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엘니뇨 현상이 맞물림에 따라 세계 각지에서 이상기후 빈도와 피해규모가 심화되는 상황.
일례로 기후변화로 인해 물가가 급등한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은 우리의 밥상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엘니뇨 현상으로 인한 이상기후가 식량물가 상승을 넘어, 경제 전반의 물가를 상승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 25일 공개한 ‘열받은 지구의 역습, 엘니뇨와 에코플레이션’ 보고서에 담긴 내용입니다.
에코플레이션, 식량·에너지·광물 생산까지? “경제 전반 리스크 ↑” 🚨
지난 7월 4일(현지시각) 세계기상기구(WMO)는 엘니뇨의 발생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WMO는 올 하반기 내내 엘니뇨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을 96%로 내다봤습니다. 또 역대 4번째 ‘슈퍼 엘니뇨’가 발생할 가능성을 56%로 전망했습니다.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이러한 엘니뇨발 이상기후로 ‘에코플레이션(Ecoflation)’에 대한 우려가 증대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에코플레이션이란 환경(Ecology)과 물가상승(Inflation)의 합성어로, 환경적 요인에 의한 물가상승을 의미합니다.
보고서는 이상기후에 따른 에코플레이션 위험이 높아지는 분야로 크게 식량·에너지·광물 등 3가지를 꼽았습니다.
1️⃣ 식량|농작물 작황 악화에 2·3차 파급효과까지 📈
태풍, 가뭄, 홍수 등 기상이변은 농산물 생산에 큰 타격을 입힙니다.
보고서는 기상이변으로 ▲설탕 ▲옥수수 ▲대두 ▲밀가루 ▲쌀 등의 주요 식량 생산이 불안정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미 설탕과 쌀의 주산지인 인도는 올해 가뭄과 폭우 피해를 입었고, 옥수수·대두 산지인 미 중서부에는 2012년 이후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습니다.
캐나다 최대의 곡창지대이자 소맥(밀) 산지인 앨버타·서스캐처원과 유럽 소맥 수출국이 몰린 유럽 북부 또한 가뭄으로 토양 수분 부족 현상이 확산됐습니다.
더욱이 곡물 생산 차질은 더 큰 파급효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식량자원 특성상 가공식품 및 외식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곡물시장 투기자본 유입·기대 인플레이션* 자극이 변동성과 물가상승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동하며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기대 인플레이션: 경제주체들이 전망하는 미래의 물가상승률. 미래의 물가상승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을 부추기며 실제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2️⃣ 에너지|이상기후에 에너지 수요·재생에너지 변동성 ↑
보고서는 이상기후가 국제 에너지시장의 수요-공급 불균형을 초래한단 점을 경고합니다.
먼저 수요 측면에서는 기록적 폭염이 증가하면서 냉방 수요가 급증한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실제로 미국 텍사스주 일대는 지난 6월 발전용 가스 소비가 과거 3년 평균 대비 약 20% 증가했습니다. 같은달 유럽과 동아시아 지역의 냉방도일**은 10년 평균 대비 각각 66일과 55일 상승했습니다.
반면, 공급에서는 가뭄으로 인한 수력발전이 감소하면서 석탄·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수요 증가로 이어지는 상황입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베트남의 경우 지난 5~6월 가뭄으로 인한 수력발전 차질로 14억 달러(약 1조 8,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베트남 국내총생산(GDP)의 0.3%에 달합니다.
이상기후로 인한 곡물가격 급등의 경우, 또 다른 재생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연결된단 문제도 있습니다.
옥수수·사탕수수 등을 원료로 하는 바이오연료가 대표적입니다. 보고서는 바이오연료 수급 악화가 화석연료 수요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냉방도일(CDD): 일평균기온과 기준 온도 18 ℃의 차이를 일별로 누적하여, 일평균기온이 기준 온도보다 높은 경우를 냉방도일로 산정한다. 냉방도일이 클수록 날씨가 덥다는 의미이며, 냉방 수요가 증가한다.
3️⃣ 광물|주요채굴국=엘니뇨 영향권, 공급 불확실성 ↑
마지막으로 이상기후는 주요 산업용 광물 공급의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비철금속 생산국 상당수가 엘니뇨 현상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포함됐단 점에 보고서는 주목합니다.
엘니뇨 현상이 발생하는 동태평양에는 세계 구리 채굴량의 38%를 차지하는 칠레·페루가 위치합니다. 이 때문에 엘니뇨의 직격타를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블룸버그통신에 의하면, WMO의 엘니뇨 공식 선언 전후로 구리·니켈·알루미늄·아연 등 비철금속 가격이 6~8%가량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더불어 지난 6월 세계 1위 구리 생산국인 칠레에서 1993년 이후 최악의 홍수가 일어나며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됐습니다.
당시 칠레 국영 광업 기업 코델코(Codelco)를 비롯해 주요 광산 가동이 중단됐습니다.
👉 엘니뇨 현상, ‘크리스마스’ 운송비 상승시킬 수 있다고?
기후발 식량불안, 지정학·정치적 불안에 악순환 우려도 ♻️
한편, 보고서는 이상기후로 인한 식량불안이 지정학 및 정치적 불안과 맞물려 더욱 증폭될 수 있단 점을 경고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분쟁입니다. 두 곳 모두 세계 최대의 곡창지대이자 주요 밀 수출국입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식량불안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이에 지난해 7월 유엔과 튀르키예(터키)의 중재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보장하는 내용의 흑해곡물협정이 체결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17일(현지시각)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 연장을 거부하면서 다시금 불안이 증대된 상황.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7월 식량수출은 6월 대비 3분의 2로 감소했습니다.
급증하는 식량불안이 식량민족주의로 이어지면서 국가간 갈등을 키우는 기폭제가 되는 악순환도 우려됩니다.
실제로 세계 1위 쌀 수출국 인도는 지난 20일(현지시각) 비(非)비스마티 백미 수출 금지를 단행했습니다. 또 오는 10월 인도가 설탕 수출을 금지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습니다. 쌀과 마찬가지로 가뭄으로 인한 사탕수수 작황 부진 때문입니다.
엘니뇨 기후리스크, 긴축기조 장기화 이어질 수도 🏦
이같은 이상기후의 파급효과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칠 경우 기업의 생산비용 증가로 직결된단 것이 보고서의 진단입니다.
이는 작년 하반기 이후 계속되어온 생산자 물가 하락을 반등시킬 수 있습니다. 문제는 물가상승이 계속됨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
일례로 미국의 경우 지난해 3월부터 물가상승을 잡기 위해 긴축정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 빅스텝(기준금리 0.5%p 인상)과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을 총 11차 강행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 기준금리는 2022년 초 0.25%에서 현재 5.5%로 껑충 뛰었습니다. 이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기준금리도 급등했습니다.
보고서는 에코플레이션으로 인한 중장기적 물가 위험 요인이 세계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를 지연시키는 영향을 낳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에 따른 긴축 기조 장기화에 유의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제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