명했는데요.

스웨이는 해조류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스를 이용해 얇은 플라스틱 막을 개발했습니다. 또 실험을 통해 땅에 묻으면 2주 이내 완전히 생분해되는 것을 증명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해조류에서 추출된 색상과 질감을 활용해 제품을 유용하게 디자인할 수 있단 이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낫플라, 제로서클, 스웨이와 함께 해조류 플라스틱을 개발 중인 영국 생명공학기업 켈피(Kelpi), 아이슬란드 스타트업 마레아(Marea)가 플라스틱 혁신상 결선 후보자에 오른 상황입니다.

 

+ 결선 진출자에 오른 다른 3팀은 어디야? 🎖️
콩, 옥수수 등 농업 폐기물을 이용해 플라스틱을 만든 곳들인데요. 삼플라(Xampla)란 곳은 일명 ‘거미줄 플라스틱’으로 유명한 곳! 콩 단백질을 이용해 거미줄처럼 밀도가 높은 플라스틱을 개발했죠. 캐나다 생명공학기업 제네시스(Genecis)르완다 바이오테크(Lwanda Biotech)는 옥수수 폐기물로 플라스틱을 만들었습니다.

 

© 스웨이는 해조류에서 추출한 색상과 질감이 제품 디자인에 유용하다고 설명한다 Sway 제공

해조류 플라스틱, 플라스틱 문제 해결할 수 있을까? 🌊

플라스틱 혁신상 결선 후보 5팀은 왜 하필 해조류에 주목한 것일까요? 이들은 해조류가 지역에 상관없이 자랄뿐더러, 가장 빨리 자라는 작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일부 해조류의 경우 하루 0.5m씩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영국 엑서터대 생명환경과학대 단세포 유전체학 부교수인 마이크 알렌은 플라스틱을 구성하는 화학식은 해조류 같은 천연물질로 대체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알렌 부교수는 미국 과학잡지 파퓰러 사이언스(PopSci)와의 인터뷰에서 플라스틱은 하나의 분자, 즉 단량체(monomer)를 긴 사슬 형태의 공유결합으로 이어 붙여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는데요.

그는 플라스틱 결합 형태가 석유가 아닌 다른 물질로 간단하게 대체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알렌 부교수는 또 해조류로 만든 바이오플라스틱의 경우 기존 플라스틱과 달리 향균 물질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는데요. 그는 해당 특성 중 일부를 유지하면 플라스틱이 더 빨리 분해되고, 식용성도 유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그간 해조류로 만든 플라스틱은 일부 디자이너의 전시에 그쳤는데요. 자원 채취 및 신규 설비 운영 등으로 인해 대량생산에 어려움을 겪었던 상황. 이에 플라스틱 혁신상은 ▲사회 및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 최소화, ▲플라스틱 기준 충족, ▲비용 경쟁력 확보, ▲확장성 및 시장 대응성 등을 확인하고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평가됩니다.

 

👉 플라스틱만? 비료, 에너지 등 인류 미래자원으로 부상한 해조류!

 

© Sway

포드는 이번 공모전에서 기존 기반시설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 솔루션(기술)을 찾는다고 덧붙였는데요. 결선 후보자 8팀은 미국 시애틀 수족관, 조지아대 신소재연구소 그리고 카리브해에서 실증 실험이 진행 중입니다.

최종 우승자 3인이 개발한 신소재 플라스틱은 대량생산을 거쳐 ‘얼리 어답터 연합(Early Adopter Coalition)’에 가입한 기업들이 사용할 예정인데요. 나이키, 스텔라 맥카트니 등 패션 브랜드를 비롯해 IT 및 가구 브랜드 등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톰 포드는 결선 진출자를 발표하며 “(플라스틱 혁신상에서 도출된 성과는)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 산업 전반의 변화를 촉진할 것”이라며 “다음 세대에 전해줄 보다 안전한 환경을 만들 위해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우리니라에서도 해조류 플라스틱을 만날 수 있을까? 🇰🇷
최근 해양수산부가 굉생이모자반 등 해조류를 활용해 석유화학 소재를 대체할 해양바이오 플라스틱 소재 개발 사업에 착수한 상황인데요. 용도별로 필요한 플라스틱의 물성을 갖출 수 있도록 단량체 혼합(Blending) 기술을 개발해 석유기반 플라스틱 제품에 비해 물성이 저하되는 단점을 보완한다고 해요. 일단 국내에서 연간 24만 톤씩 발생하는 해조류 부산물이나, 양식장에 피해를 유발하는 굉생이모자반이 원료로 사용되는 만큼 해수부는 산업적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