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협정 제6조, 국제탄소시장에 대한 협상 결과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그 누구도 급하지 않았다. 한국 탄소시장과 관련된 사람만 조급했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결과 공유와 대응전략 세미나’에서 이충국 한국기후변화연구원 탄소배출권센터장은 이같이 밝혔습니다.
올해 기후총회에서는 국제탄소시장 개설을 위한 파리협정 6조 기술지침 합의안 채택이 끝내 불발됐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의 국외감축사업 수행에도 차질을 빚을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이는 NDC 상 전체 감축량의 12.8%로, 전환(42.5%) 다음으로 높은 비중입니다.
韓 2030 NDC 내 국외감축목표 달성 위해 필요한 파리협정 6조 세부지침 🤝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국제탄소시장, 즉 파리협정 6조는 총 9개 항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중 파리협정 제6.2조(협력적 접근법)과 제6.4조(지속가능발전 메커니즘)는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26차 당사국총회(COP26)에서 비로소 제정됐습니다. 이어 작년 27차 당사국총회(COP27)에서 6.4조 관련 지침이 추가로 마련됐습니다.
6.2조는 배출권거래제(ETS) 연계 등 자발적 감축협력을 통해 발생한 감축실적을 당사국끼리 교환함으로써 NDC 달성에 활용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6.4조는 당사국총회(COP)에서 지정한 감독기구를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운영 구조를 갖는 메커니즘입니다. 교토의정서에 의한 청정개발체제(CDM)를 파리협정 체제로 전환하는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탄소배출권을 발행 및 거래하여 감축목표 달성에 활용한단 것이 핵심입니다.
즉, 6.2와 6.4조는 국외감축실적(ITMO) 승인과 국제탄소시장 개설을 위한 핵심 조항이란 것.
3,750만 톤이란 우리나라의 국외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파리협정 6조 세부지침 합의안이 채택됐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이 센터장은 “우리나라의 국외감축사업은 국제사회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제사회 속도와 발맞춰 장기적 관점에서 국제감축사업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피력했습니다.
“COP28서 국제탄소시장 논의, 6호 병동에 갇힌 것 같았다” ⚖️
COP28에서는 파리협정 6.2조와 6.4조의 세부지침이 합의가 가능할 것이란 낙관론이 지배적이었습니다. 6.4조 합의로 국제탄소시장이 열리면 탄소배출권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것이란 기대감도 컸습니다.
올해 총회에서 6.4조 관련 감독기구 의장을 맡은 올가 갓산자데의 소셜미디어(SNS)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COP28 개막전인 11월 17일(이하 현지시각) 갓산자데 의장은 본인의 소셜미디어(SNS)에 “우리가 해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는 6.4조 내 방법론 지침과 온실가스 제거 지침이 거의 완성됐단 소식을 전하며 COP28에서 국제탄소시장이 개설될 것이란 자신을 내비쳤습니다.
그러나 COP28 폐막식 전날(12일) 갓산자데 의장은 SNS에 “6호 병동이다. 근위대, 펜스, 서커스”란 짧은 문구와 함께 실망감을 나타냈습니다.
여기서 ‘6호 병동’이란 러시아 문학가 안톤 체호프의 소설 중 하나입니다. 정신병원 6호 병동에 수감된 환자 5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6호 병동에는 감금만 있을 뿐 치료나 퇴원은 없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환자들 간의 대화도 전혀 없는 곳으로 묘사가 됐습니다.
갓산자데 의장은 당시 회의 상황을 6호 병동에 비유했습니다.
그는 “파리협정 6조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모인 6번 회의실에서 이 글을 쓴다”며 “세계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변혁적 금융, 즉 탄소금융 제공에 실패했다”고 토로했습니다.
‘환경건전성’ 강화 내세운 EU·美, 지속가능성 내세운 개도국…입장 엇갈려 🗺️
관련 협상을 이끄는 유럽연합(EU)이나 미국의 경우 국외감축실적을 NDC에 활용하기 위해선 매우 정확하고 까다로운 인증조건을 통과해야 한단 입장입니다.
즉, 환경건전성 확보 강화가 필요하단 것. 환경건전성이란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 결과로서의 전지구적 온실가스 배출이 시장 메커니즘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 예상 배출량보다 높지 않아야 한단 것을 의미합니다.
EU와 미국 간 입장차도 확인됐습니다. EU의 경우 국제탄소시장 감독기구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산하 과학기술자문부기구(SBSTA) 관리하에 두려고 했습니다. 미국은 국가별로 관리해야 한단 입장입니다.
비영리단체 에코시스템 마켓플레이스에 따르면, 당시 미국 대표단은 EU가 이전에 합의한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규정을 적용하려 했다고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이와 별개로 국외감축실적이 허위로 보고돼 인정되는 등 특정 상황이 발생할 시 일방적 취소가 가능해야 한단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개발도상국 내부에서도 입장이 엇갈렸습니다.
중남미협상그룹(AILAC) 등 상당수 개도국 대표단은 협상에서 탄소시장 개설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연계돼야 한단 입장이었습니다. 인권 보호와 원주민 인권 대책 수립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잇따랐습니다.
