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인한 폭염·폭우·가뭄 등 이상기후가 심화하는 가운데 지구촌 식량 생산에도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이미 지난 4월부터 인도·중국·라오스 등 아시아 국가들은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으로 농업 생산에 어려움을 겪는 중입니다.

일례로 인도 상무부는 지난달 20일(현지시각) 자국 전체 쌀 수출의 45%를 차지하는 비(非)바스마티 백미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폭우로 인한 공급량 감소 우려 및 쌀값 상승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인도 내 식품 물가는 살인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쌀값은 작년부터 11.5% 올랐고, 토마토값은 지난 6월부터 한달간 무려 40% 상승했습니다. 일부 지역은 폭우로 농작물이 쓸려나가고, 다른 지역에서는 가뭄으로 흉작을 겪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기후변화로 인해 물가가 급등하는 현상을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라 부릅니다. 기후와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의 합성어입니다.

 

엘니뇨가 부채질한 ‘기후플레이션’에 인도, 쌀 수출 금지 선포 🚨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PIK)는 전례 없는 투자가 없다면, 기후변화가 2035년까지 매년 세계 인플레이션을 1%p(퍼센트포인트)씩 상승시킬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식품이 가장 큰 영향을 입을 것으로 전망돼 세계식량계획(WFP) 등 주요 식량 관련 국제기구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위기를 우려한 상태입니다.

현재 기후플레이션의 직격타를 맞은 대표적인 국가는 인도입니다. 인도는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농업이 차지하는 곳입니다. 농작물 경작에 필요한 강수량의 70~80%가 몬순(우기) 기간에 채워집니다.

문제는 올해 예상 강수량을 웃돌며 비가 쏟아졌단 것. 인도 기상청에 의하면, 올해 몬순은 기존 평균 강수량의 10배가 넘는 비가 쏟아져 곳곳에서 침수 피해와 농작물 작황 부진이 초래됐습니다.

앞서 설명한대로 폭우로 쌀 가격이 상승하자 인도 정부는 바스마티 품종을 제외한 쌀 품종의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 인도 북부 히마찰프라데시주에 있는 소도시 쿨루는 몬순으로 인한 기록적인 폭우로 강이 범람해 도로가 막히거나 다리가 끊겼다. ©India Meteorological Department

2022년 기준 인도는 세계 쌀 수출량의 40%를 차지하는 최대 쌀 수출국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많은 나라가 인도산 쌀에 의존하는 만큼 이 조치를 뒤집을 것을 인도 정부에 촉구한 상태입니다.

인도 정부의 이 같은 결정에 주변 국가들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3년 만에 찾아온 ‘엘니뇨 현상’으로 인한 가뭄 우려로 동남아시아 국가 상당수가 올해 쌀 수입량을 늘리려 계획했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 국가식량청(NFA)은 가뭄에 대비해 올해 쌀 200만 톤을 수입할 예정이었습니다. 그중 절반을 인도에서 들어올 예정이었으나, 인도의 쌀 수출 중단으로 다른 공급선을 모색 중입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올해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건기가 심화돼 쌀 생산량이 줄어든 상황.

태국 국립수자원청(ONWR)은 엘니뇨 현상으로 강우량 부족이 전망된다며, 지난 5월 농부들에게 “벼 재배를 올해 2~3번에서 1번으로 줄여줄 것”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인도 쌀 수출 금지, 밀 가격 상승에도 영향 끼칠 수 있어 🤔

한편, 인도의 쌀 수출 금지는 아시아 지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도국제경제관계연구협의회의 아쇽 굴라티 교수는 이번 조치로 주요 쌀 수입국인 아프리카 국가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쌀 가격 상승이 밀 가격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단 분석도 나옵니다. 식품무역기업 ‘ED&F 맨’의 코나 하케 연구책임자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쌀 시장의 가격 급등이 밀에 연쇄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쌀, 벼, 옥수수는 세계 3대 식량작물입니다. 이들 작물은 서로의 대체재로 작용합니다. 즉, 쌀 가격 상승으로 밀 수요가 증가하며 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단 것.

여기에 지난달 19일(현지시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보장하는 ‘흑해곡물협정’의 연장을 거부함에 따라 밀 공급불안 우려도 커지는 상황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옥수수와 밀, 보리 등 주요 곡물 수출국입니다.

 

▲ 인도에서는 지난 4월 폭염의 여파로 토마토 공급 부족이 일어나며, 5배 넘게 가격이 급등했다. ©INCHAM Hanoi

폭염·가뭄에 토마토·설탕 가격 ↑…쌀 → 옥수수·양배추 전환도 🧑‍🌾

이 밖에도 토마토, 설탕, 커피 등 주요 작물들도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인도에서는 토마토 가격이 5배 넘게 급등했습니다. 인도 소비자부에 따르면, 7월 3주 기준 수도 뉴델리의 토마토 가격은 1㎏당 138루피(약 2,160원)로 올랐습니다. 이는 지난 1월 27루피(약 420원)에서 5배 넘게 급등한 것입니다.