또 군소도서국가동맹(AOSIS)을 중심으로 국제탄소시장 개설에 회의적인 입장도 나왔습니다. 국제탄소시장 개설에 앞서 온실가스 인벤토리 구축, 인력 양성 등에 전문성과 자금 지원이 필요하단 것이 이들의 입장입니다.
아예 시장 기반 메커니즘 도입에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친 경우도 확인됐습니다.
실제로 이번 COP28에 상정된 파리협정 안건 중 비시장 기반인 제6.8조만 통과했습니다. 이 조항은 완화, 적응, 재정, 기술개발 및 이전, 역량 강화 등 비시장기반 접근으로 NDC 달성을 위한 협력이행을 골자로 합니다.
파리협정 6조 세부지침 합의안 불발이 韓에 주는 시사점 4가지는? 🤔
파리협정 6조를 둘러싼 논의는 2024년 29차 당사국총회(COP29)가 열리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재개될 예정입니다.
이 센터장은 COP28에서 파리협정 기술지침 합의안 불발이 한국에게 주는 시사점을 크게 4가지를 꼽았습니다.
1️⃣ NDC 상 국제감축실적 활용 축소에 대한 종합적 대책 필요
첫째, NDC 상 국제감축실적 활용 축소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단 것입니다. 국제사회의 합의가 불발됨에 따라 한국의 국외감축실적도 단기적으로 활성화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6.2조에 따른 국외감축실적은 당장 국제사회의 우려와 상응조정에 대한 개도국의 소극적 자세로 활성화가 어렵습니다.
6.4조에 따른 사업은 빨라도 2026년 이후 사업등록이 가능하고, 감축실적 발행은 2027년부터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2️⃣ 국제사회 흐름 맞춰 장기적 관점에서 국제감축사업 접근 필요
둘째, 국제사회의 속도와 흐름에 발맞춰 장기적 관점에서 국제감축사업 접근이 필요하단 것입니다.
현재 한국은 베트남과 우즈베키스탄에 270억 원을 투자하는 국제감축사업 4건을 추진 중입니다.
개도국 상당수는 자국 주권 하에서 감축실적을 발행하고, 국외감축실적에 세금을 부과하는 등 엄격한 기준과 권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즉, 감축실적 발행에서 주권을 강조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란 것.
탄소중립기본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30년 감축목표 2억 9,100만 톤 중 12.8%인 3,750만 톤을 해외감축으로 달성한단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제온실가스감축사업 고시’를 제정하고, 다수 부처가 이를 따라 지원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이 센터장은 국제감축사업 고시 중 상당 부분이 한국을 ‘갑’의 위치로 상정한단 점을 지적합니다.
한국의 현 국제감축사업 고시는 우리나라가 감축사업을 승인하고 관련 감축실적을 발행하는 등 한국 중심의 사업추진 체제를 기반으로 합니다. 한국 권리 중심의 국제감축체제로는 국제감축 활성화에 한계가 있단 것 설명입니다.
이와 별개로 개도국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선 별도의 기준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사업자 역량 강화 ▲정부 주도 시범사업 추진으로 모델 정립 ▲체계적인 국가 지원 시스템 구축 등을 제시했습니다.
3️⃣ 파리협정 6.2조·6.4조 차별성 정립 필요
같은날 대한상공회의소와 기후변화센터 등이 주최한 ‘COP28 결과와 향후 전망’ 세미나에서 김도헌 산업통상자원부 온실가스국제사업팀장은 “이번 불발에 따라 6.4조 사업은 당장 진행하기 어렵다”면서 “6.2조 사업은 얼마든지 진행할 수 있으므로 이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6.2조의 경우 국가들끼리 자발적으로 추진하여 국외감축실적으로 발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 센터장은 파리협정 6.2조와 6.4조의 차별성 정립의 필요성을 주문했습니다.
그는 “6.2조 속 국외감축사업의 방향성을 확실히 해야한다”며 “6.4조와 어떻게 차별화해 추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관련해 정부의 기준체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6.2조에 따른 국외감축실적의 경우 정부 간 대형협력 형태로 사업이 이뤄져야 하고, 6.4조 내 사업은 민간의 불특정 소규모 온실가스 감축사업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그는 밝혔습니다.
4️⃣ 국제감축실적 미발행으로 韓 탄소시장 내 영향 고려 필요
마지막은 국제감축실적 미발행으로 인한 국내 탄소시장의 영향도 고려돼야 한단 것.
이번 합의안 채택 불발에 따라 2027년까지 국외감축실적의 국내 배출권거래제 내 유입물량을 적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해외감축실적(i-KOC) 공급 감소에 따른 영향도 고려돼야 합니다.
선진국 대거 국제감축 뛰어들어 “韓 경쟁력 확보 필요” 📊
한편, 이 센터장은 선진국 상당수가 한국과 같이 비용효과적 감축을 위해 개도국 내에서 경쟁하는 상황임을 강조했습니다.
예컨대 이웃나라 일본은 2022년 11월 기준 25개국과 양자협정을 체결하고 15개국에서 76개 국제감축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우리나라 또한 대다수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경쟁해야 한단 것.
허나, 현 한국 중심의 체제로는 이같은 경쟁에서 이길 수 없을뿐더러, 국외감축실적에 따른 2030 NDC 달성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 전경련 “국외감축실적 확보 위한 경쟁 치열해질 것…감축 위한 국가 협약 늘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