원인은 지난 4월 때 이른 폭염. 40℃를 넘는 폭염이 이어지며 토마토가 꽃을 피우지 못한 것입니다. 이에 맥도날드를 비롯한 인도 식당에서는 메뉴 중 토마토를 제외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엘니뇨로 인한 가뭄 우려로 설탕 가격도 급등했습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국제 설탕 가격이 지난 4월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7월 국제 설탕 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서긴 했으나, 감소폭은 크지 않습니다.

설탕 가격은 사탕수수수 주요 재배지인 인도와 브라질 등에서 가뭄이 이어지면서 상승했습니다.

로이터통신에 의하면, 인도 정부는 엘니뇨 여파에 대비하기 위해 2024년 상반기까지 설탕 수출 중단할을 고려 중입니다. 인도는 세계 1위 사탕수수 생산국입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재배되는 로부스타 원두 가격도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엘니뇨 현상으로 인한 고온과 가뭄이 커피 원두 수확량에 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 때문입니다. 로부스타 원두는 주로 인스턴트 커피에 사용됩니다.

일부 농부들은 가뭄에 대비해 쌀이 아닌 물이 덜 필요한 작물로 재배를 전환하고 있습니다.

야디 소피안 누르 인도네시아 농어업협회(KTNA) 회장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최대 쌀 생산지 서(西)자바 수방(Subang) 지역의 농부들도 가뭄에 대비해 양배추·고추·수박 등으로 전환했다”고 말했습니다.

월 강우량 기준이 85㎜로, 쌀(200㎜)의 절반도 안 되는 옥수수 또한 전환 작물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 독일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던 2022년 7월 19일 정오 무렵의 기온을 나타낸 지도. 그해 폭염이 식품 인플레이션 0.67%p 상승에 일조했다고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는 분석했다. ©tropicaltidbits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2022 유럽 폭염, 식품 인플레이션 0.67%p 일조” 📈

기후플레이션은 비단 아시아에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의 주요 과채류 수출국인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남유럽에서도 이상고온과 극심한 가뭄으로 흉작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스페인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스페인 봄은 가장 더우면서 역대 2번째로 건조한 봄이었습니다. 2023년 누적 강수량은 5월 기준, 연평균의 4분의 1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5월 내내 스페인 북동부 지역에서는 대형 산불이 계속됐습니다.

스페인의 가뭄과 폭염은 과일 및 채소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일례로 올리브유는 작년 9월 ㎏당 4유로(약 5,600원)에서 지난 7월 기준 7유로(약 9,800원)로 올랐습니다. 지난 5개월간(2022년 10월~2023년 2월) 스페인 내 올리브 수확량이 63만 톤으로, 140톤이었던 전년도의 절반에도 못 미쳤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올해 유럽 폭염이 식품 인플레이션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지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연구자료도 나왔습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PIK)가 공동으로 연구한 보고서입니다. 해당 보고서는 올해 5월에 발표됐습니다.

연구진은 2022년 여름 3개월 간 이어진 폭염으로 유럽 내 식품 인플레이션이 0.67%p 상승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에너지가격 상승과 같은 다른 요인으로 인한 영향을 제외한, 폭염으로 인한 영향만 고려한 수치입니다.

폭염과 가뭄으로 옥수수·해바라기·대두 등 주요 작물 생산량이 급감하고, 주요 하천이 마르면서 유럽 내 해운이 마비됐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습니다.

 

▲ 올해 3부터 5월까지 전국 평균기온은 1973년 기상관측망 확충 이후 역대 최고기온이었다. ©기상청

남일 아닌 기후플레이션…“韓도 이상고온·우박·폭우에 농작물 초토화” 🌡️

한국에선 올해 3~4월의 이상기온과 6월 초 우박, 최근의 폭우로 농작물 피해가 급증했습니다.

지난 4월,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2~3℃로 작물 개화가 앞당겨져 피해가 더욱 컸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냉해 피해를 입은 농지는 4만 5,000㏊(헥타르)에 달합니다.

열매가 생성되는 6월 초에는 경기, 강원, 충북, 경북, 전북 등 전국에서 지름 1~2㎝의 우박이 쏟아지며 3,279㏊의 농지가 낙과 피해를 입었습니다.

또 지난달 9일부터 이어진 호우로 농작물 3만 6,000㏊가 침수되고, 가축 96만 9,000마리가 폐사했다고 농식품부는 밝혔는데요.

이에 농작물 재해보험 개편 등 농민 보호를 위한 정책과 함께, 기후변화로 예측 불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중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습니다.

 

<저작권자(©) 그리니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